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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진의 '역사 산책'(5회)- 삼족오는 고구려의 국기인가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1월 29일
ⓒ GBN 경북방송
오늘의 주제는 어떤 것이죠?
네, 고구려와 관련된 역사 드라마를 보면 마치 삼족오가 고구려의 문장인 것처럼 사용되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삼족오가 고구려의 독자적인 문화유산이며 고구려의 국기인 것처럼 오해합니다. 오늘은 삼족오의 기원과 그것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 알아보겠습니다.

늘 궁금했는데, 삼족오는 무엇을 상징하죠?
네, 가장 쉬운 말로 하면 삼족오는 태양을 상징하는 새죠. 그런데 유라시아 문명사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새인 태양새로는 까마귀, 닭, 독수리, 매 등이 있다. 지면 관계로 삼족오 이외의 태양새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태양새인 삼족오의 다리가 세 개인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네, 문헌상으로는 전한시대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춘추원명포』라는 책에 삼족오란 명칭이 처음 나와요. 그 책에서는 음양론의 논리에 따라서 ‘양(陽) 가운데 가장 큰 양’인 태양(太陽)을 상징하는 까마귀에 ‘양의 수’인 3개의 다리를 붙여놓았다고 설명했어요. 태양이 양(陽)이고, 3이 양수(陽數)이므로 까마귀의 발이 3개라는 것이죠.


ⓒ GBN 경북방송
조선후기 칠교도보에 보이는 봉우리가 세 개인 삼신산

그러한 주장이 옳은 건가요?
천만에요. 그것은 음양론이 나온 이후의 발상이죠. 음양론은 전국시대에 완성된 이론이죠. 그런데 삼족오는 음양론과 상관없이 신석기시대의 앙소문화기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 앙소문화는 우리가 어릴적 배운 세계사 지식으로 말하면 황하문명을 말하죠. 그러니까 황하문명 초기에 이미 삼족오에 관한 의식이 있었던 것이죠. 따라서 삼족오의 기원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서 어떻게 찾죠?
네, 저는 삼족오의 다리가 세 개인 이유는 태양의 운행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삼족오는 태양새인 까마귀 다리를 세 개로 표현한 것이잖아요.

태양새인 삼족오와 태양의 운행을 연결해서 해명한다구요?
네, 쉽게 설명해 볼까요. 단군신화는 잘 아시지요. 단군신화에 보면 하늘나라에서 환웅이 하강한 곳이 삼위태백이죠. 그 삼위태백에서 삼족오의 비밀을 찾을 수 있다.

삼위태백에서 삼족오의 비밀을 찾을 수 있다구요?
네, 『중문대사전』을 보면 삼위태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삼위는 이적(夷狄)이 봉우리가 세 개인 산을 일컫는 말이다.” 이 말은 중국 동북지역에 사는 오랑케인 이적 사람들이 ‘봉우리가 세 개인 산을 삼위태백’이라고 한다는 말이지요.

삼위산이 오랑캐들이 봉우리가 세 개인 산이라고 한 것과 삼족오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죠.
네, 현재도 중국 서부에 있는 이적들(오랑캐)의 땅인 둔황, 그러니까 불교유적이 대량으로 남아 있는 둔황 석굴 주변에 있는 명산이 있는데, 그 산이 삼위산이예요[사진]. 사진을 보시면 삼각형 모양의 봉우리가 정상부근에 세 개 나란히 있는 것을 볼 수 있죠.

ⓒ GBN 경북방송

돈황에 있는 삼위산

그렀네요. 봉우리가 세 개 네요.
금문, 그러니까 청동그릇에 새겨진 글자에서 삼신산을 나타낼 때도 삼각형 세 개를 연결한 산으로 표현했어요.

저는 이 삼위산에서 삼족오가 다리가 세 개인 이유를 찾았어요. 무슨 말이야 하면, 삼족오는 태양새인 까마귀를 표현한 것이잖아요. 자 제가 말씀하는 것을 눈을 감고 그림을 그려 보세요. 관찰자 시점, 그러니까 신성한 공간인 지도자가 있는 공간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 공간 동쪽에 삼위태백산이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동지해가 떠오르는 곳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동지해가 삼위태백의 제일 오른쪽 봉우리에서 떠올랐다면, 춘분과 추분에는 중앙 봉우리에서 떠오르고, 하지에는 왼쪽 봉우리에서 떠오른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러고 나서 동지와 춘·추분, 그리고 하지에 삼위태백의 세 봉우리에서 떠오르는 세 마리의 태양새를 한 마리로 형상화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세 개의 다리, 즉 세 봉우리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삼족오로 표현했다는 것이 제 생각이죠.

