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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 시인의 석학에게 듣는 문화이야기(4)

- 현대시 박물관과 김재홍 시인(평론가), 황금찬 시인 -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입력 : 2014년 08월 14일
봉이 김선달과 시의 보금자리
- 현대시 박물관과 김재홍 시인(평론가), 황금찬 시인 -



글 정 숙(시인)

ⓒ GBN 경북방송



1. ‘해파리의 노래’ 에 안식처를 제공하다

2008년 11월 1일 시의 날 현대시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뜻 깊은 행사로 서울 명륜동 계간시전문지 시학사에서 개관식이 있었습니다.

그 옛날 대동 강물을 팔아먹을 줄 알았던 봉이 김선달이 환생한 건 아닐까요? 하여튼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척척 잘도 잘 해내는 김재홍 평론가님이십니다. 미당이 그를 “시인보다 더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던 이유가 이해가 됩니다. 명륜동 그 좁은 이층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현대시의 모든 자료들이 모여 같이 백년이란 시간을 숨 쉬고 추억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 동네에선 감나무 집으로 알려있기도 한데 아직도 뭔 욕심이 남아 있는지 아니면 제 자식 떠나보내기 아쉬워서 인지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김남조 고은 시인의 축사를 이어 문학평론가 김재홍 교수님이 한 말씀 하십니다.

“박목월의 붓글씨, 윤동주의 유고시집 등 제가 평생 모은 흥미로운 시 관련 자료들을 모두 공개합니다. 현대시 100주년을 맞아 모처럼 다시 불붙고 있는 시에 대한 관심을 더욱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평생 시 연구를 하며 수집한 각종 희귀자료를 모아 시 전문 박물관을 개관한 것입니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만해학술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10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전시되는 전시품들 중에는 현대시사의 첫 시집으로 기록된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1923]를 비롯해 윤동주의 사후에 동생 윤일주가 보관하던 그의 시 30편에 정지용의 서문을 더해 낸 ‘윤동주 유고시집’[1948], 8.15와 6,25에 대해 당시 시인들이 쓴 작품들을 묶은 ‘해방 기념시집’[1946]과 ‘전시 문학 독본’[1950]등 문학과 사회적으로 의미가 큰 희귀본 300여종이 포함돼 있습니다.

개관 기념으로 한국의 대표시인 100명을 골라 윤문영화백이 그린 초상화와 시인들의 대표작을 묶은 ‘한국 현대시 100인 초상 시화 대표작’ 전시도 열었습니다. 유안진 신달자 시인의 젊고 앳된 모습이나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이성선 시인 생전의 모습 그대로 잘 표현되어 있어 반갑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성선 시인의 미 발표작 “이사”라는 시 친필이 좁은 마루에서 손을 내밀고 있어 더욱 반가웠습니다.



이사

이성선


겨울이 지나자 새들은 짐을 싸고
다시 하늘로 떴다
사람 없는 곳으로 더 추운 쪽으로

엄마는 앞에 아빠는 위에
새끼는 가운데

하늘에 뿌려진 악보들

저녁놀이 그 앞에 길을 쓸어준다


아울러 이성선시인 돌아가시기 전 해 토지 박물관 여름행사에서 이성선 시인과 ‘빤쓰 벗고 그 짓하러 들어간다’ ‘일식[이성선 작품 현대시학 발표]’이란 시를 읋으며 함께 깔깔 웃었던 모습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났습니다.

필자의 첫 시집 ‘신처용가’를 박수 치며 응원해주시던 조병화 시인님, ‘휴화산이라예’ 낭송을 시학 행사에서 한 다음 날 아침이면 일찍 전화해주시며 ‘정 숙시인, 계속 사투리로 시를 쓰세요.’ 하며 응원해주시던 전화음성이, 대구문학아카데미 10주년 행사 원고 청탁으로 박두진 시인님의 처음이자 마지막 음성이 그 좁은 방 안에서 잔잔히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1993년 시와시학으로 시인 등단한 필자를 축하해 주는 박재삼 시인의 친필이 복도 가장 어두운 곳을 지키고 있어 더욱 친근감이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2.만해의 입지立志가 손바닥으로 전달되다

