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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진의 역사산책(23회)

누가 새 시대에 필요한 생명의 밥을 짓는가?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8월 07일
ⓒ GBN 경북방송

오늘은 말복이자 입추다. 삼복더위도 다 지나가고 이제 결실의 계절이 가을이 저 먼곳에서 찾아오고 있다. 가을은 만물이 수렴하는 계절이다. 곡식이 익어가는 가을의 문턱에선 오늘은 어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나요?

네, 오늘은 솥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 해 볼까 한다. 솥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화식, 그러니까 불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음식을 익혀먹게 되면서부터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필수품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오늘날은 외식문화가 발달해 타인이 지어준 밥을 먹기도 한다.

솥이 인간에게 꼭 필요한 도구이기는 하지만 그 솥에 관한 이야기로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까요?
네, 제자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일반 가정에서 쓰는 솥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를 상징하는 솥(三足鼎)과 종말론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솥과 종말론이 어떻게 연결되죠?
네, 삼족정, 그러니까 세 발 달린 솥은 동서양에서 메시아의 상징물로 제작되고 활용되었다. 제작년(2012)에도 종말론이 퍼졌었다. 그 종말론은 마야 달력의 대주기설에 따른 것이었다. 마야 달력으로 대주기의 한 매듭이 2012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사실 과거 역사를 되짚어 보면 종말론은 어느 시대나 있었다. 말세에 대한 집단의식이 발현하는 것은 그 구성원들이 느끼는 잠재의식 때문이다. 딱 부러지게 이것이다 설명할 순 없지만 기존에 유지되던 질서가 무너지려고 한다는 것을 그 구성원들이 비슷하게 느끼는 감정이 어는 정도 이상 커지면 종말론이 등장한다.

물론 이성적으로 관찰했을 때도 역사에는 커다란 변동기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변동의 중심에서 살 때는 그 변화의 기류를 급격하게 못 느끼는 경우가 허다하다. 필자가 생각해 보아도 금세기 중에 인류문명은 변화의 태풍 속으로 진입할 것이다. 인류 앞에 많은 시련과 도전과제가 주어질 것이다.

그러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면 현실적으로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정치세력이나,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사람들을 변화시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겠다는 메시아가 나타난다.

그렇더라도 메시아와 솥이 잘 연결되지 않는데요?
그렇죠. 하지만 동양에서는 변혁의 시대에 자신이 그 변화의 주인공임을 자처하기 위해 내세우는 상징물로 다리가 셋 달리 솥(九鼎)이 활용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 GBN 경북방송


우리나라에도 그러한 상징성을 가진 솥이 있나요?
네 있습니다. 혹시 금산사 가보셨나요.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이지요. 금산사 미륵전은 밖에서 보면 삼층인데 안은 통층(하나로 된 층)이죠. 그곳에 모셔진 미륵보살의 발아래에는 진표율사가 창건할 때 조성된 미륵보살의 수미좌가 있는데, 그 수미좌가 바로 무쇠 솥이에요. 아주 전무후무한 독특한 양식이죠. 솥 위에 미륵부처님을 모셨으니까요. 일반적으로 부처님은 연화대 위에 앉거나, 사자좌 위에 앉으신다.

왜 무쇠 솥 위에 미륵부처님을 모셨을까요?
우선 금산사는 우리나라 미륵도량 중 대표적인 도량이다.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율사가 미륵도량을 개창하는 인연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순서다. 진표율사는 부안에 있는 부사의방이라는 곳에서 기도했다. 열심히 용맹정진한 결과 미륵보살을 친견할 수 있었다. 스님은 미륵을 만나 미륵보살에게서 수기를 받고 신표(信標)로 간자를 전해 받는다.

