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조각 거장 문신, 그리고 최성숙’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에서 다시 본 그의 조각 인생
진용숙 기자 / ysjin130@korea.com 입력 : 2013년 12월 02일
|  | | | ⓒ GBN 경북방송 | | |  | | | ↑↑ 문신 작 <올림픽 > | | ⓒ GBN 경북방송 | | 각종 예술행사가 곳곳에서 열린 포항의 가을. 지난 달 3일 인간중심의 자연 환경을 지향한 포항운하 통수식이 열렸고 이에 맞춰 2013년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한 달간 마련됐다. 지난 9월 14일부터 10월 18일까지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진행된 프레전시 기간을 포함하면 무려 두 달간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  | | | ↑↑ 포항시립미술관 소장 문신 작 <개미> | | ⓒ GBN 경북방송 | | 수많은 체험행사와 전시행사 중에서도 우리가 언제까지나 기억해야 할 작품이 문신조각가의 ‘하늘을 나는 꽃’ 외 2점의 조각 작품이다.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文信.1923~1995). 미와 진실과 화합을 믿었던 그는 애초 예술에의 순교를 각오한 사람이었다.
“나는 노예처럼 작업하고, 나는 서민과 함께 생활하고, 나는 신처럼 창조한다”는 인상적인 이 한 구절은 영원히 그의 작품세계를 대변할 것으로 보인다.
1998년 서울올림픽 기념으로 올림픽 공원에 설치한 25m높이의 ‘올림픽 1988’은 작가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작품에는 하나같이 탄성을 지른다.
|  | | | ⓒ GBN 경북방송 | | 그 여운이 포항에서도 남을 것인가? 아트페스티벌에 기증된 스틸아트작품 ‘하늘을 나는 꽃’은 예술 하나로 세계 속에 한국을 빛낸 불멸의 예술거장 문신이 찬란하게 부활해 예술한국의 천년의 빛이 되기를 소망하는 순간이었다.
사실적 형상조각의 한계를 넘어 작품에 구체적 생명을 부여하고 형언할 수 없는 심미감을 불러 일으킨 창작품, 또는 생명 조각들. 포항아트페스티벌운영위원회는 이 작품들을 포항운하 광장에 영구히 설치해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길 예정이다.
때문에 오는 30일까지는 아트웨이를 찾는 관람객을 위해 아트웨이 해설투어도 실시하고 있어 많은 작가와 시민들이 작품을 보기 위해 그 길을 찾고 있다. 스스로 “자신은 처절한 예술의 노예”라 할 만큼 문신 작가는 치열한 작업관과 불꽃같은 예술혼으로 독창적인 예술세계 펼쳤다.
어느 미술가가 “문신은 위대한 예술가이며 미래가 기억해야 할 조각가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는 전위작가인 동시에 한국예술의 전통을 여러 세기에 걸쳐 심어놓은 거장들의 특질을 이미 갖추고 타고난 예술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지병으로 타계한지 8년째. 하지만 그의 작품은 세계적인 언론의 극찬을 받고 있다. 창작에 대한 끝없는 열정은 문신 양식을 탄생시켰고 세계 곳곳에 그의 작품이 남아 대한민국을 알리고 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문신의 독창적인 예술작품 앞에 서면 경외감이 드는 것은 부와 명예가 보장된 유럽화단을 버리고 험난한 여정을 예고했던 고향 마산에 정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  | | | ↑↑ 하늘을_나는_꽃_스테인레스_스틸_1991_181x233x103[1] | | ⓒ GBN 경북방송 | |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개막식이 열린 날,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관장이자 숙명여대 회화과 만년 교수인 최성숙교수(68)가 포항을 찾았다. 작고한 남편의 작품을 포항에 세 점이나 기증했고, 작품 제막식에 참가하기 위해 포항을 찾은 것이다.
다양한 식전 행사를 끝으로 인간 친화적인 공간과 자연친화적인 스테인리스스틸 작품 ‘하늘을 나는 꽃’이 절제의 세련미를 나타내며 포항에 얼굴을 내미는 순간 이병석국회의원도 문신조각가를 극찬했다.
