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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진의 역사산책(14회)-고깔모자는 신라왕족의 비밀을 푸는 열쇠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4월 16일
ⓒ GBN 경북방송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 볼까요?
네, 오늘은 신라 김씨왕족이 어떤 기원을 갖는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2009년 방영된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에는 흥미로운 설정 장면이 나온다. 예언 때문에, 쌍둥이 중 둘째로 태어난 덕만(후에 선덕여왕)은 죽음을 피해 신라를 떠나 중국으로 피신했다가 타클라마칸 사막까지 가게 된다. 그곳까지 따라온 자객이 있었지만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덕만은 그곳에서 서역문물을 접하면서 자란다. 성년이 된 덕만은 자신의 출생비밀을 모른 채 귀국하여 김유신의 낭도가 된다.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에서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종국에는 여왕이 된다. 드라마에서 덕만이 타클라마칸 사막과 인연이 있음을 내비친 것은 우연이 아니고 작가가 의도한 설정이다. 작가는 최근 일고 있는 신라 왕족 흉노설을 의식했던 것 같다.

최근 신라 김씨왕족이 흉노족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데 사실입니까?
네 어느 정도 사실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에서는 아직도 김씨왕족의 조상이 흉노라고 하면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해요. 흉노라고 하면 야만인처럼 인식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나라 초기만 해도 흉노는 한나라를 능가하는 힘을 가지고 있던 대제국이었어요. 한나라는 왕실 여인을 흉노왕에게 시집보내야 되는 상황이었죠. 그리고 흉노는 단일한 종족이 아니라 다양한 종족의 사람들이 연합한 국가였어요. 그런 흉노와 신라김씨왕족이 관련 있을 개연성이 높아요. 최근 밝혀지고 있는 자료들을 보면 김씨왕족 흉노설을 부정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인정해야 된다는 말인데, 근거는 있나요?
네, 있습니다. 하나는 통일대업을 완수한 문무대왕의 비문을 보면, 자신들의 조상이 흉노의 우현왕에 소속되었던 김일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고깔모자와 관련해서 설명할 수 있는데요, 『신․구당서』를 보면 “신라는 변한의 후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문에 나오는 김일제는 실존인물인가요?
네, 실존인물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김일제는 한나라 무제 때 인물이지요. 그는 원래 하서회랑 그러니까 중국 서부에 있는 감숙성 기련산에서 돈황까지 펼쳐진 회랑과 같은 지역에 살던 휴도왕의 아들입니다. 그는 한나라 무제가 실크로드를 개척하기 위해 하서회랑을 공격했을 때 잡혀옵니다. 잡혀온 김일제는 말먹이 꾼으로 시작해서 말년에는 제후의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지요. 한나라의 정복 군주였던 무제 시절 권력 서열 2, 3위까지 올랐던 인물이지죠. 대단한 인물이었어요.

『신․구당서』에서는 왜 신라를 변한의 후예라고 했나요? 우리는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진한이 신라가 되었다고 배웠는데 말이죠.

네, 이 주장에 대해서 상식적인 대한민국 사람은 쉽게 수긍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변한은 가야라고 배웠으니까요. 신라와 변한이 동족이라는 말이 되잖아요. 그러나 그 말은 사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병도 선생과 같은 대학자도 ‘신라가 진한의 후예’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면서 『신․구당서』의 주장을 인정했어요. 의외죠?

그런데 여기서 한가 집고 넘어가야 돼요. 『신․구당서』에서 신라는 변한의 후예라고 했을 때의 변한은 바로 신라 김씨왕족의 출신과 관련해서 옳은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박혁거세 신라는 분명히 진한관 관련이 있어요.

참 흥미롭기도 하고, 헷갈리기도 하네요. 어째서 김씨왕족을 변한이라고 했나요?
네, 그 부분이 오늘 이야기의 중심 주제다. 변한은 한마디로 ‘고깔모자를 쓰던 한인’을 줄인 말입니다. 고깔弁자에 나라이름韓이 합쳐진 말입니다. 그들이 고깔모자를 쓰던 한인 즉 변한이었다는 것은 보여주는 또 다른 문헌자료가 있어요.

