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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 시인의 석학에게 듣는 문화 이야기](3)

문경현 박사편 - 나혜석과 최린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입력 : 2014년 08월 02일
팔공산 자락 경북 칠곡군 송림사에서

[나혜석과 최린]



어젯밤에 누가 해를 먹어버렸나? 팔월 한 낮이 캄캄하고 무덥더니 금세 소나기 쏟아집니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아담한 절 마당이 물바다입니다.
시 낭송 도중 벼락이 쳐서 새카맣게 타 버릴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두어 시간 행사 내내 내리던 비가 뚝 그치고 거짓말처럼 하늘이 말짱합니다.
팔공산 자락 경북 칠곡군 송림사에서 성덕스님 공덕비를 세우는 날입니다. 역시 사학자 문경현 박사님이 비문을 지으시고 이 상번 시인이 추진위원이 되어 행사를 하는 날입니다.

송림사는 신라시대 5층 전탑塼塔과 사리기舍利器로 저명하며 17세기 조성된 대표적인 수작 불상들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특히 1657년 경 나무로 조각된 목 삼존불상이 조선조 조각사에 큰 의의를 차지하고 있어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곳이라고 문 경현 박사님이 친절히 설명해 주십니다.

“전탑이란 벽돌로 쌓은 탑으로 현존하는 다섯 전탑 중 하나이며 그 속에서 금제 전각형 사리기와 유리사리병 등 많은 보물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종암 시인 김은령 시인 곽홍란 시조시인[ 사회자] 박재희 시인들과 간단한 저녁 식사 후 문박사님께 잠시 쉴 여가도 드리지 않고 바로 질문 공세로 들어갔습니다.

‘나혜석이 근대 최초의 여성서양화가라고만 알았는데 시와 소설을 썼다니 정말 뜻밖입니다. 박사님“

“그 증거를 보여드리지요. 처용아내를 위해 어제 쌍지팡이 짚은 몸으로 급히 경북대 도서관에 가서 찾은 자료입니다. 보세요.”

“ 송구합니다. 제가 버릇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으면 차로 모셔다 드렸어야 하는데”



2.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면서 시인, 소설가 나혜석

“ 廢墟폐허 제 2호 37쪽에 羅晶月 나정월이란 호로 발표된 시 내물[냇물]이 吳相淳오상순의 종교와 예술 [평론] 卞榮魯변영로의 메털링크와 예잇스[예이츠]의 신비사상[평론] 岸曙안서의 베르렌詩抄 [譯詩] 金億김억의 프로베르론 廉尙燮염상섭의 月評등 그리운 그 당시 시인들의 시와 함께 게제 되어 있지요.“

냇물

나혜석

졸졸 흐르는 저 냇물/흐린 날은 푸르죽죽/
맑은 날은 반짝반짝/캄캄한 밤 흑색가치/
달밤엔 백색가치/비오면 방울방울/
눈 오면 녹여 주고/ 바람 불면 무늬지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밤부터 새벽까지 /
춥든지 더웁든지/ 실튼지 좃흔지/
언제든지 쉬임없이/ 외롭게 흐르는 냇물/
냇물! 냇물! /저러케 흘러서/
湖되고 江되고 海되면/ 흐리던 물 맑아지고/
맑던 물 퍼래지고/ 퍼렇던 물 짜지고[華虹門樓上화홍문루상에서]

“정말이군요. 제가 무지해서 죄송합니다. 전 그냥 비운의 화가인 줄만 알았습니다.”

“화홍문루상華虹門樓上에서란 수원성의 문 이름이지요.”




3. 독립 운동가이면서 진정한 자유 연애론자?


“ 그녀는 서울에서 최초의 유화 개인전을 개최하고 작품을 매매 하는 전업화가로서의 면모를 보였지요. 비록 나혜석의 유화작품이 30~40점 밖에 되지 않아 연구하기에 어려움은 있지만, 보통 풍경화의 인상주의적 표현에서 그녀의 특징을 찾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섣달 대목>, <무희>, <파리풍경> 등이 있다. 한편, <매일신보>에 실은 그녀의 만평은 평소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여성의 과중한 가사노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 ”
“그야말로 여성 운동가이기도 하군요. 대단한 분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더 관심을 보인 것은 나혜석의 자유로운 연애와 파격적인 글쓰기와 마지막 행려병자가 된 사연이겠지요?”

