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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진의 역사산책(9회)-단군의 어머니 호랑이인가 곰인가?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3월 05일
ⓒ GBN 경북방송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보나요?
-네 오늘은 단군신화를 건국신화로 가지고 있던 조상들이 어째서 곰을 숭배하는 데 소홀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하겠습니다.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보면 외부세계에서 환웅이 도래했을 때 곰 부족과 호랑이부족은 모두 환웅세력과 연합하려고 했다. 그러나 호랑이부족은 환웅세력과의 연합에서 밀려나 주변세력으로 전락한다. 그런데도 한반도에서 곰 신앙은 사라지고 호랑이와 산신신앙은 지금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죠. 왜 웅녀의 아들인 단군을 국조로 하면서도 곰 신앙이 사라졌을까요?
-네, 오늘날 곰 신앙은 완전히 사라진 반면에 산신신앙은 그 위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곰은 사라지고 호랑이 산신은 그 위세를 떨치고 있어요. 왜 그런지 설명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기가 무척 힘들어요. 상식적인 질문과 어설픈 해석으로는 도저히 그 답을 찾을 수 없어요. 그 문제를 해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는 아래 제시한 학자들의 문제의식을 보면 알 수 있어요.

①『동북아의 곰문화와 곰신화』에서 경희대(이정재) 교수는 “국조신화에 곰과 산신인 단군이 등장되어 곰문화를 기반으로 출발하였는데, 그것이 오늘날에는 완전히 호랑이문화로 바뀐 결과가 되어 이 문제를 다루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옳은 말이다. 참으로 궁금한 일이 아닌가?

②국문학자인 서울대의 어느 교수(조현설)는 혹 단군의 어머니가 곰이 아니고 호랑이였을지 모른다고까지 한다. 그런 주장의 근거로 그는 조선 중기의 승려 설암의 기행문 ‘묘향산지’에 나오는 이야기를 든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와 신단수 아래 살았다. 환웅이 하루는 백호(白虎)와 교통하여 아들 단군을 낳았다. 그가 요임금과 같은 해에 나라를 세워 우리 동방의 군장이 되었다.”

조현설교수는 묘향산지에 전하는 신화가 더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백호가 단군의 진짜 어머니 인가?”라고 반문하고는 호랑이와 호랑이를 시조모로 모시던 집단을 역사의 패배자로 여기던 우리의 사시(斜視, 잘못된 시각)를 교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만 창조신 호랑이, 고조선의 국모 호랑이, 고려 왕가의 시조 호랑이, 그리고 산신 호랑이와 무수한 산신도에 보이는 호랑이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모두들 한반도에서 호랑이 신앙이 곰 신앙 보다 우위에 선 것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면서 현실적으로 살아있는 호랑이에 비중을 두려는 태도를 취한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말로 의아한 일이네요. 단군의 어머니는 웅녀로 곰 부족과 관련 있는데, 어째서 한반도에서는 곰 신앙보다는 호랑이 산신신앙이 강할까요?
-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해야 되요. 하나는 단군왕검 사회가 형성되었던 위치를 고려해야 되고, 둘은 호랑이 산신 강세 지역에 대한 검토를 해야 되요.
무슨 말이냐 하면 단군왕검사회는 지금 중국 요령성 서부와 내몽골 동부지역에 형성되었다고 시간이 지나면서 동으로 이동하여 한반도에까지 이르게 되었어요.
그와 같은 역사상황을 고려하고 이해해 보세요. 단군왕검사회가 형성될 당시 밀려났던 호랑이 부족은 동으로 밀려났던 거죠. 그리고 실제로 호랑이 산신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은 동시베리아와 백두산, 한반도로 이어지는 지역이예요. 대흥안령산맥 서쪽 몽골에는 호랑이가 살지 않아요. 단군왕검 사회에 참여하려고 했던 호랑이 토템부족은 동에서 서로 이주 확산되었다가 다시 동으로 밀렸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단군왕검사회는 당시의 주 종교(다음회에서 설명)와 곰 신앙을 가지고 호랑이 산신신앙이 강한 동으로 이동했던 셈이죠. 따라서 백두산과 그 이남으로 들어온 한민족의 조상들은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호랑이 산신신앙을 수용했다고 볼 수 있어요.

※백두산과 한반도 주변에서 호랑이를 신으로 여겼다는 이야기나 전설이 많이 남아 있나요?
-1930년까지 만주 퉁구스인들에게 전해지던 풍습에 따르면, 각각의 부족을 대표하는 대표 샤먼(무당)이 싸워서 승부를 냈다고 한다. 그때 샤먼들은 각기 곰과 호랑이로 변하여 싸웠다. 수로왕과 탈해가 새매나 참새로 변해 싸웠다는 이야기와 비슷하죠. 당시까지도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 간의 경쟁이 있었다는 얘기죠.
또 다른 이야기가 비슷한 시기 백두산 지역에 전해지고 있었어요. 백두산 아래 웅호구(熊虎溝;곰과 호랑이 골짜기), 즉 곰과 호랑이가 싸우는 골짜기가 있었데요. 그런데 이곳에는 싸움을 할 때마다 지혜로운 호랑이가 미련한 곰을 이겼다고 해요. 백두산 주변에는 호랑이를 신성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이야기죠. 어쩌면 백두산 산신이 호랑이 산신이었는지도 모르죠.
이런 풍습이나 이야기가 전해진 것으로 보아 20세기 중반까지도 이들 지역에서는 호랑이 산신과 곰 산신이 투쟁하고 있었는데, 호랑이 산신이 우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헌기록도 있지 않나요?
-네 있어요. 전국시대에 편찬된『산해경』 대황동경에서는 “군자국이 있는데 의관을 하고 검을 차고 다니며 범이나 호랑이를 부린다”고 했어요. 또한 중국 명나라 때 편찬된 백과사전류인 『삼재도회』에서는 ‘한 노인이 두 마리의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 있고 그 밑에는 군자국의 상’이라고 적혀있어요.

이들 호랑이를 거느리고 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후에 동해 바닷가로 이주하여 살았어요. 『삼국지』 위지동이전 예(濊)전을 보면 “항상 10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밤낮으로 음주가무를 즐기니 이름하여 무천이라 하며, 또한 호랑이에게 제를 올리고 신으로 여긴다”고 나와요. 예국은 지금 강릉으로 중심으로 존재했던 나라죠. 이들 예인들은 남으로 확산되어 포항지역까지 내려왔어요. 포항시 신광면에서 나온 ‘예백장(穢伯長)’이라고 새겨진 청동도장(晋나라 시대)은 예인들이 그곳에 살았다는 것을 말하죠.

※결론을 간단하게 내려 볼까요?
-네 쉽게 말하면 단군왕검 사회는 호랑이 신앙 보다는 곰 신앙이 강한 요서 지역에 형성되었었고, 그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동진하여 한반도까지 들어오는데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의 백두대간 지역은 호랑이 산신신앙이 강한 지역이었지요. 따라서 단군왕검사회의 후손들이 한반도로 들어왔을 때 한반도는 이미 호랑이 산신신앙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죠. 또한 단군왕검 사회의 주 종교는 곰 신앙이 아니라 칠성신앙이었기 때문인 측면도 있어요.
정리하면 한반도에서 곰 신앙이 사라진 이유는 한반도는 곰 보다는 호랑이 산신신앙이 강한 지역이었다고 단군왕검사회의 주 종교는 칠성신앙이었기 때문이죠. 칠성신앙이 단군왕검사회의 주 종교였음은 다음시간에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3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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