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진의 '역사 산책'-1회 들어가며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1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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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문화를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가 알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고대사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대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었다. 필자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다.
필자가 한민족 초기공동체를 주도한 엘리트 세력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초기 한국사를 주도한 엘리트들은 대부분 유라시아 문명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사람들의 후예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상고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첫째, 상고시대의 역사와 문화는 교류와 흐름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이해해야 한다. 둘째, 특정 지역의 역사 ․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문화 공동체의 주변 지역에 대한 공간적인 이해와 당시의 인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셋째, 상고시대의 역사 ․ 문화는 비교적 긴 시간동안 형성된 내용을 다룬다. 때문에 기후의 변화로 인한 환경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유적학적인 연구 결과를 참고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연재할 글을 통해서 독자들은 한민족의 문화의식이 유라시아 문명사와 맥을 같이 해 왔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유라시아 문명사와 연계한 한국고대문화 읽기는 지구촌 시대의 시민으로 주변 문화 집단과 동질감을 느끼는데 커다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김병모는 한국사는 고대사로 갈수록 국제사(國際史)이고 근대로 올수록 국지사(局地史)로 변했다고 했다. 옳은 지적이다. 상고시대에 기반을 둔 우리의 문화코드를 풀다보면 한국인의 얼 속에는 유라시아 대륙의 얼이 녹아있음을 발견한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 살아있는 얼에 잠재되어 있는 세계인으로서의 의식은 한민족의 무한한 잠재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국수주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의 당당한 일원이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잊었던 우리 문화코드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교류와 흐름-
인류의 역사는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한 부단한 투쟁과 이동의 역사였다. 상고시대로 갈수록 열악한 도구를 가지고 생존해야만했기 때문에 생존 그 자체가 매우 힘들었다. 열악한 조건일수록 주변 환경에 변화가 오면 생존에 큰 타격을 입는다. 지구의 환경이 수시로 바뀌었음은 많은 연구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그때마다 인류는 그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끊임없이 이동해야만 했다. 그러한 이유로 상고시대는 일정한 주기마다 사람들이 이동했으며, 그 결과 문화는 전파되고 사람들은 섞여서 살게 되었다.
선사시대의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문화가 사람의 이주에 의해서 전파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상고시대의 문화는 대부분 주민의 이동을 수반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가까운 이웃과의 교류에 의한 전파가 파도처럼 이어질 수 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주민의 이동과 함께 전파되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 4대 문명 발상지만 해도 그렇다. 우리들은 그들 문화가 독자적으로 형성된 것처럼 배웠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고고학자들의 자료 발굴과 연구 성과로 이제는 그들 상호간에 상당한 교류가 있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인더스 문명 간에는 상당한 규모의 무역이 행해졌음이 밝혀졌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민이 남하하여 초기 이집트 문명을 건설하는데 공헌한 것도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황하문명이라고 알고 있는 중원 신석기 문화는 앙소문화인데, 이 문화의 특징인 채도문화는 이란 평원이나 중앙아시아 서남부 지역인 투르크메니아 지역의 채색도기의 영향을 받았음이 확인되고 있다.
