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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문학-천양희 시인을 찾아서

-마들에 풀어놓은 詩-
황명강 기자 / test@test.com입력 : 2013년 11월 02일
-마들에 풀어놓은 詩-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이 ‘시 쓰기’ 라고 믿는
천양희 시인을 찾아서

ⓒ GBN 경북방송



대담 황명강 시인(GBN경북방송 대표)






마로니에 잎이 연한 갈색으로 물들고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셨을까.
백일 동안 피웠던 꽃의 향기를, 배롱나무는 제 자서전에 기록하려는 듯 시든 송이들을 놓아주지 않고 늘어서 있는 거리.
40년 시력의 시인을 공손히 모셔서 걷고 있는 가을 햇볕의 뒤를 조용히 따라 걸었다.
문득 참새 한 마리가 간격을 깨고 끼어들었다. “아..참새로구나. 반가워”
그다지 눈길 주지 않았던 참새도 요즘은 참 예쁘다고 말씀하시는 천양희 선생님.
시인께서 쓴 시 ‘어제’에서처럼
마로니에의 푸르름이나 배롱나무의 꿈들은 바람에게 넘겨주고
오늘은 가볍고도 느리게 가을볕을 걸으시려나 보다. 볕이 너무 좋아서 나눠 줄 사람을 찾고 싶으신지 가끔 저 앞을 건너다보기도 하면서 손바닥을 편 채 걷는다. 나비처럼, 시의 절창처럼 걷는다. 볕 보드라운 시월의 백지 위를...(황명강 시인)


ⓒ GBN 경북방송



황명강
늘 뵙고 싶었던 천양희 선생님을 뵙게 되어서 무척 영광입니다. 올해로 김달진문학제가 18회를 맞았습니다. 문학제에 맞춰 발간되는 ‘시애’ 문예지 대담에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천양희
예, 반갑습니다. 김달진 문학제는 전국에 널리 알려져 있고 문학상도 권위가 있지 요. 언젠가 참석했던 기억이 납니다.

황명강
선생님은 여전히 작품 활동이 왕성하시고 산문 집필도 많이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 니다. 근래 들어 집중하시는 일이 있다면 어떤 일들인지요?

천양희
집중이라면 늘 시와 함께이지요. 나의 시를 어떤 부류에 두고 싶지 않다는 것,
그래서 남들이 쓰지 않는 시어를 찾느라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독특한 시의 세계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 누구의 세계와도 변별되는 단독성의 시인이고 싶습니다.(단독성을 강조 하신다.)

또 하나 요즘 들어 시간을 쓰는 곳은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서 읽는 일입니다. 중국고전,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 ‘은밀한 생’,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등을 읽으면서 젊은 날 문학에 대한 열정을 떠올리게 되고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됩니다.
특히 셰퍼드 코미나스의 ‘치유의 글쓰기’는 문학 외적인 일반인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지요. 아무튼 늘 마음속에 절 한 채 짓고 명상 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 '서정시학사'에서 최동호 시인, 천양희 시인
ⓒ GBN 경북방송


황명강
흔히 선생님을 길의 시인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선생님 시의 길을 듣다가 보면 삶의 길도 들을 수 있을 테지요. 선생님의 길에 대해 좀 들려주십시오.

천양희
한때 배낭을 메고 길을 따라 많이도 걸었습니다.
전라도, 경상도.....길이 열려 있는 곳이라면 헤매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다녔습니다. 길을 걷다보니 지나간 것은 지워지고 다가오는 길은 희망을 쓰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고요. 삶의 아픔이 많았으니 길을 지우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면서 자꾸만 떠났겠지요. 그런데 길을 따라 가다보면 늘 물이 있었어요.

물은 위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았으므로 나는 조금씩 겸손해지는 마음으로 늘 물에게 길을 물었지요.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 외에 나처럼 많은 길을 걸은 사람도 잘 없을 겁니다.

황명강
말씀을 듣다보니 좋은 시가 얼마나 어렵게 얻어지는지 아프게 와 닿습니다. 선생님의 시를 읽다보면 지극한 간절함과 곡진함이 있어 독자들의 마음을 오래 놓아주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어떤 연유에서 일까요?

