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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진의 역사산책(19회)

양산 통도사 경내에는 용왕의 거대한 남근이 있다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6월 19일
ⓒ GBN 경북방송

오늘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들려주실 건가요?
네, 오늘은 통도사로 가 볼까 합니다. 통도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불교신자들은 삼보사찰 중 하나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이 떠오를 것이고, 50~60대 어른들은 수학여행이 떠오를 것이다. 잘 아시다시피 신라의 대국통 자장스님이 중국에 유학을 다녀오면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와 통도사 금강계단에 모셨잖아요. 때문에 금강계단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습니다. 저도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녔는데 불국사→통도사→해운대로 수학여행을 다녀왔어요. 당시 교복을 입고 수학여행을 다녀온 기억이 지금도 선하네요. 통도사 하면 예나 지금이나 일주문을 지나 개울을 따라 난 소나무 숲길이 일품이지요.


통도사에 불교 유적말고 다른 특별한 유적이 있습니까?
네, 통도사 경내에는 불교 이전에도 그곳이 민속신앙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적들이 있어요. 오늘은 그러한 유적을 소개할까 합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바위신앙이 남아 있어요. 가령 통도사에서 조금 떨어진 울주군 삼남면 방기리에 가면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의 주민이 만들어 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알터(또는 성혈)가 있어요. 뿐만 아니라 통도사 일주문 앞 100여 미터 전방에도 남근과 알터가 있어요. 당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곳이지요.

이들 바위신앙은 통도사에 불교가 들어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어요. 불교와 바위신앙의 인연을 알면 당시 조상들의 정신세계도 알 수 있어요.


ⓒ GBN 경북방송
통도사 입구 첫째 봉우리 정상 주변, 남근바위

신라불교의 핵심도량인 통도사도 이전에는 토속신앙의 중심지였다는 이야기인가요?
네 사실 불교사찰이 있는 대부분의 공간은 이전에도 그곳 주민들의 신앙중심지였던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통도사 주변에도 불교 이전 신앙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어요.


통도사 경내에도 불교이전 신앙유적이 있다면서요?
네, 통도사가 세워지기 이전에 이곳이 용신신앙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통도사에 전해지는 창건설화로 알 수 있어요. 9룡전설 혹은 독룡전설이 바로 그것이지요.

“전승에 의하면 이곳에는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 자장스님은 이들을 교화하여 수용하려 했으나 그 중 다섯 마리는 통도사 서쪽에 있는 오룡골로 도망을 갔고, 세 마리는 동쪽에 있는 삼동골로 달아났으며, 나머지 한 마리만 불법을 수용하고 그 터를 수호하겠다고 맹세했다.”
“승려로 화한 문수보살은 자장에게 . 그대의 나라 남쪽 취서산에는 독룡이 거쳐하는 연못이 있는데, 독룡들이 독을 품어서 비바람을 일으켜 곡식을 상하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니 그대가 그 용이 사는 연못에 금강계단을 쌓고 이 불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삼재를 면하게 되어 만대에 이르도록 멸하지 않고 불법이 이어질 것이다.”

이 이야기는 전설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 이 전설을 통해서 우리는 통도사 터가 불교이전에는 용왕신앙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당시 통도사 주변은 농사를 위주로 하는 사회였기에 용신은 당시 주민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신이었어요. 전설의 내용을 보면 대다수 용신신앙 세력들은 새 종교인 불교가 자신들의 성역을 접수하려는데 반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자신들을 강제로 몰아내는 데 반대했던 거죠. 아홉 마리 중 한 마리만 불법을 수호해야겠다고 한 것은 전통신앙인들이 처음에는 불교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불교를 수호하겠다는 용은 지금도 금강계단 옆 산신각 아래 구룡지라는 작은 연못에 살고 있다. 구룡지는 통도사 금강계단 지역이 원래는 용신이 살던 연못이었다는 것을 전해주고 있다.


용신신앙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나요?
네, 전설에는 ‘용들이 독을 품어서 비바람을 일으켜 곡식을 상하게 한다’고 했지만, 사실 용신신앙에서 용은 비바람을 일으켜 곡식이 성장하게 하여 인간에게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인 동시에 인간에게 자손을 주는 신이었다. 선한 용신이 악한 독룡으로 변해서 통도사창건기에 전해졌던 것이다. 승자의 논리지요. 왕조가 교체될 때 이전 왕조의 군주가 폭군이거나 음탕했다고 기술하는 논리와 비슷하지요.

불교 이전에 주변 주민들에게 자손을 내려주던 용왕님의 거대한 남근이 통도사 경내에 있습니다. 용왕님의 남근은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솟은 봉우리 주변이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그 위용은 대단하다. 불교 이전 이곳 취서산에 정좌하셨던 용왕님의 신체(神體)임이 분명하다. 제가 전국을 다니면서 고대신앙 유적지를 답사했는데 통도사 용왕님의 남근만큼 거대하고 사실적인 것은 보지 못했어요. 현재 일반에 공개된 남근으로는 경상남도 남해군 가천면 홍현리에 있는 남근이 가장 위용 있다고 하나 통도사 남근에 비할 바가 못 되요.

