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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진의 역사산책(21회)

남근을 봉납 받는 여신들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7월 13일
ⓒ GBN 경북방송

오늘은 들려주실 주제는 어떤 것입니까?
네, 오늘도 성과 관련된 주제를 이야기 할 텐데요. 동해안 지역에 남근은 봉납 받아 위로받는 여신이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남근을 봉납 받는 여신은 동해안 지역에 펴져 있어요.

그런 민속이 다 있습니까?
네 아마 오늘 주제를 듣자마자, 아하 그거! 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요즈음 그곳은 관광지로 각광받기도 하니까요.

ⓒ GBN 경북방송

해신당의 애랑이 영정과 제물로 바쳐진 남근

한 번 찾아가볼까요?
네,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신남리에 가면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는 신당이 하나 있다. 바로 해신당이다.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끼고 있다. 이제 원통하고 외로운 처녀신이 사는 신당이 아니다. 주변엔 건물도 많아졌고, 주차장도 아래위로 갖추었다. 게다가 해신당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 전국에서 몰려오고 있다.

관광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나요?
현장에는 매년 애랑에게 바치는 남근을 소재로 문화상품화 한 테마공원이 조성되었다. 제법 많은 입장료(대형사찰급)를 받는데도 손님이 줄을 잇는다. 단순한 호기심 너머에는 성에 대한 시대적 의식이 반영되고 있다. 남근조각경연대회를 통해 제작된 65점의 작품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그야말로 남근의 천국이다. 사실 이러한 남근이 전시된 공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조금 민망하다. 좋은 시절 만나 남녀노소가 광장에서 어울려 생명력을 느끼며 즐거워한다. 요즘은 성을 드러내놓고 이야기 하는 시대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독특한 풍습을 가진 해신당이 생기게 되었나요?
애잔한 전설 때문이다. 옛날 신남마을에는 애랑이라는 처녀가 살았다. 그 애랑이에게는 미래를 약속한 덕배라는 총각이 있었다. 어느 봄날 애랑이가 마을에서 떨어진 바위섬으로 미역을 따러 간다고 하자 덕배는 띠배로 그녀를 바위섬에 데려다주고 자신은 밭에 나가 일을 했다. 밭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불안한 덕배가 해변으로 달려 나왔지만 이미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덕배는 위험에 처한 애랑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애랑은 바위에서 살려달라고 덕배를 부르다가 높은 파도에 휩쓸려 그만 죽고 말았다.

그 사건이 있는 뒤로는 이곳 바다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았을 뿐더러 배가 뒤집혀 죽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노인의 꿈에 물에 빠져죽은 애랑이 나타났다. 애랑은 자신은 시집도 못 가고 처녀로 죽었기 때문에 너무 억울하니 그 원한을 풀 수 있도록 남근을 깎아서 바쳐달라고 했다. 그러면 고기도 잘 잡히고 사고도 없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신당을 짓고 나무로 남근을 만들어 처녀의 원혼을 달랬다. 그랬더니 고기가 전과 같이 잡혔답니다. 지금도 음력 정월 대보름과 10월의 오일(午日)에 제사를 지낸다. 정월 대보름 제사는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이고, 10월 오일의 제사는 12지 동물 중에 말의 남근이 제일 크기 때문에 이날을 잡았다고 한다. 큰 물건에 대한 환상은 귀신도 가지고 있었는가 봅니다. 제사를 지낼 때는 당일 낮에 만들어놓은 소나무 남근 3개 또는 5개씩을 짚으로 엮어 올린다.

남근을 바치게 된 것은 처녀귀신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방편이었던 셈이네요?
그런 셈이죠. 시집못간 처녀귀신의 원혼을 달래는 의미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처녀신의 생산력과 결부하여 풍어를 기원하는 측면도 있어요. 쉽게 말하면 풍요의 여신을 의식한 의례행위로 볼 수도 있어요.

동해안에 그와 같은 풍습이 전해오는 곳이 또 있다면서요?
네. 강원도 강동면 안인진 2리에 가면 해랑당이 있어요. 전설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에 강릉 부사 가 기생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놀러왔다. 그때 해랑이라는 기생이 나무에 그네를 매고 뛰다가 그만 벼랑 아래 바다로 떨어져 죽었다. 부사는 해랑이의 원혼을 달래주기위해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 주게 했다고 한다. 그녀 또한 처녀의 몸으로 횡사를 했으니 원통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제사를 지낼 때 해랑이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소나무로 만든 남근을 제물로 바쳤다.

영혼결혼식을 올려줄걸 그랬죠?