최성숙교수는 남편의 말이 나오자 저절로 힘이 솟는듯 했다. 1981년 문신과 부부로 살면서 14년간 함께 작업을 했다. 그리고 16년만에 남편을 떠나보냈다. “남편의 투철한 작가정신을 지금도 가장 가슴아파한다”는 최교수는 “작품을 국가에 기증해달라”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석고로 만든 마산 원형미술관에 116점을 기증했다고 한다. 이후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이 건립되면서 거기에 많은 작품이 소장됐고 그것이 대학미술관 1호로 자리잡고 있다.
문신선생은 타계했지만 가장 의지하고 존경했던 아내에 의해 한 사람의 위대한 예술이 새로운 예술문화 역사창조를 위해 전진을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고독과 신비로 영글어진 문신예술의 위대한 독창성 때문”이라고 최교수는 말한다.
남편의 작품을 지키고 위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온 몸으로 맞섰던 최교수는 문신의 작품을 보존하고, 자료를 정리하고, 문신의 예술세계를 알리고, 공인으로써의 문신을 재조명하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노력한다.
|  | | | ⓒ GBN 경북방송 | | 고인의 뜻에 따라 남편과 함께 14년에 걸쳐 만들고 가꿔온 문신미술관(마산시 추산동)은 지난 2003년 마산시에 기증했다.
소장 조각작품과 드로잉작품, 유화, 작업공구 등 일체는 숙명여자대학교 문신미술관에 기증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예술 천 년의 빛을 향해 내린 결단이었다.
<다음은 최성숙교수와의 1문 1답>
|  | | | ⓒ GBN 경북방송 | | ▲문신선생의 작품이 몇 나라, 어디에 소장돼 있습니까?
-파리 시립미술관, 헝가리 국립미술관, 유고 등지에도 많지만 개인소장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와 만나기 전의 일이기 때문에 상세히는 모르지만 내가 알고 있는 개인 소장자가 많습니다.
▲그럼 국내에 남아있는 문선생님의 작품은 어느정도 인가요?
-국내에는 조형물이 30여점 됩니다. 유명세보다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1천점은 돼야 하는데 400여점이 남아있으니까요. 개인 소장가들이 많이 갖고 있습니다.
|  | | | ⓒ GBN 경북방송 | | ▲포항에는 몇 작품 기증하셨나요.
-포항은 3점입니다. 포항을 상징하는 스테인리스스틸작품 작품입니다. 포항 외 다른 곳에도 지역과 장소에 맞는 작품들이 기증됐습니다.
▲문신선생님의 최고 대표작품은?
-스테인리스, 흑단 등 종류가 많다. ‘우주를 향하여’라는 흑단작품, 1970년 작업해 남프랑스에 영구 전시된 나무작품 ‘태양의 인간’, 88올림픽때 작업한 25미터 대작 등 등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수작이기 때문에 분류하긴 힘들어요. ▲문신선생님의 작가정신과 예술세계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엄격함과 정열의 작가입니다. 그리고 문신의 예술은 그리움과 정직의 예술입니다. ▲문신선생과의 만남에는 어떤 계기가 있나요?
-나는 포항과 인연이 있습니다. 박태준포스코 전 회장이 시숙이었습니다. 남편은 나와 같은 학과 동기(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였는데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해외여행에 나섰다가 문신선생님을 만났습니다.
|  | | | ⓒ GBN 경북방송 | | ▲앞으로 역점 사업은 무엇입니까?
-세계 어디를 가도 문신은 통합니다. 이게 다 문신선생님이 원칙주의자다 보니까 통하는 거죠. 앞으로 자료박물관도 만들어야 하고 홍보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무척 많습니다. 여러분께서 도와주신다면 문신선생님이 이루고자 했던 필생의 사업들이 빛을 볼 것으로 생각합니다. |
진용숙 기자 / ysjin130@korea.com  입력 : 2013년 1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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