삼족의 다리가 세 개인 것에 대한 설명을 그 정도로 하구요. 삼족오는 고구려에서 탄생한 것은 맞습니까?
아닙니다. 삼족오는 우리가 어릴 때 배운 황하문명인들이 남긴 문화유산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현재까지 드러난 자료만 놓고 보면 삼족오는 황하 중류지역의 앙소문화(기원전 5400~기원전2460년) 지역에서 가장 먼저 등장해요. 다음으로는 산동지역의 대문구 문화에서 세 발 달린 맹금류를 표현한 도기에 보여요. 상[은]나라 시대에는 봉황의 모습을 갖춘 형태로 변형된 삼족오가 보이며, 서주시대에는 청동으로 만든 삼족조(三足鳥)가 보인다. 춘추시대에도 많지는 않지만 삼족조가 만들어진 것이 확인됩니다.그러다가 전국시대가 되면 삼족오가 와당(瓦當)에 자주 등장합니다. 진나라 이후의 유물에는 세 발 달린 까마귀가 상당히 여러 점 발견되며, 『산해경』에 나오는 서왕모가 신선사상과

ⓒ GBN 경북방송

앙소문화 채색토기의 삼족오

결합하면서는 서왕모의 심부름을 하는 새로서 삼족오가 등장하죠. 신선사상에서는 삼족오를 보통 삼청조(三靑鳥)라고 부르며,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와 함께 서왕모의 심부름꾼으로 나오죠. 한마디로 말하면 삼족오는 중국의 황하문명에서 등장해서 동한시대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어요.

그렇다면 고구려가 있었던 만주 지역은 어떤가요?

ⓒ GBN 경북방송

오회분 4호묘 삼족오

동북지역 신석기문화에는 삼족오가 보이지 않는다. 삼족오 혹은 삼족조에 대한 관념은 동북
지역이 아니라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진한에 이르는 시기에 중원지역에서 면면히 이어져 오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동북지방에서 이들보다 이르거나 혹은 비슷한 시기에 삼족오 혹은 삼족조가 없었다면 고구려의 삼족오는 문화 전파와 교류의 산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삼족오는 중원에서 발생해서 고구려지역으로 전파된 문화로 보아야 하겠네요?
네, 재미있는 것은 후한 이후에 중국에서는 삼족오가 거의 사라지고 고구려에서는 화려하게 부활한다는 거예요. 중국에서 삼족오는 앙소문화시기부터 전국시대까지 근근이 그 맥을 이어오다가, 전국시대에 체계화된 음양론이나 신선사상, 복희-여와신화와 연결되면서 부활 한다. 그러나 삼족오에 대한 관심이 중국에서는 후한 이후에는 서서히 사라진다. 현재까지 발견된 삼족오를 살펴보면 중국에서는 4세기 정가갑 5호묘와 원나라 태자묘에서 나온 것이 전부일 정도로 적다(물론 제가 확인하지 못한 것이 있을 수 있지만).

중국에서 사라진 삼족오가 고려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삼족오를 신성시 하는 문화는 고구려에서 화려하게 부활하여 하늘을 날다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날아가 강한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삼족오의 부활과 일본으로의 전파를 단순히 중국의 삼족오가 요서와 요동을 거쳐 고구려로 전파되고 다시 일본으로 전파된 흐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럼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네, 간략히 답하면 중국의 영향과 초원을 타고 이동한 태양신의 사자인 까마귀가 결합되어 고구려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먼저 중국의 영향을 보죠. 고구려 고분에서 발견되는 삼족오가 음양론과 결합되어 양의 상징인 태양속의 삼족오와 음의 상징인 달 속의 두꺼비로 그리거나, 양과 음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복희와 여왜를 그리면서 복희는 삼족오가 들어간 태양과, 여왜는 두꺼비가 들어간 달과 함께 그린 것에서 그러한 사정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북방 초원을 타고 서에서 동으로 이동한 태양신의 사자인 까마귀에 대한 관념이 고구려로 들어왔다. 까마귀는 페르시아에서 발생하여 로마에서 그 전성기를 맞았던 미트라교에서 ‘태양신’의 길 안내자 역할을 했다. 또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폴론을 수행한 아리스테나스도 ‘까마귀의 모습을 하고’하고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과 관련된 일화에도 까마귀가 등장한다. 알렉산더가 기원전 313년 사하라를 여행할 때, 모래 언덕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는데 돌연 나타난 두 마리의 까마귀로부터 길 안내를 받아 신전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북유럽 신화에서 전쟁의 신인 오딘에게 세상의 모든 정보를 수집해서 보고하는 임무를 맡은 후긴과 무닌도 까마귀이다.

