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진의 '역사 산책'(3회)-김해 수로왕릉 납릉문에 있는 쌍어문의 비밀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1월 15일
|  | | | ⓒ GBN 경북방송 | | ★오늘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네, 오늘은 김해에 있는 수로왕릉 납릉문에 있는 쌍어문(신어사상)이 시대를 달리하며 북방과 남방 루트를 통해 두 길로 한반도에 들어온 문화라를 것에 대해해서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수로왕릉 납릉문 양쪽에 그려져 있는 쌍어문(쌍어문은 탑을 사이에 두고 두 마리 물고기가 마주보고 있는 그림)은 인도에서 온 수로왕의 왕비 허왕옥과 관련된 문화라고 알고 있는데요. 사실인가요? 네 수로왕과 허황후는 국제결혼을 했죠. 『삼국유사』가락국기에는 허황옥이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로 성은 허씨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열여섯이옵니다.’ 이때 아유타국, 즉 아요디아Ayodhia는 갠지스강 중류에 흐르는 사라유 강변에 자리 잡은 고대 도시로 코살라국의 수도이다. 당시 해상교통을 통해 인도까지 교역한 기록이 있다.
언어와 유전학적으로도 인도와 한반도의 교류사실이 증명된다. 우선 언어학적으로 인도의 드라비다어가 한반도 남부에 상당히 남아 있다. 가령 벼, 농기구인 가래, 메뚜기, 쌀 등은 현재에도 인도 드라비다족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현재 한국어와 인도 드리비다어 중 그 뜻과 발음이 유사한 것이 400단어나 된다고 한다.
2004년 한림대․서울대 연구팀은 - 미토콘드리아 유전물질을 추출해 분석하는 방법으로 “허황옥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김해 예안리 고분 등에 묻힌 왕족 유골을 분석한 결과 우리 민족의 기원으로 분류되는 몽골의 북방계가 아닌 인도의 남방계라는 결론을 내렸다”
★쌍어문이 허황후의 이주와 함께 남방에서 들어온 문화인가요? 네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죠. 물론 부정하는 사람도 있어요.
아유타국을 아요디아와 공개적으로 처음 연결시킨 사람인 아동문학가 이종기선생인데요. 이분은 직접 아요디아를 방문해서 허황후의 흔적을 추적했어요. 그는 아요디아를 직접 방문하여 수로왕릉 정문에 새겨진 쌍어문이 인도의 아요디아 지역에서 발견되는 문양과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쌍어문을 집요하게 추적한 사람으로 고고학자인 김병모를 들 수 있다. 그 또한 아유디아를 직접 방문했다. 그는 아요디아 지방에는 신어상들이 힌두교 사원의 대문 위에 빠짐없이 새겨져 있으며, 박물관 정문에도 신어상, 자동차의 번호판에도 신어상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가 신어사상의 이동로를 추적한 것을 보자. 코살라국은 기원전 70년 박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쿠샨왕조의 침입으로 붕괴된다. 이때 아요디아에 살던 왕족 중 일부가 중국의 사천성 안악(安岳)지역으로 이주했다. 안악지역에 지금도 허(許)씨 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성촌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지역의 청동제 유물이나 한 대의 벽돌에도 쌍어문이 나타나는 것으로 그러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후한서』에 따르면 안악에 살던 허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후한에 반기를 들었다가 실패한 후 양자강 하류의 무창(武昌)으로 강제 이주 당한다. 그의 결론은 허황옥은 그들의 정착지인 무창 지방을 떠나 바다를 건너 한반도 김해의 가락국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또한 문명사가인 정수일교수도 이 같은 유사성은 ‘아요디아풍의 건축문화가 수로왕의 재임 전후 가야에 유입된 것일 가능성을 암시한다’고했다.
★그렇다면 쌍어문은 인도의 아요디아 지방에서 김해로 들어왔다고 해도 문제가 없겠네요. 네 맞습니다. 그러나 쌍어문 사상은 김해로 들어오기 훨씬 이전에 북방을 통해서도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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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떡과 명태 두 마리가 제물로 바쳐지고 있다
★네 그게 사실인가요. 어떤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죠? 사실 이런 주장을 하면 사람들이 당황스러워 하죠. 하지만 사실입니다. 요즘에는 쉽게 볼 수 없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시골에서 굿을 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었어요. 굿을 할 때 제물로 바치는 시루떡 위나 옆에 두 마리 명태를 꽂아두었는데, 그것이 신어사상과 관련된 문화유습이었죠. 또 있습니다. 조선후기 서울 지방에서 행한 12거리굿을 그린 책인 <무당내력>을 보면 굿이 끝나고 마지막 뒷전거리를 하는 장면이 있어요. 무당이 양 손에 명태를 한 마리씩 들고 잡귀신들을 물리치고 있어요. 이 때 사용하는 두 마리 명태도 신어사상과 관련 있어요.
