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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진의 역사산책(11회)- 알지 신화를 그린 유리구술의 비밀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3월 20일
ⓒ GBN 경북방송

오늘의 주제는 어떤 것입니까?
네,오늘은 삼국시대 신라왕족이 착용했던 사람얼굴을 상감한 유리구슬의 비밀을 풀어볼까 한다. 고대인들도 사치품을 즐겼다. 특히 삼국시대 신라 귀족들은 로마풍의 사치품을 착용하고 자신의 지위를 과시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치품은 자신을 포장하는 물건으로 애용되었다. 신라인들은 황금으로 만든 장신구를 애용했고, 로만그라스를 사용했으며, 유리로 된 장신구를 즐겼다.

ⓒ GBN 경북방송

5.유리환옥 구슬의 다른 부분

오늘은 신라인들의 사치품에 대해서 알아보나요?
네, 신라인들이 즐겼던 사치품은 다양한데요. 오늘은 아주 작은 구슬에 사람과 새 나무 등을 상감한 유리구슬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말씀하시나요?
네, 경주시 황남동의 미추왕릉 지구 에서 출토된 상감 유리구슬(보물 634호)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이 구슬은 직경이 1.8cm인데, 그 안에 이국적 미소를 머금은 네 사람의 얼굴, 나무 두 그루, 새 여섯 마리를 새겨 놓았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다. 대단한 사치품이다. 아마 오늘날로 치면 큰 다이아몬드 목걸이 정도의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치품에 사용한 것인가요?
네 작은 유리구슬로 만든 목걸이 중앙에 매단 펜던트 같은 것이었어요.

※그와 같이 정교한 유리구슬은 어디에서 제작된 것인가요?
그와 같은 유형의 유리구슬은 로마세계에서 1세기경부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박물관의 안내판에도 ‘유리구슬에 사람 얼굴을 상감하는 방법은 지중해연안이나 서아시아에서 유행했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수준의 제품은 당대 지중해 지역의 유리공예품 가운데서도 매우 우수한 작품이다. 중국에서는 아직 그와 같은 유리구슬이 발견된 적이 없고 한반도에서도 처음 출토되었다.

경주에서 지중해 지역까지는 엄청난 거리인데 어떻게 그 옛날에(5~6세기) 경주까지 들어왔을까요?
맞다. 상감옥에 대한 미스터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 제작지가 어디이며 누가 그 먼 곳에서 그 물건을 경주로 가져왔는가다.
상감옥이 경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초원로를 통해서 중앙아시아와 천산을 넘어 동으로 들어와 중국 북부 지역 혹은 내몽골을 거쳐 한반도까지 들어오는 길, 해양 실크로드를 통해서 들어오는 길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자들은 북방 초원로를 통해서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다른 경로를 이야기 하는 학자도 있나요?
네, 최근 영국 런던대 고고학연구소 제임스 랭턴 박사는 남방 해양 실크로드를 타고 신라로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 유리구슬이 로마산이 아니고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만들 것이라고 한다. 유리공예 기술이 지중해에서 해양 실크로드를 타고 인도를 거쳐 인도네시아까지 전파되었고 그곳에서 제작된 유리구슬이 경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그는 미국 샌디에고의 한 박물관에서 제작기법 뿐 아니라 모자이크 문양까지 같은 유리구슬을 발견했다. 그것은 경주박물관에 있는 것과 동일한 전 세계에서 유일한 인면유리구슬이다. 그런데 박물관에서는 그것이 인도네시아 자바산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인도네시아 자바섬으로 달려갔고, 그곳 작은 마을에서 신라 인면유리구슬의 제작기법을 확인했다. 현재로선 가장 그럴듯한 가설이다.

아직도 북방초원로를 통해서 들어왔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인가요?
네, 랭턴 박사는 제작기법 이외에도 인면유리구슬에 상감된 문양을 가지고 인도네시아산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고대 힌두교 사원에 조각된 브라흐마의 신상에서 단서를 찾았다. 그곳에선 브라흐마의 4개의 얼굴과 브라흐마의 이동수단인 함사(hamsa, 백조 혹은 거위)라 불리는 새가 조각돼 있다. 인면유리구슬에 새겨진 4개 얼굴과 하얀 물새는 힌두교의 신브라흐마와 관계있을 것이란다. 인도네시아의 고도(古都) 족자카르타의 한 불교사찰에서도 인면유리구슬 속 문양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법당 앞 바닥에는 부처의 일대기가 그림으로 표현돼 있다. 해탈을 의미하는 새인 함사(hamsa)와 미륵불을 상징하는 용화수(龍花樹)는 인면유리구슬에 그려진 나무, 새와 일치한다.

