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진의 '역사 산책'(7회)- 단군신화의 무대가 드러나다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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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는 무엇이죠? 네 오늘은 단군신화가 실제로 있었던 역사를 반영한 것이라면, 그 무대는 어디였을까 한 번 검토해 보기로 하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단군신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것은 한민족의 건국신화이기 때문이다. 초·중 고등학교를 다니며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고 배웠다. 1949년에 발표한 남인수의 노래 제목에 ‘달도 하나 해도 하나’라는 것이 있다. 그 가사를 보면 “달도 하나 해도 하나 사랑도 하나. 이 나라에 바친 마음 그도 하나이련만. 하물며 조국이야 둘일까 보냐. 모두야 우리들은 단군의 자손”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민족은 정말로 단일민족인가요? 아닙니다. 사실 알고 보면 한민족초기공동체가 형성되는 과정에는 다양한 종족집단들이 참여했어요. 가령 환웅세력, 곰 토템세력(熊女), 호랑이 토템세력(虎女), 부여족, 신라왕족, 남방계농경민, 북방계고아시아족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합집산하면서 한민족 공동체를 형성했어요.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의 무대가 드러났다고요? 네, 먼저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간략하게 살펴볼까요? 천상(외부)에 살던 환웅이 삼위태백산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를 열었다. 그러자 주변에 살던 곰과 호랑이가 찾아와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환웅을 찾아왔고, 환웅은 그들에게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를 주고 백일 간 동굴에서 기도하게 했다. 곰은 삼칠일(21일) 만에 사람이 되고, 호랑이는 참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했다.
정사논쟁이 있는 책이기는 하지만, 『한단고기』는 ‘사람이 되지 못한 호랑이는 사해 밖으로 쫓겨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민족의 초기 공동체인 단군조선에서 호랑이 부족은 소외되었다는 이야기다. 곰이 변한 여인인 웅녀와 환웅이 혼인하여 단군을 낳고 그가 한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때는 요임금 50년 무렵이다. 이때의 곰과 호랑이는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을 이른다.
그렇다면 웅녀는 곰을 토템으로 한 부족을 이르는 말이겠네요? 네 인류 문화사를 보면 곰과 뱀이 가장 오래된 신앙 대상이지요. 중국신화에서 가장 이른 신화적 인물로 등장하는 복희와 여왜는 뱀을 토템으로 하던 사람들이고, 황제는 곰을 토템으로 했어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도 커다란 구렁이로 현신(現身)했었죠. 인도의 창조신 브라흐마도 생명에너지의 원형적 상징인 뱀 위에 누워있어요. 부처님을 보호하는 일곱 마리 뱀도 뱀 신앙의 잔재죠.
곰 신앙은 어땠죠? 유럽의 알프스 산 2000m 고지에 동굴이 있는데, 그 동굴에서 곰 두개골과 대퇴골이 발견되었어요. 그런데 그 곰 유골은 돌을 상자모양으로 만든 곳에 수납되어 있었어요. 고고학자들은 그 곰 유골은 네안데르탈인의 곰 신앙이라고 주장하기도 해요(함께 발견된 석기와 식물이 자그마치 12~7만 년 전이라고 한다.) 또 다른 설은 현생인류인 크로마뇽인의 곰 신앙(3.5만~1만)일 것이라고 해요. 어쨌든 곰은 인류에게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신(神)으로 대접 받은 것은 분명하지요.
크로마뇽인이 만든 동굴에서도 곰 숭배 흔적이 발견되었어요. 점토로 만든 곰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점토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요. 그 곰상에 곰의 털가죽을 씌우고 활을 쏘는 의례를 했던 흔적이죠. 이 유적 또한 1만 수천 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어요. 구석기시대 동굴벽화로 잘 알려진 라스코 동굴 벽화에도 동일한 의례를 행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구석기 시대에 행하던 곰 의례가 20세기 초까지 전달되고 있었어요. 일본 아이누족이나 동시베리아의 니브히족들이 그러한 의례를 전승하고 있었다는 것이 인류학 연구 자료에 남아 있어요.
그러니까 구대륙에서 구석기시대에 발생한 곰 숭배 신앙은 신석기를 거쳐 20세기까지 전달되었던 것이죠. 시베리아의 대부분의 지역 신석기인들은 곰을 숭배했어요. 그들은 곰이 인간의 조상이자 가족으로 여겼죠.