공부를 마친 스님이 산을 내려와 대연진에 도착했을 때 홀연히 용왕이 나타나더니 옥가사를 바치고 권속 8만을 거느리고 금산수(金山藪)로 모시고 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며칠 만에 절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때 미륵보살과 용왕은 상징적인 관련성이 있다. 미륵과 용의 고유한 이름인 미르 혹은 미리가 서로 그 음이 닮았다. 익산에 가면 미륵사가 있다. 백제에서 가장 큰 사찰로 경주 황룡사보다 그 사역도 넓을 뿐 아니라 그 창건 시기도 빠르다. 그 미륵사 창건설화에서도 용과 미륵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백제 무왕이 왕위에 오른 후 왕비와 함께 사자사에 가던 중 용화산 아래 큰 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는 것을 보았다. 그 신이한 경험이 있은 후 왕비의 발원에 의해서 미륵사가 창건되었다. 민중신학자 서남동도 “미륵신앙은 한국인의 무의식의 구조 속에 있는 용(미륵)의 원 조형과 결부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독특한 면은 미륵과 용왕의 결합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네, 우리나라 미륵신앙은 사실 단군신화와도 결부해서 생각할 수도 있어요. 환웅이 하늘나라에서 하강하여 이 땅을 하늘나라와 같은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했잖아요. 그런데 미륵보살도 도솔천에서 이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구름을 타고 하강하셨잖아요. 환웅이나 미륵보살이 모두 천상에서 내려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고자 했던 거죠. 한국의 미륵신앙은 주로 『미륵하생경』을 기반으로 한 메시아사상을 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어째서 진표율사는 미륵을 솥 위에 모셨을까요?
여러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제 생각에 진표율사는 인도에서 발생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건너온 미륵을 한국인의 미륵으로 모시고자 했던 것 같다. 스님은 도솔천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온 미륵보살을 친견하는 영광을 누렸지만 그가 보여준 행적의 행간에서 그가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미륵관념을 정립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마음속에 있던 미륵은 어쩌면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미륵을 모신 ‘무쇠 솥’을 미륵과 환웅의 상징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솥이 가지는 의미를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솥은 기본적으로 밥을 하는 도구이다. 밥은 사람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기본이다. 따라서 솥은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물질, 풍부함, 풍요로움, 수용과 양육이라는 여성원리를 가지고 있다. 즉 만물을 길러내는 속성을 가진다. 서양에서 가마솥이 성배와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도 솥의 그러한 속성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도 메시의 상징물로서의 솥에 관한 전설이 있다. 아폴론이 자신의 신전을 지킬 사제로 만들기 위해 납치한 크레타인 선원들을 델피로 이끌고 올라갈 때, 신비한 빛이 이들 행렬을 에워싸더니 그 빛줄기 속에서 나타난 ‘세발솥’이 쏜살같이 날아가 신전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세발솥’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세발솥이 중심의 상징성을 갖는 것은 인류문화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럽다. 원시 부족이 등장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라. 그들이 사는 중심에는 늘 돌 세 개가 놓였고 그 위에 솥이 걸려 있다. 이러한 문화로 인해 솥은 집의 중앙에 있는 것으로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물건이었다. 곧 솥은 중앙 혹은 중심에 있다는 의식이 발생했다.

중국문화사를 보아도 솥의 상징성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이 제왕은 하늘에 제사할 권리인 제의권을 가지는데, 천제를 지낼 때 꼭 등장하는 것이 삼족정(三足鼎)이었다. 이때 삼족정은 제왕의 상징물이었다. 제왕은 삼족정을 가지고 사람을 기르는 정신적인 음식을 만들어 세상에 나누어 준다고 생각했다.

『사기』 오제본기 황제편을 보면 “모든 만방의 제후국들이 화평해 지자, 귀신과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봉선(封禪)행사가 많아졌다. 황제는 제위의 상징인 보정(寶鼎)의 솥을 얻었다.”는 구절이 있다. 하나라 우왕이 천하 9주의 금속을 거둬들여 9개의 솥을 주조하여 제위(帝位) 전승의 보기(寶器)로 삼았다는 이야기에도 천하의 중심에서 생명을 주도한다는 상징성이 담겨있다. 이 구정(九鼎)은 은나라, 주나라가 쇠하자 사라졌다고 한다.