-공간적인 이해와 인구에 대한 감각-
특정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주변지역에 대한 공간적인 이해와 당시의 인구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특정지역의 문화가 형성되는 데는 주변지역과의 문화교류도 있었을 것이고 주민의 이동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고시대를 현재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잘못이다. 현재 지구에는 65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각 지역이 국경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상고시대에는 국경이란 것 자체가 없었으며, 인구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적었다. 가령 기원전 3500년경의 중국 요서지역의 인구는 5만~8만여 명에 불과했다. 그보다 이른 흥륭와 시대에는 1만여 명에 불과했다. 기원전 8~7세기경 스파르타의 인구는 8천 내지 1만 정도였고, 한 나라라 때인 기원 전후로 실시된 인구 조사에 따르면 만주의 총인구는 100만 명 수준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웃 문화공동체에서 주변으로 주민이 확산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왜냐하면 생존공간을 두고 극단적인 투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경선을 기준으로 상고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면 실체적인 진실에 다가서기 어렵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주민과 문화가 이동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당시의 여건 때문이다. 일본 인류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이 비교적 고립되어 살던 시절인 죠몬 시대(기원전 4세기 이전)의 열도 전체 인구가 26만 여 명에 불과 했다. 일본 열도에 그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 남부 주민이 벼농사를 가지고 건너가 야요이 문화(기원전4~기원후 3세기)를 개척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특히 죠몬인들은 수렵 ․ 채집 위주의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농사기술을 가지고 건너간 주민들과 충돌이 적었다. 생활터전을 두고 충돌할 일이 적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역사변동-
상고시대 인류 이동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 중의 하나는 기후의 변화였다. 지구의 기후는 반복적으로 상승과 하강을 계속하면서 인류의 생존 조건을 위협했다. 신석기 시대의 주민이 이동하고 확산하는 과정에도 기후의 영향이 매우 컸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도 기후변동으로 인해 북쪽의 산악 지역이나 그 이북의 주민들이 대거 남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과거 1만 년 간 지구의 기후 변동에 대해서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그 영향력이 심대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대략 지금으로부터 9천년에서 1만년까지(기원전 8,000~7,000)는 연평균 온도가 지금보다 섭씨 5도 정도 낮았다. 이후 기후는 줄곧 상승하여 지금부터 7천년에서 3천년까지(기원전 5,000년~1,000년)는 온난한 기후로 지금보다 섭씨 3~5도 정도 오히려 높았다. 세계적인 기후학자들의 예측에 의하면 21세기 말 이내에 적어도 현재 보다 3~4도 기온이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지구의 환경은 현재와 상당히 다른 국면에 처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한반도 남쪽 보다는 만주와 연해주 지역이 살기에 적합한 공간이 될 것이다. 따라서 문명의 중심축도 상당히 북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신석기 시대에도 겪었던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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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중동부에서 탄생한 현생인류의 조상의 전 세계 확산경로- 이러한 기후 변동은 동일한 지역에서 장기적으로 문화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그러한 위기상황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사람들은 이동했다. 그러한 이동의 역사를 이해하면서 한국 상고사의 주역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동은 삶의 조건을 압박하고 이는 사회불안 조성하며 사회불안은 정치적 변화를 가져온다. 때문에 기후 변화가 상고시대의 역사 문화 변동의 중요한 변수가 된다. 그러한 기후 변화로 발생하는 불안 때문에 사람들은 남북 방향으로 혹은 동서 방향으로 이동했다.
-유전학적 연구 결과와 주민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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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조상의 이동-단국대 김욱교수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의 유라시아 인골 표본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신라인의 부계는 스키타이 인골과 가장 가깝고, 모계는 서흉노나 스카타이와 가깝다고 한다. 이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스키타이인들은 천산 너머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천산 주변을 넘나들었다. 필자도『실크로드를 달려온 신라왕족(2005)』이라는 책에서 신라 김씨 왕족이 스키타이 계통인 사카족과 혈맥적으로 닿아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최근에 각광 받고 있는 유전학전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에 출발한 몇 명의 어머니, 즉 ‘미토콘드리아 이브’를 공동 조상으로 해서 현생 인류가 파생하였다고 한다. 지도를 보면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중동을 거쳐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단국대 생물학과의 김욱(인류유전학)교수도 유전학적 연구를 통해, 우리 조상의 주류는 기마민족이 아니라 농경민족이라는 주장을 새롭게 제기했다. 그는 “한국인의 유전자(DNA)를 분석해 기원을 추적한 결과 우리 조상의 주류는 중국 중북부의 황허(黃河)와 양쯔 강 일대에 농경문화를 꽃피우던 민족이었으며 일부만이 북방의 유목 기마민족에서 유래했다”고 밝혔다. 이 조사 결과는 지금까지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주요 학설로 인정받던 ‘북방(몽골) 기마민족 단일 기원설’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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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하플로타입의 세계적인 분포(jobling MA, Tyler-Smith C. 2003)-
이러한 생물학적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민족의 이동루트를 고려해보면 황허와 양쯔강 사이에 살던 농경민족이 동북으로 이주했고 그들이 만주를 거쳐서 한반도로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한민족의 이동루트는 필자가 『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2006)에서 주장한 내용과 일치한다.
