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진의 역사산책(13회)- 황금보검(보물635호)의 삼태극과 곰 머리 세 구멍 옥기의 비밀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4월 02일
|  | | | ⓒ GBN 경북방송 | | ※오늘의 주제는 어떤 것이죠? 오늘은 고총고분 시대의 신라인들이 얼마나 국제적 취향을 갖고 있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당시 신라의 귀족들은 중국 보다는 초원로를 통해서 들어온 로마 풍의 귀중품을 선호했다. 경주박물관에 가면 황금으로 만든 보검에 삼태극 무늬를 3개 연속해서 표현한 황금보검을 볼 수 있다. 오늘은 그 보검과 삼태극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삼태극은 태극기에 나오는 음약태극과 다른 세 개의 태극을 표현한 것을 말하는 거지요? 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우리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요. 절에 가면 법고라고 해서 큰북이 있는데 대부분의 북에 삼태극이 그려져 있어요. 또한 곧 여름이 다가오는데 과거에는 여름이 오기 전에 부채 하나쯤은 준비했다. 그 전통부채에도 노랑, 빨강, 파랑색으로 그린 삼태극이 자주 등장하지요. 사당의 문에도, 민속공예품에도 삼태극이 주로 사용된다. 88올림픽 생각나시죠. 서울 올림픽 엠블럼도 삼태극으로 도안했죠. 삼태극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혹 삼태극이 한국의 전통문양이 아니기라도 한 건가요? 네, 사실 우리 전통문양이라고 알고 있는 삼태극이 사실은 동양 특히 한·중·일 삼국 모두가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오던 문양이죠.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오래 전부터 삼태극을 사용했습니다. 서양사람도 삼태극을 즐겨 썼다고 하면 여러분들 중에 의아해 하시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 그건 오늘 우리가 알아보기로 한 황금보검을 보면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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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보검! 말만 들어도 동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 같네요? 네, 실제로 황금보검과 그 보검이 발굴된 무덤에는 미스테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1973년 경주 대릉원 동쪽의 계림로를 새로 내는 공사 중에 많은 신라 무덤들이 노출되었다. 그 중에서도 계림로 14호분으로 명명된 6세기 초반 무렵 신라시대 적석목곽분에서 황금보검과 비단벌레 날개를 장식한 화살통 부속구를 비롯한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런데 황금보검이 출토된 계림로 14호묘에는 젊은 청년 두 명이 함께 부장되어 있었습니다. 경주박물관의 발굴보고서에 따르면 피장자는 전쟁이나 전염병으로 인해 사망했을 것이라고 한다. 키는 150~160Cm 정도이고 나이는 20~30대의 성년이다. 황금보검은 왼쪽에 묻힌 사람이 차고 있었으며 그는 은제 허리띠도 차고 있었다.
※두 청년이 함께 묻혔다고요. 순장묘도 부부묘도 아닌 청년 두 사람이 왜 한 무덤에 묻혔을까요? 네 그것이 참으로 미스테리한 것이지요. 상식적으로 잘 이해할 수 없는 합장 무덤이지요. 그런데 그 해답은 어쩌면 신라만의 독특한 문화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해요. 역사책으로 아직 공인받지는 못했지만 『화랑세기』라는 책을 보면, 화랑들이 동성애를 했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보입니다.
화랑들이 동성애를 했을 가능성은 ‘사담함과 무관랑’ 이야기로도 짐작할 수 있어요. 사다함은 진흥왕 때의 화랑이었다. 따르는 무리가 천여 명이나 되었다. 이사부와 함께 15~16세에 가야 정벌전에 참전해서 공을 세웠다. 일찍이 무관랑과 생사를 같이 하는 벗이 되기를 약속했는데, 무관랑이 병사하자 7일간 통곡하다 17세 전후의 어린나이로 죽었다고 한다. 젊은 화랑들의 우정과 사랑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무덤에 묻힌 두 남자가 화랑이었을까요? 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신분으로 보아 화랑이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에서는 신분에 따라 입을 수 있는 옷이 달랐다. 겉옷으로 ‘능=비단’을 입을 수 있는 계층은 진골 이상의 계층뿐이었다. 그런데 무덤에서 능 조각이 발견되었다. 그 남자들은 진골귀족의 자제였던 것입니다. 나이로 보아 그들은 신라의 영토 확장 전쟁에 참전했다가 함께 전사한 전우였을 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그들은 서로 사랑했던 절친한 친구사이였고, 그들의 관계를 고려하여 함께 부장했을 수 있다.
※그럼 오늘 이야기의 본론인 황금보검에 표현된 삼태극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오늘 다루려는 황금보검은 로마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현재 이와 유사한 유물은 카자흐스탄의 보로보예에서 발굴된 것과 신장성 키질석굴 벽화에 있는 무사가 차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벽화에도 비슷한 보검을 찬 인물이 보인다. 이들 지역은 실크로드의 중간 기착지라고 할 수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이다. 장식보검은 중국에도 없는 것으로 신라에서만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그 황금보검에 삼태극이 3개 연속으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 전통문양으로 알고 있는 삼태극이 4~6세기경 로마문화권에 있던 지역에서도 유행하던 문양이었던 것입니다.