진표율사가 솥 위에 미륵보살을 모신이유가 있었네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솥은 자애로운 하늘 부모가 세상의 중심에서 세상 만물을 기르는 상징적인 도구이다. 바로 미륵보살의 이상과 일치하며, 동시에 그것은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이다. 때문에 진표율사는 무쇠솥 위에 미륵불을 안치했던 것이다. 이것이 진표율사가 금산사 미륵전 무쇠솥에 숨겨놓은 숨은 비밀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보면 진표율사 이후에도 미륵을 꿈꾼 사람들이 있었지 않나요?
네, 진표의 꿈을 일차적으로 계승하고 새 시대를 꿈꾸며 ‘솥’을 건 이가 바로 신라 말의 혼란기에 새로운 미륵을 꿈꾼 궁예이다. 그는 세달사에서 미륵의 꿈을 안고 나와 3년 만에 3500명의 군사를 거느린 장군이 되어 명주로 진출했다. 그가 명주 땅 그러니까 오늘날 강릉으로 간 것도 그곳에 퍼져 있던 진표의 미륵사상에 감화를 받은 민중들을 포섭하기 위해서였다.
『삼국사기』를 보면 그가 미륵을 자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종[궁예]이 미륵불을 자칭하며, 머리에 금책(금색 고깔)을 쓰고 몸에 승복을 입었으며, 큰아들을 청광보살, 작은 아들을 신광보살이라 하였다......또 경문 20여 권을 자술하였는데....때로는 정좌하여 강설 하였다.’
궁예의 미륵관은 진표의 맥을 이은 것이다. 진표의 꿈이었던 용화세계는 환웅의 꿈이었으며 우리 고유의 칠성님의 꿈과 맞닿아 있다. 신채호는『일목대왕의 철퇴』에서 궁예의 사상을 ‘유불선 취합과 고유의 것 창조’로 보았다. 궁예가 자주적이었음은 독자적인 연호인 무태(武泰), 성책(聖冊), 수덕만세(水德萬歲) 등을 쓴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동시대의 영웅인 견훤과 왕건이 중국연호를 선호한 경우와 다르다.

궁예이후 미륵세상을 꿈꾼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죠?
고려 전기의 묘청을 들 수 있다. 묘청 또한 지덕이 쇠퇴한 개경(개성)을 떠나 서경(평양)에 새로운 솥을 걸고 싶어 했으나 실패했다. 시대의 흐름이 그를 도와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견지하려고 했던 자주 정신만은 오늘에 사는 우리도 한 번 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조선 중기에도 미륵을 꿈꾼 여환이라는 승려가 있었다. 그는 미륵세상을 꿈꾸고 반란을 도모했다가 실패해서 처형당했다. 조선 숙종(숙종14) 때의 승려인 여환도 미륵불을 자처했다. 그는 추종자들과 함께 왕조의 전복을 도모하여 도성에까지 들어갔으나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여환은 본래 강원도 통천의 승려로 “일찍이 강원도 천불산에서 칠성님이 내려 와서 삼국(三麴)을 주었는데, 국은 국(國)과 음이 서로 같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세상을 바꿀 미륵이라고 했다.

금산사를 포함한 모악산은 한국 신흥종교(증산도, 대순진리) 성지가 아닙니까? 그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겠네요?
네,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증산도의 교주 강증산도 ‘자신의 출현이 바로 미륵의 출현이다’라고 했어요. 그의 본명은 강일순인데 자신의 호를 증산(甑山)이라고 지었다. 그가 증산이라는 호를 쓴 것은 바로 금산사 미륵대불이 ‘시루 솥’ 위에 계심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증산이 깨달은 곳도 모악산에 있는 대원사 칠성각에서다. 칠성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자 도솔천에 계시는 미륵님이고 도교의 옥황상제이시다. 그런고로 증산은 자신의 출현이 미륵의 출현이라 했으며, 자신을 상제라고 했던 것이다.

끝으로 한 말씀 드리면, 이제 곧 통일이 될 것이다. 통일 대한민국을 주도할 새로운 지도자로서 통일 한국과 미래세계의 인류를 위해 새로운 ‘솥’을 걸 영웅이 한반도에 임하기를 기대해 본다.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8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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