신라의 사신이 수나라에 가서 자신들이 쓰고 있는 고깔모자[皮弁]에 대해서 언급한 구절이 역사책에 있어요. 당시 수나라에 파견된 신라의 사신과 수나라 관리가 이야기를 하던 중 수나라 관리가 신라사신이 쓰고 있는 관의 유래를 묻는데, 비아냥거리듯 질문을 하죠. 마치 촌스럽다는 투로 말이죠. 이에 신라의 사신은 “피변(皮弁)의 유상(遺像)인데 어찌 대국의 군자가 피변을 모르는가?”라고 대답해요. 동아시아 지식인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데 왜 묻느냐는 거죠. 이 대목은 『북사』이웅전에 나온다. 이웅이라는 관리는 이 일로 파직을 당하죠. 사신을 놀렸다는 제목으로 말이죠.

피변은 어떻게 생긴 것을 말하나요?
피변은 사슴가죽으로 만든 고깔모자를 말해요. 그런데 사슴으로 피변을 만들어 쓰던 풍습은 사카족과 관련 있어요. 사카족의 토템이 사슴이었어요. 자신들의 부족을 상징하는 동물을 토템이라고 하죠. 단군신화에 나오는 웅녀가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신라 금관에도 사슴뿔을 장식한 것이 있어요. 사슴록자를 써서 녹각 수지형 관식이라고 하죠.

그렇군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신라의 유물을 볼 때 ‘고깔모자’를 눈여겨보아야 갰네요?

여러분들도 오늘부터 신라인들이 남긴 고깔모자에 관심을 가져 보십시오. 우선 박물관에 가시면 금관을 볼 수 있잖아요. 금관 안에 쓰는 관모라는 것이 있어요. 그것을 자세히 보세요. 고깔처럼 생겼습니다.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천마총 특별전을 하고 있어요. 그 특별전에 전시된 유물 중에도 아주 귀한 관모가 있어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관모 두 점이 전시되고 있어요. 한 번 가서 보시죠.

그리고 토우 아시죠. 김씨왕족들의 대형고분에서 나온 토우들을 가만히 보십시오. 모두 고깔모자를 쓰고 있어요. 또한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금령총에서 나온 ‘기마인물상’도 고깔모자를 쓰고 있어요.

경주 주변에 있는 암각화에서도 고깔모자를 볼 수 있어요. 경주 서쪽에 있는 단석산 신선사에 가면 김유신 장군이 수도했다는 석굴이 있어요. 그 석굴에 새겨진 미륵부처님께 공양하는 신라귀족이 새겨져 있는데 고깔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또한 울주군 천전리 암각화에도 고깔모자를 쓴 신라인들의 모습이 여럿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네요. 고깔모자에 관심을 가지고 보니 신라인들이 남긴 유물에 고깔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그럼 그 고깔모자는 누가 쓰던 모자인가요?
네 기본적으로 처음에는 신라 김씨왕족들이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말씀하신 흉노족과 고깔모자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네 넓게 보면 흉노족과 관계있지만, 좁게 보면 천산주변에 살던 사카족과 관련 있습니다.

ⓒ GBN 경북방송

고깔모자를 쓴 신라토우들

사카족요? 석가모니 부처님과 동일한 석가족 말입니까?
네, 그 사카족 맞아요. 사카족은 인도 이란계인데요. 우리가 알고 있는 스키타이족과도 사촌관계죠. 스키타이족이 흑해 주변에 살던 사람들이라면 사카족은 천산서쪽에 근거지를 두고 중국 감숙성 돈황과 기련산 지역으로 넘어와 살기도 했죠. 그러한 사실은 문헌과 고고학으로 증명이 되요. 문무왕비문에서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한 김일제는 바로 감숙성 돈황과 기련산 지역에 살던 사카족이었습니다. 당시 휴도왕은 흉노의 우현왕에 속했었습니다. 흉노는 다민족 연합국가였어요. 지금 중국이 그런 것처럼.