왜 곰 신앙이 그토록 일찍 발생했을까요? 네, 우선 곰 사냥과 관련이 있어요. 구석기인들에게 곰은 이중적인 동물이었어요. 두려움의 대상인 동시에 엄청난 단백질을 공급하는 식품이었지요. 곰 사냥 후 죽은 곰의 복수에 대한 두려움에서 수렵의례가 발생했어요. 수렵의례란 곰을 죽이면서 하는 의례를 말하죠. 구석기와 신석기인들에게 있어서 사냥 할 때 가장 두려운 동물 중 하나인 곰에 대한 두려움에서 곰이 동물 지배자란 관념이 생겼어요. 수렵단계에 있던 당시 사람들은 동물을 잡아서 생존했어요. 그런데 열악한 사냥도구를 가지고 있던 당시사람들은 동물을 마음대로 잡을 수 없었어요. 그러자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신이 죽은 후에 동물신, 특히 곰 신이 되어 그 곰 신이 후손들에게 사냥감을 보내준다고 믿기 시작했어요. 그것이 곰 제의의 사상적 핵심이지요.
곰 의례를 할 때 곰이 원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어요. 곰 의례를 행할 때 곰을 의례적으로 죽인 후 곰 가죽을 벗기는데, 이 때 곰 가죽은 인간의 외투지요. 그래서 곰 가죽을 벗기는 과정에 제사장은 몰래 감추어 두었던 가락지나 여성 장신구를 의례 참가자에게 보여주며 이 곰이 원래는 여성 조상이었다는 것을 확인시켰어요.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웅녀는 바로 곰을 조상신으로 여기던 집단을 말하는 것이었네요? 네 맞아요. 단군신화의 웅녀는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의 여인이었던 셈이지요. 어쩌면 여 제사장을 웅녀라 불렀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웅녀를 포함한 단군신화를 설명할 수 있는 무대가 드러났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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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 유적지에서 출토된 곰 머리 세구멍 옥기
네, 요즘은 좀 알려지긴 했어도 아직 많은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어요. 1980년대 이전의 역사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새로운 정보지요.
단군신화의 무대는 지금 중국 요령성 서부와 내몽골 동부 지역이었어요. 이들 지역에서는 1980년대 이후 대대적인 고고(考古) 발굴로 대단한 신석기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어요. 최근 중국에서는 이들 문명이 황제와 그 후손의 문화라고까지 주장할 정도죠. 새로운 고고학적 유물과 유적이 등장하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죠.
기원전 3500~3000년경에 형성된 후기홍산문화기에 이미 이들 지역은 전국가단계까지 이르렀다고 해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 문화를 이끈 주도 세력이 곰부족이었다는 것이죠. 중국인들이 이들 문화를 황제의 문화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곳에서 곰 부족과 관련된 토템유물이 나왔기 때문이지요. 홍산문화 유적지에서는 곰 턱뼈, 흙으로 만든 곰 아래턱, 옥으로 만든 곰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었어요.
|  | | | ⓒ GBN 경북방송 | | 홍산문화 출토 인면형 옥 호랑이
특히 우하량 유적지에서는 여신묘가 발견되었는데, 그곳의 중앙 신전에서 곰 관련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어요. 여신묘의 주인공인 여신은 한민족의 습관과 동일한 책상다리 즉 좌식을 하고 있어요. 알다시피 중국인들은 지금도 입식문화에 익숙하잖아요. 그 여신과 함께 등장하는 곰 관련 유물들은 우리에게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웅녀를 생각하게 하죠. 웅녀 그러니까 곰 부족 할머니, 곰을 토템(조상신)으로 하는 웅녀집단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요. 따라서 단군신화를 건국신화로 하는 우리들에게 홍산문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져요.
그러네요. 단군신화를 풀 수 있는 단서가 드러난 셈이네요. 그런데 단군신화와 직접 연결하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잖아요?
네, 단군신화는 홍산문화가 끝나고 한 참 뒤에 일어난 하가점하층문화시기와 연결되죠. 기원전 24세기경, 그러니까 단기연호가 시작되는 기원전 2333년경에 이들 지역에서 단군왕검사회가 시작되었어요. 이 시기까지 이들 지역에 곰 토템인들이 활동했음은 고고학적으로 증명되고 있어요.
단군신화가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정치공동체와 관련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최근에는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한국학자들이 늘고 있고, 그것에 동조하는 중국학자들도 나타나요.
홍산문화지역에선 곰 토템 관련 유물 보다는 적지만 호랑이 관련 유물도 나타나요. 이로 보아 이들 지역에는 곰 부족이 우세했고 호랑이 부족이 열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분명한 것은 단군신화의 무대장치가 만들어졌었다는 것이지요. |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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