★굿을 할 때 제물로 바치는 두 마리 명태나 뒷전 거리에서 무당이 양 손에 든 두 마리 명태가 쌍어문이 어떻게 연결되죠?
네, 사실 신어사상이나 두 마리 명태를 신에게 바치는 풍습이나 두 마리 명태를 들고 잡귀신을 물리치는 문화는 아주 오래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생했습니다.
김병모는 신어사상 처음에 앗시리아(기원전 2700)에서 발생해 페르시아를 지나 스키타이에게 전달되었고, 이것이 간다라 지방을 거쳐서 인도로 들어와 아요디아에 이르렀으며, 다시 동진하여 중국 운남성에 도달했다. 그는 이것이 무창을 거쳐서 가야에 도착했다고 보았다.
문명사가인 정수일은 원래 쌍어문은 근 3,000년 전 바빌로니아인들이 신앙의 상징으로 삼은 무늬라고 했다.
구약성서에 어문(Fish Gate)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여기서 어문은 바빌로니아에서 신전 대문 위에 그려진 물고기를 말한다.
※사실 신어사상은 앗시리아나 바빌로니아 보다도 더 일찍 발생했어요. 신어사상의 고향은 인류 최초의 도시라는 메소포타미아의 에리두이다. 에리두에는 오안네스라는 현인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홍수 이전시대의 현인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술이나 예술을 창시한 사람들이며, ‘에리두를 정화하는 사제’로 불렸다. 또한 그들은 물의 신이자 대지의 지배자인 엔키의 사제였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문화에서 쌍어문사상이 나왔어요.
★그렇군요. 쌍어문을 모시는 신어사상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생한 것은 확실하네요.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북쪽 대륙을 통해서 한국까지 전파되었다는 것인가요?
고고학자 김병모는 ‘한국의 고대사는 국제사’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수로왕 뿐 아니라 한민족의 초기사를 보면 이주민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아요. 단군만해도 환웅이라는 이주민과 현지의 웅녀가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여족, 신라김씨 왕족도 이주민들이죠. 때문에 대륙 서쪽의 문화가 한반도로 끊임없이 흘러들어왔습니다. 그 와중에 쌍어문 문화도 북방을 통해서 들어오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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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복장을 한 엔키(하나님)와 우트나피쉬팀(노아)의 방주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생해서 한반도까지 전파된 사정을 설명할 수 있나요?
지난 시간에 금정을 이야기 할 때도 약간 언급하였지만, 두 마리 물고기가 상징하는 것은 지하 혹은 삼신산 아래에 있는 생명의 강에서 온 사자입니다. 그들은 생명의 고향에서 지상으로 파견된 자들이기도 하죠. 그래서 그들은 지상의 인간들에게 농경과 의술 등 모든 지식을 전해준 자들이며, 부정한 것을 정화하기도 하는 신들의 사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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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물고기 주교관
그런데 초기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대지와 지하의 생명수를 관장하는 생명의 신이 바로 엔키라는 신이지죠. 이분이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됩니다. ★정말인가요? 네 정말입니다. 물론 문화적으로 보았을 때 엔키가 하나님에 대응한다는 의미입니다. 기독교를 믿는 분들은 달리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문화사에서 엔키를 나타낼 때 물고기 모자를 쓴 신으로 표현합니다[사진]. 그런데 아십니까? 교황님이 쓰시는 주교관은 물고기 머리를 나타내요. 엔키와 그를 모시던 사제들이 쓰던 물고기 모자 전통을 계승한 것이지요. 이 부분은 서양 문화사에서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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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안네스(아다파)의 구마(驅魔)의식-바빌론
★엔키 신앙이 기독교로 전승되기도 했고, 우리 무속에도 남아 있다는 말이네요? 네 문화적으로만 보았을 때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무당이 고깔모자를 쓰고 무술을 행하는 것이나, 엔키의 사제 오안네스가 물고기 모자를 쓰고 귀신을 쫓는 구나의식은 동일한 것이지요.
엔키 신앙이 천산산맥을 넘어 중원 신석기문화인 앙소 문화 채색 도자기 문화에 나타나죠. 황하 중류지역으로 사람과 함께 전파되었던 것이지요. 이 문화가 제가 환웅이라고 주장하는 앙소문화의 주인공인 공공족과 함께 동북지역으로 전파되었다가 한반도까지 들어온 거예요.
※참고 : 쌍어문이 남아 있는 절로는 울산 개운사, 김해 은하사, 양산 통도사 삼성각, 양산 내원사 화정루, 양산 계원사 대웅전 등. |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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