“예 유부남 최승구와의 일본 유학 시절 연애를 했지만 그와 곧 사별하게 된 혜석은 외교관 김우영과 결혼하지요. 그녀는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예술 활동을 보장해주고 시집살이를 하지 않겠다’는 결혼 약속을 받아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 후 그녀의 인생에서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결혼 생활을 보내며, 남편과 함께 과감하게 유럽 여행을 떠난 나혜석. 그녀는 유럽에서 새로운 예술 세계에 대한 눈을 뜨는데, 남편보다 더 예술을 잘 이야기할 수 있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고국에 돌아온 나혜석은 이혼을 ‘당하게’ 됩니다. ”



4. 남자의 말 한마디는 중천금인가?

“프랑스에 도착하여 야수파 화풍을 공부하였어요. 파리에서 최린에게 길 안내하다가 사랑보다 어쩔 수 없이 불륜이 되었다는 설도 있어요. 문제는 그것을 최린이 고국 술자리에서 자랑삼아 얘기한 것이 빌미가 되어 파리 한인 사회에 화제가 되어 1930년 이혼당하는 빌미가 되었지요.”

“ 최린은 천도교에서 운영하던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장을 지내면서 신민회에 가입해 활동하였고, 1918년부터 손병희와 오세창, 권동진 등 천도교 인사들과 함께 독립 운동의 방안을 논의하다가 1919년 3·1 운동을 구상했고 불교계의 한용운, 기독교계의 이승훈을 통해 두 종교 대표들을 참가시키고 독립선언서 기초자로 최남선을 추천하는 등 기획 과정을 주도했으며, 독립선언서 낭독 모임 이후 곧바로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친일파로 민족반역자로 돌아선 사람이지요.”

이상번 시인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열을 올립니다.
“ 그녀가 행려병자로 죽음을 맞이하기 전 이광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이광수도 최린도 야비한 사람 아닌가요?”

“이광수는 그 당시 일본 유학 간 신여성들과 대부분 관계를 맺었다는데 . 김일엽 스님도 이광수를 사랑했나요?”

“김일엽은 일본 남자와 결혼했다가 이혼 후 끝까지 정신적 사랑을 한 사람이 이광수가 아니라 백성우[소르본느대 출신] 그 당시 동국대 총장이었지요.”



5.노동자 위로 태양이 떠오른다

“나혜석(羅蕙錫, 1896년 ~ 1948년 12월 10일)은 한국의 화가로 아호는 정월(晶月). 일제 강점기의 아버지 나기정은 군수였지요. 그 당시 군수라면 종 4품의 아주 높은 벼슬이었어요.‘1913년 경성부의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일본유학을 하고 있던 오빠의 권유로 일본으로 유학, 도쿄여자미술학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어요. 1918년 귀국하여 교사로 근무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고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매년 수상을 거듭했고, 1931년에는 일본의 제국미술원전람회에도 입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기도 하였는데. 나혜석은 3·1 운동에 가담하고 노동자 위로 태양이 떠오른다는 설정으로 진보적인 내용을 담은 판화 〈조조(早朝)〉를 제작하는 등 사회 참여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나혜석은 일본 유학 시절 사회 운동을 한 오빠 나경석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 1921년 조선미술사에서는 최초의 여성 유화개인전람회를 열었으며, 그해 9월 일본 외무성 안동현(현재 단둥)부영사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 만주로 이사하였지요. 당시 나혜석은 여성들을 위해서 야학을 열었고, 1923년 황옥 경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관련자들을 도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6. 육체의 신비를 모르는 것은 연애가 아니다


“나혜석은 이혼을 당한 이후에도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와 제12회 제국 미술원 전람회에서 특선과 입선을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어요. 하지만, 미술학원을 차려서 학생들을 지도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 김우영과의 사이에서 낳은 3남 1녀와도 남편의 방해로 만나지 못하면서 차츰 폐인이 되어 불행한 생활을 하였어요. 서울 인왕산의 청운양로원에서 행방불명된 1948년 12월 10일 서울의 시립자제원에서 사망하여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된 것이 뒤늦게 알려졌고 그가 태어난 집도 현재는 집터만 남아 있으며, 남아 있는 작품들도 십 여 편에 불과합니다.”

신여성, 여성 최초로 서양화를 공부한 유학생, 독립운동가 정월晶月 나혜석 선생님은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일 뿐만 아니라 최초의 여성 소설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인전을 연 여성화가, 선각자, 시대를 앞서간 여성, 독립운동가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정월 나혜석 선생님은 “여자도 학교를 다녀야 할 필요가 있나”“여자가 무슨 유학이냐”“여자는 아들이나 잘 낳고 밥만 잘 하면 된다.”라는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하던 시대에 태어났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맞서 한 인간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던 신여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충청도 수덕여관에서 잠시 기거하며 스님이 되려고 했다는 얘기도 있다는데요.”