그의 주장은 일리가 있나요?
글쎄요. 우선 유리거울 속의 네 명의 인물과 브라흐마 네 신상이 동일한 것은 맞지만 유리구슬 속에는 6마리의 새가 새겨져 있는 것은 다르다. 또한 미륵불을 나타내는 용화수는 한 그루여야 하는 데 구슬 속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다.

그렇다면 유리구슬 속에 그려진 인물상이나 새, 나무는 다른 모티프를 그렸다고 볼 수 있나요?
네 유리구슬에 그려진 인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어요. 문명사가인 정수일도 ‘인물은 피부가 희고 눈이 동그라며 눈썹이 맞닿아 있다. 또 콧날이 오뚝하고 얼굴이 길며 목걸이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백조가 사는 북방계 백인종(아리아인)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형질적 특징과 생활환경을 고려할 때, 이들은 로마 식민지였던 흑해 부근에 살았던 민족으로 짐작된다’고 했다.
일본의 고미술사학자 요시미쓰 쓰네오는 구슬 속 얼굴이 로마황제라고 했다. 그 외 대부분의 학자들은 중앙아시아 유목민일 것이라고 보아 왔었다.

아직 정답이 없는 셈이네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네 저는 좀 색다른 관점에서 구슬에 상감된 내용을 봅니다. 바로 당시 신라를 지배하고 있던 김씨 왕족의 조상인 김알지 신화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것이지요.
구슬을 자세히 보면 인물은 황금 깃 장식을 머리에 쓰고 있어요. 구슬에 표현된 핵심 제재는 흰 닭 ․ 나무 ․ 황금 깃 장식을 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 GBN 경북방송

유리구슬의 부분
.

알지 신화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있나요?
네 우선 인물상을 자세히 보면 양쪽 귀 위에 황금으로 된 깃털장식을 쓰고 있어요. 힌두교의 브라흐마와는 다른 모습이죠. 이러한 모습을 한 신라인의 모습이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옛 소그드인들의 궁전인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 그려져 있어요.


ⓒ GBN 경북방송
아프라시압 궁전의 신라사절

그래요. 참 흥미 있는 이야기네요.
예 당시 왕족을 포함한 귀족들은 자신들이 닭의 후예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김알지 탄생신화-알지 탄생신화에 보이는 나무는 천상의 신성한 존재가 내려오는 생명의 나무이고, 흰 닭은 신성한 생명을 낳는 태양새이다. 부여의 동명왕 탄생신화에도 태양새인 닭이 등장한다)신라인들이 닭을 귀하게 여기고 닭 날개 모양의 깃털 장식을 머리에 썼다는 이야기는 인도까지 전해져 있었어요.

인도까지요.
네, 『삼국유사』‘천축으로 간 여러 법사들’편에는 “천축국 사람이 신라를 ‘구구타 예설라’라 일렀으니 ‘구구타’는 닭이라는 말이요, ‘예설라’는 귀하다는 말이다. 그 나라에 전해오는 말로는, ‘신라는 닭의 신[雞神]을 섬겨 머리에 날개깃을 꽂아 꾸미개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당나라 의정이 지은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 기록된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신라인들이 황금 깃털 장식을 쓴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곳과 관련된 지역 사람들에 의해서 그 유리구슬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겠네요?
네 북방초원로를 통해서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중해 연안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유리구슬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께서는 그 유리구슬이 누가 만들어서 경주까지 가져왔다고 보나요?
네 저는 아프라시압 궁전의 주인들이었던, 당시 국제상인인 소그드인들이 흑해 연안의 유리공방에 주문 제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동서 중계무역을 하던 상인집단이었다. 그들이 가장 강성할 때인 5~6세기경에 미추왕릉지구에서 상감옥이 출토되었다. 아프라시압궁전 벽화의 황금 날개깃을 쓴 신라인모습이 유리구슬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추왕릉 지구는 당시 왕들과 귀족들의 무덤일 텐데 그들과 무역을 하자면 신라김씨 왕족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어야 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당시 왕족에 관한 정보 중에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왕들의 조상인 김알지의 탄생신화였을 것이다. 또한 신라왕족의 조상들이 천산 주변의 사카족일 가능성도 소그드인들과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이었을 것이다.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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