필자도 알타이와 바이칼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동으로 이동한 사람들이 한민족의 주류를 이루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지금까지의 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현재도 바이칼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한민족의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한민족의 유전학적 기원을 연구한 이홍규(서울대 의대)는 한국인의 유전형은 동남아시아를 통하여 들어온 소수(25%)와 시베리아를 통하여 이동한 다수(75%)의 사람들의 것이라고 보았으며, 북방인들의 출발지를 알타이―바이칼 호―아무르 강 유역에 걸친 지역으로 보았다.
필자는 김욱과 이홍규의 주장 모두가 부분적으로 타당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한민족의 초기 원형을 구성한 두 집단, 즉 환웅과 웅녀[곰족]세력은 그 이동 루트가 다르기 때문이다. 환웅은 천산 주변 혹은 그 너머의 세계에서 중원을 거쳐서 동북지역으로 진입했고, 웅녀 집단은 알타이―바이칼 지역에서 동남으로 이동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제기하고 있는 두 길에 부합하는 유전학적 흐름은 영국의 생물학자가 연구한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그가 제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Y염색체유전형’은 주로 3가지, C, D, O형으로 구성되었다. 자료를 보면 O형은 한국인[가]이 몽골인[다]보다는 중국 북부인[나]과 더 가깝고, C형은 중국 북부인 보다 몽골인에 더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이는 한국인의 조상이 두 그룹으로 나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는 중국의 중부지역 주민과 관련이 있고, 다른 하나는 바이칼을 중심으로 한 몽골지역과 관련되어 있다.
현재의 유전학 연구 성과만을 두고 볼 때 한민족을 구성한 주요 세력은 천산을 넘어온 사람들, 중국 중원에 뿌리를 둔 사람들, 그리고 바이칼이나 몽골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다.
-새로운 눈으로 상고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보자-
상고시대는 유라시아 초원을 매개로 동 ․ 서가 끊임없이 교류하고 이동하면서 민족과 문화가 융합되고 새로운 문화가 탄생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전파설’을 강조하지만 상고시대에는 주민의 이동을 수반한 문화 전파가 많았을 것이다.
상고시대의 역사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인문 ․ 지리적 조건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열린 마음으로 역사나 문화를 이해하면 의외로 한민족의 그것이 유라시아 전체 역사나 문화와 연결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린 시절 우리는 한민족은 단군 이래 단일민족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민족을 구성한 초기의 주민들이 여러 종족일 것이라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필자도 오랜 상고사 연구를 통해서 한민족을 구성한 엘리트 종족이 여럿임을 밝힌바 있다. 그 대표적인 종족으로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웅세력인 공공족이 있으며, 그 공공족과 연합하여 단군시대를 연 후기 홍산문화의 주인공인 맥족이 있다.