1981년 한용운 문학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재홍 평론가는 자신이 쓴 ‘만해평전’이 국어교과서에 실릴 만큼 만해 전문가로 인정받아왔습니다. 만해 학술원장을 맡아 해마다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리는 만해 축전에도 적극적으로 간여해 왔습니다. 1990년 그가 창간한 ‘시와시학’은 최장수 시 전문 계간지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계간지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향의 전답을 팔아 올리곤 했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 는 말로 시를 향한 열정을 드러내면서 이번 전시 작품 중 유달리 육필이 많은 것은 계간지에 싣기 위해 받은 원고들을 버리지 않고 쌓아두었기 때문인데 컴퓨터가 보편화된 뒤로는 문예지 편집실에서조차 육필을 접하기 어려워진 것이 안타깝다고 하십니다.

박물관은 주 3일[화 목 토]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만 문을 엽니다. 오전 11시와 오후 2.4시에는 해설을 곁들인 관람도 가능합니다. 조정래 소설가의 아버지 즉 김초혜 [사랑굿]시인의 시아버지가 만해의 수제자로 법화종 대처승 조종현님이었다고 합니다. 시조시인이기도 하다는데 김재홍 평론가님이 조정래 소설가의 안내로 만났을 때 교수님 손바닥에 입지立志라는 단어를 써주며 ‘뜻을 세워 일해라’ 는 뜻으로 만해가 그 스님의 손바닥에 그 글자를 써주었다고 했습니다. 즉 입지立志라는 단어가 만해는 조종현님의 손바닥에 조종현님은 김재홍님의 손바닥으로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명감을 가지고 더 만해 연구에 힘을 쏟아 부을 수 있었다고 회상하듯 한 말씀하십니다.

이 날 행사에 현대시 백년이란 시간의 고리를 연결해 주는 황금찬 시인이 초대되어 더욱 뜻 깊었습니다. 그의 [고향의 소나무] 36번째 시집 출판기념도 겸했습니다. 문화예술 위원회에서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한 선생님은 거목처럼 웅크리고 앉아 조용한 음성으로 백년 긴 역사의 연줄을 조율하고 계셨습니다.


3. 현대시 백년을 조율하다

“ 제 나이가 만으로 90이거든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마라톤 1등을 했어요. 라디오가 없어 동네 부잣집에서 수십 만 명이 모여 만세 부르며, 울며 ,일본 아나운서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 때 내 나이 18세였지요. 만권은 읽어야 독서를 했다고 할 수 있다던 강 인산 스승을 존경했는데

‘저 올림픽을 한번 보고 죽어야할 텐데’ 하며 한숨을 쉬니
‘왜, 우리나라에서 해야지’
‘ 나라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요?’
‘그러니까 나라를 찾아야지. 나라를 찾을 때까지 시를 쓰게’
그 땐 꿈같은 얘기였는데 1988년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렸어요. 그 땐 이미 선생님이 돌아가셨는데 그 올림픽 전날 시청에서 축시를 낭독하라는데 참, 시를 쓰면 이렇게 꿈이 이루어지는구나! 혼자 감탄했어요.
비는 내려 수첩이 젖어 글을 읽는데 혼이 났지만 시는 꿈을 갖게 하고 이루어 주는 수단이고 방법이었어요. 올림픽 끝나는 날 피나래 시까지 읽었어요.

1988년 9월 7일 러시아에서 루프생코 시인을 만나
‘내가 듣기로 당신은 시를 많이 왼다고 들었는데 몇 편이나 외느냐?’
‘ 나는 내 시 120편은 왼다. 러시아엔 시 낭독 직업이 있다. 아주 고상한 직업으로 대우가 좋다.’
그 당시 어느 미국시인에게 한국에 자주 오는 이유를 물으니 한국 여인이 조용하고 아름다워서 온다 는 얘길 했는데 지금 그녀들은 너무 요란하고 시끄럽습니다.
한 평생 시 외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시인은 아름답고 선한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평생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이 시인입니다. 인도에는 22개의 국어가 아프리카엔 무려 60여개의 인사말이 있다는데 우리나라는 단일어에 단일민족이니 얼마나 복 받은 일이고 행복한 일인지요. 인도는 타지마할이 좋았는데 죽은 왕비를 위해 그 아름다운 궁전을 짓고 난 뒤 비밀을 위해 목수들을 대부분 손을 자르든지 죽임을 당했는데 가장 중심이었던 도목수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완전하게 짓지 않고 계속 수리하도록 꾀를 썼기 때문입니다. 어느 세계시인대회에서 미국여성시인이 불문곡직하고 포옹을 하며
‘ 황시인의 시를 읽고 밤새 울었습니다. ’고 했습니다.
공납금 달라고 우는 놈 매를 쳐 학교 보내는 가난한 아버지는 종이호랑이 라는 내용의 시였지요. ”