ⓒ GBN 경북방송

자장암 뒤의 대석 신단, 탑 앞쪽에 커다란 바위 石井이 보인다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 취서산(영취산) 인근에 살던 사람들은 이곳 용왕님의 남근에 풍요와 다산을 빌었을 것이다. 특히 자식이 없는 이들이 자식이 생기게 해 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대한 남근 이외에 통도사에 남아 있는 또 다른 고대신앙의 흔적이 있나요?
네, 통도사 자장암에 가면 ‘금와보살’이 살고 계시다는 바위가 있어요. 가 보셨죠? 저는 이 금와보살 전설도 불교 이전의 신앙유적을 불교적으로 각색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할 근거가 있나요?
네, 그것은 우리 고대사와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금와보살전설은 한마디로 ‘대석신앙과 불교’의 만남이죠.

우리 역사에는 금와, 즉 금개구리와 관련된 왕이 있어요. 누군지 아시지요. 바로 동부여의 금와 왕입니다. 그는 대석(大石)신단의 돌 어머니[여신]에게서 태어났어요. 그의 탄생신화를 한 번 볼까요?

“부루(왕)가 늙어 아들이 없으므로 어느 날 산천에 제사 지내어 대를 이을 아들을 구했다. 그가 탔던 말이 곤연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 마주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왕은 이것을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서 그 돌을 굴리니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애가 있었다. 왕이 기뻐했다. ‘이것은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주심이로다.’ 이에 거두어 기르며 이름을 금와(金蛙)라고 했다. 그가 자라매 태자로 삼고 부루가 세상을 떠나자 금와는 위를 이어 왕이 되었다”


자장암 금와보살 전설이 동부여계통의 대석신앙과 관련 있단 말이군요?
네, 금와가 탄생한 큰 돌(大石)은 단순한 바위가 아니고 당시 부여계가 신앙하던 바위 신앙의 성소로 볼 수 있어요. 금와왕이 탄생한 대석은 바로 고대사회의 여신전이었어요. 고대사회에서 커다란 반석(盤石) 위에 풀로 신전을 지었었는데, 대석은 바로 그 신전이 있는 큰 바위를 가리키죠.

고대의 셈족은 커다란 바위위에 돌을 세워놓고 여신전으로 삼았다. 마고여신의 성기를 바위에 새겨놓았다는 지난 번 이야기를 참고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양산 천성산 바위 신단에서 가까운 마을 이름이 대석(大石)리인 것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 비결서에 보면, ‘大石, 小石之生’이란 말이 있어요. 성인이나 영웅을 가리키는 말이죠. 지금의 이란 지역에서 기원전 12세기경에 탄생한 미트라교의 주신 미트라도 바위에서 태어났다. 부여인의 조상은 바로 이들 바위신앙을 신봉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석이 여신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보면, 부루는 늙도록 아이가 없자 대석 신전에 가서 기도를 하고 아들 금와를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자장암 금와전설을 부여계의 금와전설과 연결할 수 있나요?
네, 물론 그렇게 단정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금와보살이 머무는 바위가 바로 대석신앙의 신앙처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자장암에 가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금와가 산다는 구멍과 한 덩어리인 거대한 바위 위에는 지름이 30cm 정도, 깊이 20cm 정도 되는 인공의 구멍이 있다. (사진)의 탑 아래에 보이는 검은 구멍이 그것이다. 이러한 인공 혹은 자연 구멍은 석정(石井) 혹은 용알터라고 불리며, 전국 명산(名山)에 어김없이 있어요. 이 또한 용신신앙의 또 다른 흔적이다. 삼신산에서 생명수가 솟아나는 우물이죠. 따라서 자장암이 들어선 이곳 또한 대석신전인 여신전인 동시에 용신 신앙터였다고 할 수 있어요.

금와보살은 여신전인 대석의 구멍에 살고 있는데, 이는 여신의 자궁 속에 살고 있는 것과 같다. 개구리는 유라시아 문명사에서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아마도 금와보살의 원래의 역할은 기자신앙의 대상신이었을 것이다. 그 터를 불교가 접수해서 금와를 금와보살로 각색했던 것이다.

통도사의 원래 주인이었던 용왕과 금와는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에게 쫓겨난 운명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자비심이 있는 부처님께서 한 마리 용에게는 불법을 수호하도록 배려했고, 금와에게는 보살의 명호를 붙여 불교를 널리 알리는데 힘쓰도록 했던 것이다. 승자의 배려가 패자에게 도움이 되었을까요?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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