ⓒ GBN 경북방송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의 명에 의해서 조각된 비시툰 비문, 이란 중부에 케르만샤 지방에 있다.

그 석가족과 고깔모자가 관계있습니까?
네 천산주변에는 기원전 10세기경부터 사카족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신라금관의 관모와 관장식은 천산너머 사카족의 무덤인 이시크 고분에서 발견된 황금인간이 쓰던 고깔모자의 변형된 형태로 볼 수 있다. 황금인간은 기원전 4~6세기경의 것이라 양 지역의 문화를 연결시키는데 주저해 왔어요. 그런데 최근 대규모 학술조사단이 현지를 방문하여 답사한 결과 4~6세기경의 무덤에서도 신라의 것과 유사한 유물이 많이 발견된다고 해요.

고깔모자를 쓴 한인, 즉 변한과 사카족을 연결시킬 또 다른 유물들이 있나요?
천산 동쪽에서 발견되는 암각화 중에 고깔모자를 쓴 사카인들의 유적이 많이 있어요. 뿐만 아니라 천산동쪽에 있는 무덤에서도 사카족의 고깔모자가 여러 개 발견되었어요. 뿐만 아니라 이들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거울에 사슴장식이 있는 것이 있는데, 이것들도 사카족 무덤으로 밝혀졌어요.

문무왕비문 말고도 김씨왕족과 사카족을 연결시킬 단서가 있나요?
네, 있어요. 흉노의 우현왕이었던 휴도왕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단서 중 하나가『삼국유사』황룡사구층탑조에 나온다. 자장스님 아시죠. 당나라에 유학가서 청량산에서 문수대성에게 지극히 기도하자, 문수대성이 자장스님에게 범어로 된 게를 주죠. 또한 자장스님은 문수보살에게서 신탁을 받는다. “너희 국왕은 인도의 찰리종족의 왕인데 이미 불기(佛記:약속)를 받았으므로 남다를 인연이 있으며, 동이 공공의 족속과는 같지 않다”이때 찰리종족이 바로 사카족입니다. 당시 신라왕족이 사카족이라는 말이죠.

그렇다면 그 멀리 살던 사카족이 경주까지 이주했다는 말인가요?
그들이 동으로 이주했다 해도 상당히 오랜 시간, 중간 기착지를 거쳐서 경주까지 들어왔을 거예요. 전국시대 중국 책인 『산해경』을 보면, ‘조선과 천독이 이웃하고 산다’고 나와 있어요. 고조선 이웃에 천독, 즉 사카족이 살고 있었던 것이죠. 이 문헌에 대해서 과거에는 잘못되었다고 했지만, 많은 것이 밝혀진 오늘날을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어요. 기원전 7~3세기 스키타이 문화가 동으로 전파될 때 사카족 일부가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어요.

사카족이 동으로 이동한 흔적을 알 수 있는 다른 기록도 있나요?
네 『일주서』라는 책을 보면, 요동 지역에 ‘발인과 녹인(鹿人)이 있는데 사슴처럼 잘 달린다’고 나와요. 이때 녹인은 사슴을 토템으로 하는 사카족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론을 말하면 신라 김씨왕족이 천산주변에 살던 사카족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씀이네요?

네, 우선 문무왕비문에서 그 가능성을 말하고 있잖아요. 자신들의 조상을 거짓으로 기록했을까요. 경주에 있는 능의 비문에는 고의적으로 글자를 파낸 흔적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흉노설을 불쾌히 여긴 후손과 유림들의 행위로 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앞에서 살펴본 대로 김씨왕족들이 권력을 잡은 후 조성된 경주 시내의 고총고분과 그 유물들이 천산주변의 사카족의 그것과 유사할 뿐 아니라 고깔모자도 두 집단을 나타내는 특색 있는 복식이예요. 문헌으로도 받쳐주기도 하구요.

저는 신라 김씨왕족들이 사카족과 혈맥적으로 닿아 있다고 봅니다. 김씨왕족에 관한 정보는 제가 쓴 책에 자세히 나와 있어요. (참고, 필자의 책 『실크로드를 달려온 신라왕족』(일빛))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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