“ 예 만공스님이 거절했다는 얘기도 있어요, 또 연하의 고암 이응노 화백이 무명시절 같이 기거하면서 그림을 배웠다는 얘기도 있지요. 실제로 수덕여관에 이응노 화백의 그림이 새겨진 바위가 있지요.‘

“일설엔 자유 연애론자이고 실험결혼을 주장하면서 ‘육체의 신비를 모르는 것은 연애가 아니다‘라고 동생에게 말한 그녀이니 두 남녀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하기도 했겠군요.”

“18세의 어린 나이에 “여자도 사람”이라는 내용을 담은 최초의 여성해방평론인 <이상적 부인(이상적 여성)>을 발표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여자도 사람이다.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인류의 여성이다.”라고 단편소설 <경희> 속 주인공을 통해 주장했던 23세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신여성이었습니다. 단편소설 <경희(1918)>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소설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나혜석 선생님이 화가로서 세상에 자신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19년 24세의 나이에 <매일신보>에 9컷의 만평을 발표하면서부터입니다. 결혼 이후 1년 9개월 동안의 세계일주, 조선미술전람회 출품 등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여성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하면서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서양화가로서의 사명감을 불태웠습니다.“



7.우리나라 최초의 위자료 청구 소송

그러나 이혼고백서 발표, 최린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 등의 사건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사건이었던 만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며 사람들의 관심과 지탄을 한 몸에 받았고, 그럼으로써 여성으로서의 나혜석 선생님의 삶은 불행으로 치닫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편견과 세상으로부터 잊혀져가는 순간 속에서도 평생을 화가로서 살아가고자 외롭게 또 끊임없이 노력했던 화가 나혜석 선생님의 삶은 많은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박사님, 칠순이 지나셨지만 아직도 미남이시면서 그 남성적인 목소리로 나혜석의 [모래]라는 시 한편 더 읽어 주시겠습니까?‘

野原야원 가온대 깔려있어 갑업는/ 모래가되고보면 줍난사람도업시/
바람불면 몬지되고 비오면 진흙되고/ 人馬인마에게 밟히면서도/
실타고도 못하고 이 세상에 잇셔/ 이따금 저 川邊천변에/
浦公英포공영 野菊花 야국화 메꽃 꽃다지꽃/ 피엿다가 슬어지면 흔적도 업시/
뉘라셔 차져오랴/ 뉘라서 밟아주랴/ 모래가 되면 갑도 업시/[沙, 나정월]



8. 진정한 연꽃 한 송이 피우다.

나혜석 기념 사업회 운영이사인 경원대 미술학과 윤범모 교수는 “‘최초’와 ‘여성’이라는 것에 너무 집착하기보다 이제는 한국 유화를 정착시킨 최초의 전업 유화가로서 나혜석을 평가해야 한다” 며 지금 여러 나혜석을 재조명하는 연구 서적출판과 많은 사업이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신여성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이라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인데도
남들보다 빨리 눈을 떴다는 또는 시대를 잘못 만난 이유로 온갖 진흙 밭에서 굴러야했지요.“
일본 징용 시절 히로시마로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중 차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가까운 바다로 뛰어들어 원폭피해를 피할 수 있었던 필자의 시아버님이 맏며느리에게 남보다 앞서 가지 말라는 당부를 노래하듯이 하신 말씀이 새삼 이해가 됩니다. 나혜석도 결국 남보다 너무 앞서간 탓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것도 자신이 배우고 깨달은 것을 여러 사람에게 깨우쳐주려고 한 것은 바로 불가에서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위한 용기이고 희생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 진흙탕에 핀 연꽃송이로 보입니다. 처음 노천명 시인 때문에 신여성시인을 찾다가 정말 관이 향기로운 여성 선각자 한 분을 찾았다는 뿌듯함에 눈의 피로도 싹 가시는 듯해 필자의 [연꽃]이란 시 한편을 중얼거리며 시인의 갈 길을 곰곰 다시 생각해 봅니다.



바람에 쉴 새 없이 몸 흔들리면서도/ 시린 발 견디며 진흙을 밟고 서서
곧 사라질/ 목숨,/ 이슬방울을/잠시라도 햇살에 한 번 더 빛나도록/
소중히 떠받들고 있다/[정 숙의 연꽃]



*보살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보리의 지혜를 구하고 닦는 일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하는 일




-글쓴이, 정 숙 시인-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입력 : 2014년 08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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