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배교수 음악산책(174)-이탈리아 오페라 부파 최후의 작곡가 ‘로시니’의 공적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2월 10일
|  | | | ⓒ GBN 경북방송 | | 오페라는 신화나 영웅을 대본으로 하는 ‘오페라 세리아(正歌劇)’와 희극적인 대본으로 하는 ‘오페라 부파’로 나누어지며 이탈리아 작곡가 페르골레지(Giovanni Battista Pergolesi,1710~1736)의「마님이 된 하녀」에서 막간극으로 상영된 것이 시초이다.
‘오페라 부파’는 로시니(Gioacchino Rossini,1792~1868)의「세빌리아의 이발사」와 모차르트의「피가로의 결혼」이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귀족사회를 풍자적으로 비판한 까닭으로 대중의 인기를 모았다.
1816년 로시니는 24세 때 프랑스의 극작가 보마르셰(Pierre Augustin Caron Beaumarchais,1732~1799)의 풍자극 3부작의 하나인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작곡했다. 이미 30년 전인 1782년, 이탈리아의 대작곡가 파이지엘로(Giovanni Paisiello,1740~1816)가 이 작품을 작곡해서 많은 인기를 모았는데 무명의 젊은 로시니가 로마 극장 지배인의 위촉을 받아 같은 내용의 오페라를 작곡했기 때문에 이것이 화근(禍根)이 되어 수난을 받았다.
로시니는 초연 때, 선배에 대한 예우를 생각해서 제목을 ‘무의미한 경계’로 고쳐서 상연을 했지만, 파이지엘로와 그의 제자들이 젊고 당돌한 로시니에게 스승의 이름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반감으로, 이탈리아 국내에서 휘파람을 잘 부는 사람을 총동원해서 극장에서 소란을 피었으며, 고양이를 무대에 올리는 등 법석을 떨어서 관중의 태반이 퇴장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출연자들은 오직 한마디 “브라보”만을 외친 것이다.
서양음악사에서 18세기를 오페라의 시대라고 한다. 많은 작곡가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오페라 작곡에 연중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000편이 넘는 오페라 작품이 작곡되었는데, 그 중에는 옥석이 분간 안 되는 작품도 대량으로 작곡되었다 그리하여 무대예술에 대한 가치보다는 흥행에 성공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시되었고, 극장측에서는 인기 있는 작곡가에게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의뢰했기 때문에 오페라는 대중오락으로 전락을 하고 말았다.
이 같은 사회적인 요구에 적응 못하는 작곡가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던 세태 속에서, 작곡가는 빠른 시간 에 오페라를 완성해야 했으며 로시니는「세빌리아의 이발사」를 13일 만에, 도니제티는
「사랑의 묘약」을 8일 만에 작곡을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그뿐만 아니라 오페라단이 계속해서 다른 도시로 순회공연을 했기 때문에 이미 상연된 오페라를 부분적으로 표절하거나 다른 오페라의 서곡을 전용하는 등 진 풍경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로시니는 76세에 타계를 했다. 그는 생애 절반에 해당하는 37세까지 작곡생활을 했으며, 모두 38곡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짧은 나이에 많은 오페라 작품을 작곡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일반대중의 오페라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로시니가 작곡한 38편의 오페라 가운데서 오늘날 상시로 무대에 상연되는 작품이 5, 6편에 불과하지만 그는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켰고 오페라 부파 최후의 작곡가로서 대중오락으로 전락(轉落)한 오페라를 예술적인 무대예술로 승화시킨 공적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안종배<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4. 1. 27. ahnjbe@hanmail.net |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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