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배교수 음악산책(160)-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의 발자취와 우리의 국격(國格)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3년 1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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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마다 개최되면서 클래식음악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는 1958년 소련 정권시절에 시작된 제1회 대회에서 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Van Cliburn, 1934~)이 1위를 차지해서 미국의 국위를 선양했다.
제2회 때는 소련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Vladimir Aschkenazi, 1937~)가 우승을 하였다.
그 동안 이 콩쿠르는 많은 인재를 배출했으며, 이들은 세계음악계의 중추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와도 무관하지가 않다.
‘반공을 국시(國是)’로 하는 과거에, 우리 나라 첼리스트 정명화가 20세기 첼로계의 대연주가 피아티고르스키의 추천으로 한국정부에 출연승인을 요청했으나 좌절되고 말았으며, 동생인 피아니스트 정명훈씨가 1974년 1위없는 2위에 입상을 하여, 귀환 길에,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후 미국국적을 가진 바리톤 최현수씨가 미국의 소프라노 가수와 공동 1위를 차지했는데, 본선광경을 필자는 NHK위성 텔레비전을 통해서 감상을 하고, 당시의 감격을 잊지 못해서 녹화 테이프를 지금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1994년 피아니스트 백혜선씨가 3위에 입상을 했으며, 피아니스트 임동민․임동혁 형제가 입상을 한 후로 우리 나라 음악가의 입상 소식은 주춤했는데, 경제대국 일본의 물량공세 때문에 일본음악가의 입상이 두드러졌다는 세평을 받았던 것이다.
더욱이 2011년 14회 콩쿠르에서 우리나라는 기대하지 못했던 큰 성과를 올렸다. 이때의 성과를 살펴보면, 성악남녀부문에서 우리 나라는 소프라노 서선영․베이스 박종민이 나란히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 콩쿠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피아노 부문에서 손열음이 2위를 차지하면서 실내악․협주곡에서 최고상을 수상했으며, 콩쿠르 위촉작품상 최고연주가상까지를 받은 사실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한 쾌사라고 말해서 지나치지 않는다.
이들과 함께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각각 3위에 입상한 사실도 우리 함께 기억해 둘 일이다.
이 같은 성과를 두고 세계의 음악계는 “말많던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가 심사위원을 싹 바꾸니 한국이 떴다”고들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필자는 여기에다 “우리의 국격(國格)이 높아졌으니까 음악 예술의 본질을 인정받았다”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국제콩쿠르의 심사를 맡아 본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는 일회성(一回性)의 예술인 음악연주의 잘잘못을 가려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라나 가정의 품격이 클래식 음악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20세기 음악교육심리학자 제임스 머셀의 말을 기억하면서 심사에 종사한 일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된다.
안종배<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3. 11. 4. ahnjbe@hanmail.net |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3년 1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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