다음으로 고구려 백제의 시조와 관련된 부여족인 프리기아인들이 있고, 신라 김씨왕족과 관련된 사카족도 있다. 이들 중 몇몇 종족은 천산 너머에서 동으로 이동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동으로 이동하면서 현지인과 혼혈종족을 이루며 한반도로 들어왔다. 이들 이외에 한민족을 구성한 세력으로 주목해야 될 종족은 선홍산문화의 주인공이었다가 남으로 이동했던 동이족, 그리고 한반도에 선주해 있던 고아시아족이 있다. 마지막으로 남방에서 한반도로 이주해온 사람들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각각의 종족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후에야 우리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한민족의 종교문화는 마치 시루떡과 같은 형국을 하고 있다. 시루떡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한 덩어리의 떡임에는 틀림없으나, 떡시루 속에 담겨진 각각의 떡은 다른 시기 다른 주민들이 쌓아놓은 떡[문화]이다. 특히 고대의 문화유산은 대부분 그들의 우주관이나 생명관과 관련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각 시대의 엘리트 주민들이 누구인가와 그들의 우주관이나 생명관이 어떤 것이었던가를 알아야 한다.
그러한 이유로 필자는 오랫동안 한민족을 구성한 초기 종족들에 관해서 연구했다. 그들을 알아야만 그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문화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연재하는 글들을 통해서 한민족 형성의 주역들의 시각으로 새롭게 고대문화 읽기를 시도해 보려고 한다. 특히 필자가 주목했던 것은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바위에 새겨놓은 많은 문화유산이다. 상고시대를 파악할 수 있는 문헌자료가 부족한 입장에서 ‘땅에 새겨 놓은 글(地文)’이야 말로 귀중한 자료이다. 그것들은 한민족 공동체를 이끌던 초기 주민들의 신앙 표지(標識)이다. 그 표지가 어느 시대 어떤 엘리트 주민들이 그들의 백성들을 이끌기 위한 상징들인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강사소개
저서 - 1958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하여 1985년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경주에 머물면서 한국 고대사와 고대 종교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장기간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한민족의 상고사를 주도한 지배 종족에 관한 연구서를 출간하였다.
먼저 한민족의 주요 구성 종족인 부여족의 기원과 이동에 관한 연구서인『고깔모자를 쓴 단군』(백산자료원, 2003년)을 발표했으며, 다음으로 신라 김씨 왕족의 뿌리를 밝힌『실크로드를 달려온 신라왕족』(일빛, 2005년)을, 2006년에는 한민족 정체성의 근간이 되는 환웅족의 유라시아 이동사인 『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일빛, 2006년)을 출간했다. 최근에는 한민족 고대문화를 유라시아 문명사의 시각으로 풀이한,『바람타고 흐른 고대문화의 비밀』(소나무, 2011년)을 출간했다. 논문으로는『《시경》한혁편의 한후와 한씨조선에 관한 새로운 견해』(『단군학연구』 13호)가 있다.
2014년 『진인의 눈으로 본, 한국고대사의 흐름』, 알에이치코리아(전 랜덤하우스 코리아)에서 출판예정.
강의 - 현 포항mbc 라디오 프로 ‘정형진의 고대문화 새로읽기’ 출연 중, 부산 KBS 시민대학 강의, 부산 백년어 서원, 부산인재개발원, 부산 신생인문학연구소, 2013년 부산KBS ‘고전아카데미’와 2013년 후반기 시민대학 강의. / 경북대부설 통일시민대학 특강 / 2012년 2월 안동평생학습원 -명사초청 특강 / 2012년 6월 서울 국학원에서 <환웅세력의 이주와 홍산문화>라는 제목으로 강의, 대전 증산도 연구원에서 특강 / 2012년 6월 경상북도 정체성 포럼 화랑분과위에서 <박혁거세를 고리로 화랑도 이해하기>발표, 같은 해 경북공무원교육원에서 강의 / 2011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스키타이 황금문명전 기념특강> 유라시아 초원의 문명 10회차 ‘고깔모자를 쓴 단군’ 강의 / 2009년 봄부터 2010년 봄까지, 부산 국제 신문에 ‘고대문화 만든 사람의 시각으로 다시 읽기’ 1년 간 매주 연재. / 기타-대전국립중앙과학관, 금정구청, 동래구정, 중구청, 부산 영도구 청학동, 다대포 도서관, 사상 자활센터 등에서 특강. |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1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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