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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상의 문화유산둘러보기 "제 44 호 혜초, 불타는 고비사막으로 돌아오다."


김동현 기자 / mailtv@nate.com입력 : 2013년 07월 15일
신라의 구법승(求法僧) 혜초(慧超, 惠超, 704~787)가 지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둔황 막고굴의 제17호굴 장경동(藏經洞)의 문서더미 속에 있던 것을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폴 펠리오(P. Pelliot)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때 발견된 [왕오천축국전]은 원본이 아니라 두루마리형태의 필사본으로 총 227행만이 남아 있었다. 앞뒤 부분이 크게 손상되어 제목과 지은이 그리고 지은 시기를 모두 알 수 없었지만, 다행이 중국문헌에 깊은 식견을 지녔던 펠리오는 이것이 바로 혜림(惠琳)의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에 인용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임을 알아낼 수 있었다. 곧이어 일본학자 다카구스 준지로(高楠順次郞)는 [왕오천축국전]의 지은이가 밀교승 불공(不空)의 6대 제자 중의 한 명인 신라승려 ‘혜초’라는 사실을 규명하였다.

둔황에서 발견된 [왕오천축국전]의 필사본은 비록 혜초 자신이 8세기에 직접 친필로 쓴 것이 아니라 9세기경 누군가에 의해 베껴진 것이며, 원본 3권 전체가 아니라 두루마리 모양의 첫머리와 끄트머리도 떨어져나가고 없는 잔본이었다. 그러나 8세기 전반의 인도불교 및 중앙아시아의 풍속과 지리, 역사 등을 알려주는 서역사 연구에 있어 더할 수 없이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 책이다.

↑↑ 사진) 실크로드의 중심지 둔황의 막고굴 전경

둔황이 처음으로 중국역사에 등장한 것은 한 무제 때이다. 기원전 6년 한 무제는 당시 서북쪽 개척과 서역정책의 중요성을 깨닫고 둔황에 하서사군을 설치하면서 이 지역을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의 영토에 편입시켰다. 이 곳의 막고굴은 전진(前秦)의 승려 낙준이 366년 개착하였다고 전하며, 이후 중국의 여러 나라에서 1000년간 석굴을 파고 벽화를 제작하였다. 현재 보존된 492개의 석굴, 1,400여개의 불상과 45,000㎡의 벽화가 석굴내부에 남아 있다. 지난 주말 [제2회 실크로드 국제학술대회]에서 리신(李新) 중국 둔황연구원 교수가 막고굴 335호굴의 백제 인물상을 비롯하여, 둔황석굴 가운데 40곳에서 한반도 사람의 모습을 확인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금년 6월, 20년 만에 다시 찾은 막고굴은 막고굴의 가장 큰 특징인 벽화가 관광객들에게 공개된 이후 탈색과 변색이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하루 빨리 보존에 더 심혈을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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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에 따르면 3세기부터 11세기에 걸쳐 인도로 구법여행을 떠난 동아시아 출신은 대략 860명 정도인데, 혜초의 바로 앞 시대인 7세기에는 62명에 불과하였으며, 이들의 생환은 30%내외 정도였다고 한다. 그나마 살아 돌아온 극소수만이 자신들의 기록을 남겼고, 그 가운데 다시 일부만이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으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인 것이다. 혜초는 열여섯 살 때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열아홉 나이에 중국 광저우[廣州]를 출발하여 파라사국(인도네시아)을 거쳐 천축국(인도)으로 건너가 석가모니의 성지를 순례하였다. 혜초는 석가모니 성지를 순례한 4년 동안 다섯 천축국과 서역을 여행한 기록인 [왕오천축국전]은 7세기 전반 인도 및 서역을 여행하면서 기록한 유일한 문헌이라는 점에서, 발견직후부터 동서양의 관련 학자들이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혜초의 여행경로는 해로(海路)를 이용하여 인도로 건너갔지만 육로(陸路)로 돌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7세기 중엽 이후 토번(吐藩, 티베트)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육로대신 해로를 많이 이용하였으며, 대체로 10월부터 12월 사이에 부는 계절풍을 이용하여, 광저우에서 출항하였으리라 짐작된다.

혜초가 장안(長安)으로 귀환한 이후에는 인도승려 금강지(金剛智, 669~741)와 그의 제자인 불공(不空, 705~774)에게 밀교를 전수 받았다. 불공이 입적하면서, 유서에 밀교를 널리 펼 6명의 제자 가운데 한명으로 혜초를 거명하였다. 혜초는 이로 인하여 장안과 오대산을 중심으로 밀교경전의 연구와 불교의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는데 있어 기여한 것을 높게 평가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후대 일본 진언종(眞言宗)의 계보에도 등재되기에 이르러 그 명성이 동아시아 전역에 퍼졌다.

오늘날은 시간과 경제력 그리고 건강만 갖추고 있다면 모든 사람들은 별 어려움 없이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 중 중국을 여행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국가에서 파견되는 공식사절단원, 유학생과 유학승려 그리고 무역업에 종사하는 상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외에 밀입국으로 중국을 가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들 대부분은 발각되면 목 베여 죽음을 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으로 일반인들이 중국을 여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중국에 도착하면 공무적으로 왔거나 개인적으로 왔거나 간에 사적인 용도로 쓰이는 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신라인들은 주로 부피와 무게가 적으면서도 고가(高價)인 금과 은 그리고 인삼과 우황 등을 주로 지참하고 들어가 돈으로 바꾸어 사용하였다. 귀국할 때에는 고급향료와 도자기, 에메랄드와 같은 보석류, 아라비아산 카페트 등 세계 각국의 희귀품과 서적, 약재 등의 실용품 등을 구입하여 되돌아와 높은 가격으로 국내에서 팔아 여행경비와 무역의 이윤을 챙기기도 하였다.
김동현 기자 / mailtv@nate.com입력 : 2013년 0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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