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배교수 음악산책(164)-20세기 최고의 명테너 엔리코 카루소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3년 1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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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3대 테너라고 부르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사망)․플라시도 도밍고․호세 카레라스가 전성기를 장식했다.
20세기 초 SP시대의 대성악가 표도르 이바노비치 샬라핀(Fyodor Ivanovich Shalyapin, 1873~1938)이나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는 3대 테너의 선배로 이름을 떨친 명연주가였다.
러시아 출신의 베이스 샬라핀은 성악의 신(神)이라 불릴 정도로 명성을 날렸으며, 더욱이 이탈리아 성악가 카루소는 마치 전설과도 같은 많은 일화를 남겼다.
카르소는 화려한 목소라와 아름다운 음질, 풍부한 성량으로 20세기 최고의 명테너였을 뿐 아니라 그의 가창법은 20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형으로 추앙을 받았다.
1873년 이탈리아 민요의 도시 나폴리에서 가난한 기계기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0세 때 교회 성가단에서 노래를 했다. 이때는 성악가가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노래를 좋아해서 시골에 있는 공장의 직공 일을 하면서 취미로 교회 성가단에서 노래를 한 것이다.
그러나 차차 나이가 들고 음악에 취미가 생기게 되자 18세 때 좋은 선생을 만날 수가 없어서 그의 목소리는 거친 소리를 냈기 때문에 친구들이 “까마귀 소리”라고 놀려대서 성악가가 되겠다는 희망은 갖지 안 했다.
카루소는 성악가가 되는 것을 단념하고 군대에 입대를 했는데, 여기서 그는 성악가가 되는 행운을 잡았다. 카루소가 입대한 군부대의 부대장이 그의 아름다은 목소리를 발견하고 감탄을 해서 몇 개월 동안 특별 휴가를 주어서 성악공부를 시킨 것이다.
1891년 이해심이 많은 계모의 권유로 군대에서 전역을 한 후, 본격적으로 전문성악가에게 사사를 하면서 성악공부에 매진을 했다.
카루소가 처음 오페라 무대에 선 것은 1894년이 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목소리는 성량이 풍부하지 못해서 당시의 명테너 타마뇨는 카루소를 테노리노(작은 소리의 테너)라고 야유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카루소의 전성기에는 타마뇨에 못지 않게 포르테시모를 낼 때는 스칼라좌의 천장에 있는 샹들이에가 공명을 해서 소리가 울렸다고 한다.
24세 때 카루소는 아름다운 소프라노 가수 자케테와 결혼을 했다. 두 아이를 둔 단란한 가정생 활이었는데, 카루소가 남미로 연주여행을 떠난 사이 아내는 아이들과 남편을 버린 체 다른 남자와 가출을 하고 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날 저녁에 카루소가 연주한 곡목이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파리아치」였다.
그는 두 번째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의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내가 오페라「파리아치」에서「의상을 입어라」를 노래하면 관중들이 함께 울어주었다. 내가 처참한 심정을 직접 경험했기 했기 때문이다”
48세의 짧은 일생을 마친 엔리코 카루소는 20세기의 구도자적(求道者的)인 성악가라고 존경을 받았다.
안종배<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3. 12. 2. ahnjbe@hanmail.net |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3년 1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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