천양희
체험에 기인한 진정성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나의 시는 주로 체험에서 얻은 시편들이 많습니다. 나만의 체험으로 시를 썼는데 보편성이 있더라구요. 버리고 걷고 기다리고.... 시는 나에게 짐이자 힘이고 괴로움이자 기쁨입니다. 시를 쓸 때는 무거운 짐을 진 듯 괴롭지만 완성하고 나면 희열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시는 나에게 단독정부의 수반처럼 무서운 권력을 휘두릅니다. 좋은 시는 정신의 르네상스요 나쁜 시는 이방인처럼 나를 괴롭힙니다.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나는 시가 가하는 권력을 좋아합니다.

황명강
선생님의 시 중에서 저는 특히 ‘마음의 수수밭’과 ‘어제’를 좋아합니다. 선생님께서 꼽으시는 대표작은 어느 시입니까? 그리고 무릇 시인은 어떤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천양희
시인은 철저히 시를 앓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시를 정복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고독’이라 대답하는 사람이 시인 아닐까요. 시인의 시 쓰기에는 체험과 독서가 동시에 필요합니다. 때로 외로움 속에 자신을 오래 세워두는 사람이어야지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이들이 쓴 시를 읽다보면 말의 거부가 된 것 같아서 행복할 때가 있지요. 나의 시는 현미경처럼 가까이 촘촘하게 쓰고 타인의 시는 망원경처럼 멀찍이 두고 읽다보면 시 쓰기에 도움이 됩니다.

나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직소포에 들다’, ‘마음의 수수밭’ 등입니다.
시는 과정이지 목적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직소폭포를 아무도 찾지 않던 1979년도에 직소폭포를 찾았습니다. 하루 종일 폭포 앞에 앉아 있었는데 천둥같은 소리가 들려왔어요. “너는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해 살았느냐”고...... 삶의 고통으로 간절하게 죽음을 생각하던 때였는데 이 시들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났습니다.

(요즘 들어 마음의 수수밭에는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궁금하다는 대담자의 질문 에 시인께서는 살짝 웃으시더니 입을 모아서 ‘쓸 쓸 쓸 쓸’하는 소리가 들린다며 또 한 번 웃으신다.)

ⓒ GBN 경북방송


-천양희 선생님의 대표시 2편-


직소포에 들다


천양희


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淨土! 나는 늘 꿈꾸어 왔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 水宮을.

폭포소리가 계곡을 일으킨다. 천둥소리 같은 우레 같은
기립박수소리 같은-바위들이 몰래 흔들한다.
하늘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무한천공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 와서 보니
피안이 이렇게 좋다.
나는 다시 배운다.
絶唱의 한 대목, 그의 완창을.









마음의 수수밭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 잎 몇 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 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天佛 山)이
몸 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 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황명강
선생님의 유년시절과 등단 당시의 상황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궁금합니 다.

천양희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지금은 도시지만 그때는 시골이었던 ‘사상’이 라는 곳.
경남여중, 경남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를 다녔는데 3번 모두 국가고시 시험을 치 렀어요. 서울 올라가 대학교 다닌다는 것이 친구들에게 미안해서 밖에도 잘 안나갔 지만 학비를 부치러 아버지께서 우체국에 가면 우체국 직원들이 모두 일어설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아버지는 모두 훌륭한 선비셨습니다. 아버지께선 고전을 들려주시고 당송시를 애송하셨으니 내 시의 출발은 아버지께 듣는 것으로부터였습니다.
7남매 막내로 귀여움을 받고 자라면서 시심을 키운 것도 고향이었어요. 우리집 과수원에서 둑 하나만 넘으면 낙동강이었는데 둑에 앉아 노을을 보면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서정을 넘치게 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지요. 강에는 조개잡이 돛단배가 떠가고 고운 모래위의 물새 발자국과 다리를 들고 서 있던 왜가리 등 잊히지 않는 풍경화입니다.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갈 때면 폭포가 있었고, 폭포 아래 물을 머금은 산나리며 태극무늬 나비, 뒷동산 진달래꽃밭 속에서 어린 나는 유행가를곧잘 부르기도 했습니다. 시 ‘오래된 나무’는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를 모델로 쓴 시입니다.

그리고 대학 3학년 때 박두진 선생님이 추천해 주셔서 ‘현대문학’으로 등단 했습니다.
학교에선 큰 이슈가 되어 이화여대 학보에 작품과 등단 소식이 게재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황명강
선생님의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천양희
첫째가 어린 시절이었죠. 4대가 함께 살았고 부모님이 화목한 가정을 이끌면서 어려움을 모르고 보낸 행복한 유년이었습니다. 특히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훌륭한 분이셨어요. 그다음은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아이에게 엄마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감동으로 울었습니다. 또 하나는 시인이 되어서 첫 문학상인 ‘소월시문학상’을 받았을 때입니다. 시가 나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참으로 의미가 컸다고 봐야겠지요.

