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진의 역사산책(25회)
경주 남산 게눈바위의 비밀-커다란 알 품고 똬리 튼 구렁이는 태양의 재현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8월 26일
|  | | | ⓒ GBN 경북방송 | |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오셨나요? 네, 경주 남산에 가면 게눈바위라고 하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동남산할매부처(남산불곡석불좌상)를 지나 오르거나, 옥룡암-남산탑곡마애조상군 옆으로 오르거나, 포석정에서 오르거나 경주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첫째 봉우리에 있다. 경주톨게이트 들어서며 남산을 보면 게눈같이 생긴 봉우리가 보인다.) 그 바위에는 커다란 알 구멍이 있고 그 알을 구렁이가 사리고 있다(사진).
|  | | | ⓒ GBN 경북방송 | | 해목령 ‘알을 품은 구렁이 신단’
이 신앙유적은 박혁거세 집단과 관련된 듯하다. 신단은 경주 시내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있으며, 박혁거세와 알영이 왕과 왕비로 추대된 후 처음으로 조그마한 궁성을 짓고 산 곳도 신단 아래 창림사터다. 이곳에서는 박혁거세가 탄생한 나정도, 알영부인이 탄생한 알영정도, 박혁거세가 묻힌 오릉도 한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이 신단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요.
일명 ‘게눈바위’라고 하는 그곳을 박혁거세 집단과 연결해서 생각할 만한 단서가 있습니까? 네, 사실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진 정보로는 그렇게 주장할 만한 근거가 없어요. 하지만 제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충분히 그럴만한 간접 증거들이 있어요.
먼저 박혁거세가 한민족 초기공동체를 주도한 세력 중에 어떤 집단과 관련이 있는지를 고려해야 되요. <<삼국지>>에 보면, “진한은 진국의 후예”라고 했어요. 그런데 진국은 위만조선이 북한 지역에 있을 때 지금의 아산만에서 금강 유역에 있던 나라예요. 이 나라는 우리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와 관련된 단군왕검사회의 정통 맥을 이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제 생각인데요(다 설명하려면 복잡해요. 제책,『한반도는 진인의 땅이었다』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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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족=환웅족
그들은 ‘칠성․태양․뱀(=구렁이)’을 숭배하는 종교문화를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앞에서 한민족에게 있어 곰 신앙이 사라진 원인이 환웅세력이 가지고 온 칠성신앙 때문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그 환웅이 가지고 온 칠성신앙에는 태양과 뱀을 숭배하는 의식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조금 복잡해지는데요? 네 그렇죠. 쉽게 설명하자면, 머릿속에 무당 巫자를 생각해 보세요. 그 무당 무자를 만든 문화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제가 말하는 환웅세력인데, 그 무당 무자의 중앙에 있는 장인 공(工)자가 칠성신앙을 나타내는 그림이고, 양 옆에 있는 사람이 무당인 셈이죠. 그런데 공공족을 나타내는 족휘, 그러니까 우리의 태극기에 해당하는 그림을 보면, 장인공자 옆에 태양과 구렁이를 그려놓았다. 환웅세력이 칠성과 태양과 구렁이를 숭배하던 집단임을 보여준다.
그럼 단군시대에 태양과 구렁이를 숭배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있나요? 네 있어요. 우리민속 중에 업신(業神)이란 것이 있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대청의 성주신이나 안방의 삼신 등 집과 가족을 지켜주는 신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구렁이는 ‘업(業)’이라고 해서 재물을 관장하는 신으로 모셨다. 필자의 어릴 적 기억 속에도 이러한 신들이 집에 모셔졌었다. 대청마루 아래에 구렁이가 기어 다니기도 하고, 헛간에도 구렁이가 살았다. 어른들은 집에 사는 구렁이는 집을 지켜주는 동시에 재물을 가져다준다고 하면서 구렁이를 해치지 못하게 했다.
그렇다면 구렁이는 어떻게 재물과 관련된 신이 되었을까? 단순히 생각하면 구렁이는 독이 없어서 집안에 살아도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으나, 집과 들에서 곡식을 해치거나 훔쳐가는 쥐를 잡아먹으니 사람에게 이롭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구렁이가 집을 지키고 재물을 가져다준다고 믿게 된 데는 좀 더 깊은 종교적 원리가 숨어 있다.