네 실제로 이곳에서 그런 일이 있었어요. 20여 년 전부터는 해랑이에게 남근을 바치지 않게 되었는데, 이유인즉슨 60여 년 전 이천오라는 마을 이장 부인에게 해랑이의 신이 씌어서는 김대부라는 신과 결혼을 시켜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에서 두 신을 결혼시켜 주었다. 그래도 한동안 옛 방식대로 소나무로 만든 남근을 짚으로 엮어 매달아 주다가, 최근에는 남근을 바치지 않는다. 무속에서는 미혼의 젊은 남녀가 죽으면 영혼결혼식을 올려준다. 해랑이가 얼마나 외로웠으면 450여년이 지난 후에 남자 귀신에게 시집을 갔을까? 역시 외로움은 귀신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렇다면 목제 남근을 바치는 이유가 처녀귀신의 원혼을 달래는 측면보다 풍어를 기원하는 측면이 더 크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네, 맞아요. 남근을 바치는 동기가 처녀귀신의 원을 달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것은 풍어를 기원하는 것이죠. 이러한 이야기의 이면에는 과거 큰 여신, 즉 대모신에게 남근을 바치던 습속이 숨겨져 있다. 그러한 습속이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망개마을 서낭제에도 남아 있다.

ⓒ GBN 경북방송
문암리 망개마을 별신제 중 암서낭제

자세히 한 번 들어볼까요?
망개 마을에는 수서낭과 암서낭이 있는데, 매년 정월 초 3일에 제를 올리다. 현재는 유교식으로 변형된 제를 올리기 때문에 수서낭 중심으로 제의가 진행된다. 수서낭제가 끝나면 암서낭으로 가 암서낭에게 전날 깎아놓은 남근을 바친다. 반드시 오리나무를 이용해 3개를 깎는데, 이 남근을 여서낭신의 신체인 바위구멍에 꽂아 구멍이 한 번에 맞으면 풍어가 온다고 믿는다. 한 번에 맞는다는 것은 궁합이 잘 맞는 다는 의미이며, 성적 결합이 잘 되면 성적 에너지가 배가되고 좋은 결과가 생길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대모신인 여신에게 남근을 바치는 풍습은 동해안에만 전한다면서요?
네, 민속학자들은 동해안 서낭당의 주신은 여신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대모신인 여신에게 남근을 바치는 의례는 현재의 터키지방에서 발생한 종교에서 가장 극명한 사례를 볼 수 있다. ‘프리기아’에는 키벨레라는 대모신이 주신이었다.

자세히 살펴볼까요?
네, 그곳에서는 매년 봄 ‘아티스 축제’를 연다. 아티스 의식의 셋째 날은 ‘피의 날’로 알려져 있다. 종교적 흥분이 최고조에 달하면 대모신의 사제들은 자신의 몸에서 생식기를 떼어 여신에게 바친다. 나중에 절단된 생식기를 소중하게 싸서 흙이나 대모신 키벨레에 바쳐진 성전의 지하실에 매장한다. 이러한 의식은 아티스를 소생시키고 또 봄의 햇빛을 받아서 잎과 꽃이 피어나는 자연의 부활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생각했다. 아티스는 우리의 단군에 해당한다. 생명을 재생시키는 부활의 신이었던 것이다. 아티스제에서는 남근의 모형물이 아니라 실제로 사제가 자신의 성기를 잘라 키벨레 여신에게 봉납했다. 종교적 신념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정말로 자신의 남근을 절단해서 여신에게 봉납했을까요?
아마 이러한 의식이 실제로 행해졌다는 것에 대해서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사람이란 무언가를 진심으로 믿으면 그것이 객관적 사실인지 판단하려 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행동 하는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불안전하고 불안한 존재이기 보다는 맹목적이나마 무언가를 믿어 안정을 찾고 싶은 존재, 그가 인간인가! 간혹 어떤 수행자는 자신이 욕망에 이끌리는 것이 싫어 자신의 성기를 절단하기도 한다.

아티스제는 프리기아에서 발생했지만, 로마로 전파되었으며 그곳에서도 성행했다. 로마 제국시대에도 대모신 키벨레에게 제사지내는 남성 사제는 여전히 자신의 남근을 잘라 대모신의 신전에 바쳐야만 했다.

조금은 끔찍하네요. 결론을 내려볼까요.
네, 앞에서 살펴본 대로 대모신인 여신에게 남근을 바치는 전통은 상당히 오래되었다. 그러한 풍습은 세계 도처에서 관찰된다. 그런 풍습이 우리나라 동해안 지역에도 상당히 넓게 퍼져 있었다.

이러한 종교의식은 음양사상과도 부합한다. 자연을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나누어 그것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신을 상정하고 그 신들의 결합에 의해 자연 속의 생명이 태어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애랑이 사당에 남근을 바쳐 풍요를 비는 것은 단순히 애랑이 귀신의 원혼을 달래는 것은 넘어 풍요를 기원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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