※삼태극이 새겨진 장식보검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로마문화 왕국, 신라』의 저자인 일본인 요시미즈 쓰네오는 ‘그리스·로마 문화를 받아들인 다뉴브강 남부 트라키아 지방의 켈트족이 이 보검을 만든 것으로 추정’했다고도 하고, 훈족이 동로마제국(현 터키)의 장인에게 부탁하여 만들었다고도 한다(흑해 연안의 불가리아 바르나 박물관의 알렉산더 민체프 박사). 경주박물관에서는 ‘보검은 중앙아시아의 집단이 동유럽의 금세공기술자에게 주문 제작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저는 당시 중앙아시아에 살던 국제무역상인 소그드인들이 동로마 장인들에게 주문 생산했을 것으로 본다. 그들은 당시 북위나 돌궐과도 교역하고 있었거든요.
※그럼 켈트족과는 상관없나요? 저는 상관있다고 봐요. 신라 황금보검과 유사한 보검들에는 삼태극이 없어요. 유독 황금보검에만 있죠. 그렇다면 황금보검은 삼태극 문양을 선호하는 집단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주문제작을 했다고 해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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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세기 경의 켈트인들이 만든 삼태극 문양
※켈트족이 삼태극 문양을 좋아했나요? 켈트족이요? 어떤 사람들인가요? 켈트인은 로마시대에 갈리아인이라고 불렸던 부족으로 고대에 독일지역에서 이주한 민족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이주했다가 후에 영국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그들의 특징은 금발에 기사문화를 영위했다는 것이다. 켈트족은 주로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많이 산다. 이들 중 동으로 이주하여 흑해 서쪽의 트라키아 지방에 정착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발 앞서 그리스·로마 문화를 받아들인 로마화된 켈트인이었다.
세 개의 삼태극무늬 안에 꽃봉오리와 세 잎 무늬, 때로는 사람의 머리나 동물머리 형상을 박아 넣는 것은 켈트인들이 즐겨 사용한 디자인이예요. 황금보검이 만들어지던 시기인 4~5세기 무렵 켈트인의 유물에 이런 무늬가 많아요. 켈트인들이 태극무늬를 사용한 고고학적 흔적은 기원전 2세기경의 유물에도 이미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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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1세기 경의 켈트 삼태극
※그렇다면 삼태극은 어떤 상징을 담은 문양일까요? 켈트족은 삼파문(삼태극) 문양을 오래전부터 사용해왔고, 서양에서 다양한 형태의 파문(巴紋) 형상을 보통 ‘켈트족의 소용돌이 문양(Celtic spiral)’이라고 부른다. 켈트족의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문양인 삼파문(트라이스켈)은 태양숭배와 관련된 태양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삼파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달리는 태양을 상징한다. 켈트족들의 기물에 장식문양으로 많이 사용되던 삼파문은 오늘날에도 장신구의 디자인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우실하교수도 삼파문(삼태극)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태양문’에서 기원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삼태극(삼파문)의 기원은 켈트족과 관련 있나요? 그렇지 않아요. 삼파문은 동서양에서 비슷한 시기에 나타나요. 서양에서는 고대 크레타문명에 이미 나타나고, 동양에서는 상나라 시대의 청동기나 옥기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렇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황금보검에 보이는 삼태극을 연속해서 3개로 표현하는 것은 단군신화의 웅녀와 관련된 문화인 홍산문화에서 제일 먼저 나타나요. 매우 흥미로운 일이죠. 일명 ‘곰 머리 세 구멍 옥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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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홍산문화-세 구멍 옥기
※홍산문화(5500년 전)에서 나왔다면 가장 오래 되었겠네요? 어떤 의미로 만들었을까요?
네, 저는 그것을 웅녀로 대표되던 삼신할머니의 자궁을 상징했다고 봐요. 구멍이 3개인 것은 영원한 순환을 나타내기 위해서죠. 태양이 아침태양에서 정오의 태양으로 다시 저녁의 태양으로 변하며 영원히 반복되듯이 말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세 구멍은 곧 할머니 ․ 어머니 ․ 처녀로 이어지는 여신의 자궁에서 끊임없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상징하고자 했을 것으로 추정하죠. 이건 순전히 제 견해예요. 하지만 옳다고 봐요.
중국학자도 ‘중국 고대에 유행한 옥벽(玉璧)은 여성 생식기의 상징물’이라고 했다. 옥벽은 옥에 둥근 원을 뚫은 것을 말하는데, 옥에 구멍 세 개를 뚫은 것을 삼련옥벽이라고 한다. 삼련옥벽의 시작은 홍산문화인 셈이다. 따라서 삼련옥벽은 여성 생식기가 세 개 연달아 있음을 상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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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옥벽
‘곰 머리 세구멍 옥기’에서 시작된 삼신의 상징은 우리 무속에도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무속에서 삼신제석을 모실 때 항아리 혹은 사발 3개에 쌀을 담고 고깔을 씌운다. 이때 항아리는 여성의 자궁을 의미한다. 삼태극이 연속된 장식보검의 의미가 새롭게 느껴지지 않나요. (자세한 것은 제 책, 『바람타고 흐른 고대문화의 비밀』참고) |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4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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