황명강
2011년도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시집이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맞으시죠? 선 생님의 일곱 번 째 시집인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천양희
제 26회 만해문학상을 탄 시집입니다. 정말이지 나이가 드니 더 자주 우두커니가 되더라고요. 젊을 때는 높은 길을 쫓아 산을 찾았고 중년엔 깊이를 추구하면서 물을 좋아했는데 노년에 접어드니 들판이 자꾸 좋아져요. 그러면서 여유가 생깁니다.
서울 노원구 ‘마들’(말이 놀던 들판)이라는 곳에서 11년째 살고 있는데 들판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들을 걷다보면 우두커니 서 있게 됩니다.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다 보면 욕망을 내려놓게 되지요. 이것이 이 시집에 대한 답입니다.

황명강
시란 선생님께 어떤 의미이며 우리 인류에게 미치는 시의 역할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천양희
나에게 있어 시의 의미는 나를 살려주는 것, 애인도 남편도 나를 살게 하지 못했으 나 시만은 나를 살게 해주었습니다. 시를 쓰면서 일상의 고통을 극복했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았습니다. 그리고 시가 나를 살아있게 한 가장 큰 이유는, 늘 질문자의 위치에 각성자의 위치에 나를 세워주었기 때문입니다.

산고에 시달린 낙타가 너무 힘들어하면 몽고인들은 전통악기인 ‘마두금’ 연주를 들려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거부하던 낙타가 눈물을 흘리면서 새끼에게 젖을 물린다고 하더군요. 시야말로 마두금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농사꾼에게 나쁜 땅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세상이 마음에 안들어서’ 등의 변명을 하며 게으름을 부리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시인은 농사꾼처럼 어떤 환경에서라도 시를 써야 합니다. 갈등 속에 들어가서 고통의 고리를 잡는 사람이 시인 아닐 런지요. 너무 장황하게 쏟아놓는 시도 문제가 있고요. 시는 정신의 긴 투쟁에서 건져 올린 보석이니 누구에게나 약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GBN 경북방송



황명강
선생님의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지금부터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 십시오.

천양희
(웃음) 독자들이 영원히 기억해 줄 불멸의 명작을 남기고 싶지요. 매일 매일 깊이 생각하고 다른 재주가 없으니 좋은 시를 쓰는 일이 전부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대는 인생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시간은 인생을 구성한 재료니까-하략-”라고 말했고 라이너마리아 릴케는 “시를 쓰지 않으면 살아 있는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시를 써라”고 했습니다. 처음도 끝도 하고싶은 일은 시라고 말해 두겠습니다.

황명강
선생님을 뵈면서 시에게 게으른 변명을 늘어놓은 제가 부끄럽습니다. 풍성한 시의 들판을 선생님과 거닐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천양희
수고 많았습니다. 제 18회 김달진 문학제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황명강
선생님의 시 한 편 낭송하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어제


천양희


내가 좋아하는 여울을
나보다 더 좋아하는 왜가리에게 넘겨주고
내가 좋아하는 바람을
나보다 더 좋아하는 바람새에게 넘겨주고

나는 무엇인가
놓고 온 것이 있는 것만 같아
자꾸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너가 좋아하는 노을을
너보다 더 좋아하는 구름에게 넘겨주고
너가 좋아하는 들판을
너보다 더 좋아하는 바람에게 넘겨주고

너는 어디엔가
두고 온 것이 있는 것만 같아
자꾸 뒤를 돌아다본다

어디쯤에서 우린 돌아오지 않으려나보다


ⓒ GBN 경북방송




(천양희 시인 약력)

출생 1942년 부산 출생
경남여중고,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5년 현대문학 '정원 한때'외 발표(박두진 시인 추천)
1996년 소월시문학상
1998년 현대문학상
2005년 제13회 공초문학상
2007년 제2회 박두진문학상
2011 제26회 만해문학상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83), ‘사람 그리운 도시’(88), ’하루치의 희망‘(92)
‘마음의 수수밭’(94), ‘오래된 골목’(98), ’너무 많은 입‘(2005)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2011)
산문집 ‘시의 숲을 거닐다’, ‘직소포에 들다’ 외 다수



(위의 내용은 문예지 '시애'에 게재되었음)
황명강 기자 / test@test.com입력 : 2013년 11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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