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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상의 문화유산둘러보기 '제45호 북정록을 통해 본 외교의 품위'
김동현 기자 / mailtv@nate.com 입력 : 2013년 08월 14일
|  | | ↑↑ 사진) 광개토대왕비(신라문화진흥원 제148회(2004.8.14) 고구려 백두산답사)
비(碑)는 사적을 후세에 오래도록 전하기 위해 나무, 돌, 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는 것을 의미한다. 광개토대왕비는 아들 장수왕이 414년, 높이 6.39m, 너비 1.38~2.00m, 측면 1.35~1.46m 크기의 4면에 걸쳐 광개토대왕의 사적을 기록하였다. 비의 내용은 고구려의 역사와 광개토대왕의 업적이 주된 내용이며, 1,775자의 비문은 고구려사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광개토대왕비 앞에서 한국인 안내인이 공개적으로 메가폰을 잡고 설명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필자가 메가폰을 잡고 설명하는 모습을 보니 신라문화진흥원의 사명감 넘치는 답사시절이었던 것 같다. 영토는 잃었지만 역사만큼은 잃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진행한 일이었다. 당시 중국 측에서 문제를 확대하지 않고 묵인해 주어서 고맙다는 생각도 해본다. | | ⓒ GBN 경북방송 | | [북정록(北征錄)]은 1712년(숙종 38) 청나라와 조선 사이의 국경을 조사하기 위하여 청의 차사(差使, 중요한 임무를 위해 파견하던 오늘날의 특사)로 온 목극등과 조선 측의 접반사(接伴使)인 박권(朴權)사이의 교섭 전말을 수행한 통역 최고책임자 김지남(金指南)이 2월에서 조사가 완료된 6월까지 5개월간 쓴 일기이다.
청나라에서 조선의 통역관을 요청한 이유는 청나라 자국의 경계선을 조사한 일이긴 하였지만, 양국의 경계선이 서로 접하여 조사하기 어려운 곳일 경우 서로 간에 교섭을 통하여야 경계를 확정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정록]에 의하면, 청나라 측에서 갑자기 국경을 조사하고 경계를 정하게 된 계기는 청이 국가영역에 대한 [일통지(一統志)]를 만들고 있었는데,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은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압록강과 토문강의 발원근거지를 살펴 청의 국경을 확정하고자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또한 압록강과 토문강 두 강이 모두 백두산 근저에서 발원하여 강의 남쪽을 조선의 국경으로 정한 것은 세월이 이미 오래되어 의논할 것이 없고 피차간의 경계를 논단하여 분명하게 하는 것이 후환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두 사신이 두 강의 남쪽이 조선의 경계임을 문서에 기록하여 돌아가는 사신에게 황제에게 상주하여 주기를 청나라 측에게 건의하였다. 또 조선에서는 ‘정해진 경계에 표를 세우는 일은 돌아가 조정에 주달하여 서서히 공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라고 화답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는 일차적으로 현재의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한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선이 최초로 명문화된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이 자료에는 양국사신들의 대응과 그 일행들의 자세, 심리 그리고 지방 수령이나 주민들의 모습들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당시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자료라 하겠다.
현대사회에서도 한 국가의 중대한 대외관계의 보다 분명한 의사전달과 의견수렴을 위해 전문적인 통역인을 필요로 한다. 요즘의 이러한 통역인들은 그 내용을 비망록 또는 자서전 등에서 간혹 밝히기도 하지만 그 내용의 중요도와 상황에 따라서 바로 공개가 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자료는 수십 년이 지나서 국가의 기밀공개를 통해 알려지기도 한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국가의 원수나 책임자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올바르게 판단하고 노력했는지를 알게 된다.
[북정록]에는 청나라의 황제가 조선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애 쓴 마음과 청에 대한 조선의 명확한 의견을 수렴토록 적극노력한 조선의 모습은 외교의 본보기가 되기도 한다.
오늘날의 국제적인 조약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수의 조약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고대사회에 비해 조약의 수준이 더 높은 수준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하여 물불가리지 않는 모습들에서 더욱 더 많이 표출되고 있다. 국익을 위한 입장에서는 바람직 할 것이지만 상대국의 입장에서 보면 난감한 일이기도하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외교관계에 좀 더 높은 품위를 지켰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요즘 나라 안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NLL의 논란은 더운 여름을 절전하면서 보내는 국민들을 위해, 이 정도에서 국민들의 실망감과 외교의 결례를 감안하여 여야는 정치력을 발휘하여 타협을 도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김동현 기자 / mailtv@nate.com  입력 : 2013년 0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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