황금찬 선생님의 기억력은 대단했습니다. 날짜까지 정확하게 외고 계십니다. 그 연세에 저렇게 건강한 몸을 유지해 주신 것이 참 고맙습니다. 그것은 늘 긍정적인 사고로 희망을 노래했기 때문이라며
“시는 감동의 예술이 아닙니까? 평생 가난했으므로 가난한 얘기를 썼습니다. 작곡가가 되고 싶었지만 오르간 한 대가 12원이어서 돈이 들어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죽는 날까지 시만 쓸 것입니다.어느 해 내 시집이 안 나오거든 죽은 줄 아세요. 오늘 이 시간을 이처럼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수 있구나! 그것만 기억해 주세요. ”

‘시인은 늙고 병들고 유행이 날아간 언어는 쓰지 않는다’는 어록을 남긴 시인 황금찬시인의 시 한편 이제희 시인이 낭독합니다.



행복을 파는 가게

황금찬



사랑받기를 원하는가

사람아,
받고 싶은 사랑보다
한 3배쯤
남을 사랑하라.
사람아,

세상에는
행복을 파는 가게가 없다네
또 하나의 하늘을
창조하고
꿈의 성문을 열면
열대의 님프가 피워 올리는
이름 없는 꽃 한 송이

보이는 것은
모두 순간적인데
그러나 보이지 않은 것은
영원한 강물

신앙의 배를 띄우고
나 한 마리 백조

등을 밝히고
잃어버린 구를 한 방울
그 속에 눈 뜨는
청자에 그런 새 한 마리.



4. 갯바위들은 아직 잠 못들고


한 점으로 웅크린 거목의 모습이 마치 거친 파도 속에 앉아 꿈쩍하지 않는 갯바위처럼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새삼 시의 집에 갇힌 시인들이 또 시를 위해 헌신을 하고 계신 김재홍 평론가님이 모두 갯바위가 되어 한 차원 높은 삶의 질을 위해 시의 경계선을 지키느라 파도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다는/ 산을 갉아먹으려 쉼 없이 몸부림이고/
산은/ 그 바다 밀어내느라 잠 한숨 못 들고/

그 틈새 작은 / 돌부처 하나 가부좌 틀고 앉아 /
산은 산으로서/ 바다는 바다로서/
서로의/ 경계線, 지켜야한다며/

*미세기의 시달림으로/
제 온 몸 찢기고 부서지는 줄 모르고/
세월없이 목탁 두드리며/ *경전파도 뒤적이면서/

*밀물 썰물 * 경전 같은 파도라는 조어

--‘갯바위’ 전문 [정 숙]



이윽고 뒤풀이 시간입니다. 유랑극단이라며 유자효 시인이 이브 몽땅의 ‘고엽’을 불어로 부르면 김재홍 교수님이 다시 국어와 독어로 부드럽게 부르며 넘어갑니다. 뒤이어 이가림 주간님이 배르렌느의 시를 불어로 읊습니다. 이시영시인과 다른 분들의 뽕짝도 겸해서 마지막엔 김종철 시인의 하바나낄라가 흥을 돋웁니다. 발바닥 장단까지 곁들여 감나무 가지가 집시의 춤을 춥니다. 박미옥 토우 작가는 삼천포에서 시인만세! 를 외치는 작품, 소년을 업고 도착하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시인들의 육필이 쿵, 쿵 나쁜 귀신을 쫒는 지신을 밟습니다. 현대시의 백년 이백년 길이 환히 밝아옵니다. 최남선의 바다가 물길을 열고 깃발을 흔들며 달려옵니다.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입력 : 2014년 0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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