업신은 단 위에 부루단지를 올려놓고 모셨다. 부루단지의 ‘부루’는 단군의 아들 이름이다. <<단군세기>> “무술 58년(B.C2183년), (扶婁)단제께서 붕어 하셨는데 이날 일식이 있었다. 뒤에 백성들은 제단을 설치하였으니 집안에 땅을 골라 단을 설치하고 질그릇에 쌀과 곡식을 가득 담아 단 위에 올려놓았다. 이를 부루의 단지라고 부르고 업신(業神)으로 삼았다.”
또한 <<신단실기>>에는 “집안에 땅을 골라 단(壇)을 쌓고, 흙으로 만든 그릇에 곡식을 담아서 단 위에 놓아두고, 짚을 엮어 덮어 놓은 것을 부루단지(扶婁壇地)라 하고, 혹 업주가리(業主嘉利)라고도 한다. 단군의 아들 부루가 어질고 복이 많기 때문에, 나라 사람들이 그를 받들어 재신(財神)을 삼았다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 단군의 아들인 부루는 태양, 즉 불과 관련된 이름이고, 그가 변해되었다는 재물신인 업신은 바로 구렁이로 상징된다.
우리 민속에서 재물을 관장하는 업신은 부루와 관련 있고, 단군시대부터 이어져온 전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네, 맞아요. 그런 업신은 곡령(穀靈)신인 셈이죠. 그 곡령신이자, 생명의 영혼을 상징하는 구렁이가 박혁거세 신화에 남아 있어요.
박혁거세 신화에 구렁이가 등장한다고요? 네, 박혁거세는 뱀과 관련된 설화를 남기고 있다. 박혁거세가 죽어서 하늘로 승천했다가 7일 만에 육신이 다섯으로 나뉘어 떨어졌는데, 그것을 수습해서 장사지내려 하니 구렁이가 방해했고 한다.
이 설화를 두고 학자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한다. ①큰 뱀이 나타나 방해하여 5체를 각각 장사지낸 것을 다산·풍요의 소망을 내포한 이야기로 보거나, ②큰 뱀을 뱀 신으로 혁거세의 사후를 보호하는 신으로 보거나, ③큰 뱀을 왕권 확대를 위한 매개체로 보기도 한다. ④또한 큰 뱀은 천상의 신 즉 태양신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그 중 선생님의 견해와 일치하는 것이 있나요? 제가 보기에 그 구렁이는 태양과 그 빛에 관한 신앙과 관련해서 해석해야 한다. 박혁거세가 죽은 후 나타난 구렁이는 혁거세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태양)에서 분화되어 태어난 동일자이다. 그런 혁거세와 그의 자손 왕들이 묻혔기 때문에 오릉을 사릉이라고 했다.
신라인들 특히 박혁거세 집단이 뱀과 태양을 어떻게 연결해서 생각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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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아들 九龍
신라 사람들은 구렁이가 둥그렇게 사리고 있는 모습에서 생명력을 느꼈다. 그들은 태양이라는 하늘의 알을 천상의 구렁이가 사리고 있으며, 그 하늘의 알을 사리고 있는 구렁이가 환생한 것이 지상의 구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구렁이는 생명력을 나타내는 동물이었고 곡령신(穀靈神)으로 대접받아 업신이 되었다.
오늘 소개한 경주남산의 게눈바위 알터에 관해서 정리해 볼까요? 네, 게눈바위 ‘알을 품은 구렁이 신단’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공공씨의 아들인 구룡(勾龍)을 들 수 있다. 주나라 때 옥으로 만든 그의 모습은 게눈바위와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다(사진).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게눈바위 신단은 태양을 상징하는 '알을 감싸고 있는 구렁이'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제가 공공족을 환웅세력으로 파악하고, 초기 단군신화의 주인공들이 이후 한국사에서 진(辰) 혹은 진(眞)으로 불린 집단이라는 주장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한다. 『삼국사기』박혁거세조에서는 박혁거세의 ‘-거세’는 진인의 말로 왕 혹은 귀인을 뜻한다고 했다. 혁거세 집단이 진인계열이었음을 말한다. 따라서 이 신단은 진인(辰人)들의 우주생명관을 바탕으로 해서 조성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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