그렇군요. 태양신의 사자로서의 까마귀가 고구려와 관련되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자료가 있나요?
저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 부여계인 것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봤어요. 부여계의 조상들은 천산 너머의 세계에서 동으로 이주한 동호(東胡)무리 중에 섞여 있었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 동호의 문화에 묻어들어 고구려 지역에 까마귀가 태양신의 아들 혹은 영웅의 길 안내자란 의식이 전파되었다.

태양의 사자로서의 까마귀 문화를 한 번 볼까요. 잘 알다시피 주몽은 유화부인이 낳은 알에서 탄생한다. 그는 태양[알]의 아들이었다. 그런 주몽은 북부여의 왕자 대소의 시기와 질투를 피해 남쪽으로 달아난다. 그때 세 사람의 중요한 인물이 동행하는데, 그 중에 오이(烏伊)라는 인물이 있다.

또한 고구려 초기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인 유리가 와서 태자가 되자 배다른 형제인 비류와 온조는 태자가 자신들을 해칠까 두려워 남쪽으로 피한다. 이때 동행한 인물 중에도 오간(烏干)이란 자가 있다. 태양(=왕)의 사자(심부름 꾼 오이, 오간)의 등식이 성립되잖아요. 오이와 오간은 왕을 안내하는 길 안내자 역할을 하던 무사(巫師)로 추정된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할까요.
초원의 길 안내자 까마귀 : 실제로 유라시아 초원에서 까마귀는 사냥꾼의 길을 안내 한다고 한다. 까마귀와 사냥꾼은 초원의 동업자인 셈이다. 초원에서 사냥꾼이 총을 들고 사냥을 나서면 까마귀는 하늘로 날아올라 사냥감이 있는 곳으로 날아간다고 한다. 그러면 사냥꾼은 그 방향으로가 사냥감을 잡고 그 보상으로 까마귀에게 내장을 꺼내 준다. 그들이 동업자임이 분명한 것은, 만약 사냥꾼이 총을 들고 나서지 않으면 까마귀는 사냥꾼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초원에서의 이러한 경험이 까마귀를 길 안내자로 인식하게 된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재미있네요. 그런데 삼족오가 일본으로 날아갔다니요?
네, 태양신의 사자로서의 까마귀는 일본으로 건너간다. 신무천왕이 구마노(熊野)에서 야마토국을 침공하러 갈 때, 태양신인 천조대신(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이 보낸 세발달린 까마귀인 팔지오(八咫烏)가 천왕의 진군로를 안내해서 무사히 야마토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공로로 일본에서 삼족오는 천황가를 수호하는 새가 된다.

삼족오가 천황가를 수호하는 새라니요. 조금 의외입니다.
네 그러나 사실입니다. 지금의 천황이 등극할 때 입은 곤룡포에도 삼족오가 그려져 있었어요. 사실 삼족오는 고구려에서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한반도에는 삼족오 문화가 거의 사라진다. 대신 일본으로 날아간 삼족오는 그 명맥을 계속 이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일본 신사에 가면 삼족오를 많이 볼 수 있어요. 또한 일본 축구협회의 로고도 삼족오죠. 2001년 동아일보 에서는 “고구려 대표 상징물 삼족오 일본축구협회 엠블럼 둔갑”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지만, 그것은 삼족오의 발생과 전파의 흐름을 오해한 기사였다. 역사에 무지했던 것이죠. 그만큼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도 했구요.

네 오늘 참 유익한 정보를 들었습니다. 짧게 결론을 내 볼까요?
네, 삼족오 문화는 중원에서 동북으로 전파된 문화와 서쪽에서 초원을 타고 동으로 이동한 문화가 고구려에서 만나 화려한 꽃을 피우고 다시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날아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따라서 삼족오를 고구려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죠. 좀 서운하긴 해도! (자세한 이야기는 저자의 책, 『바람타고 흐른 고대문화의 비밀』을 참고)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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