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 시인의 석학에게 듣는 문화이야기(5 )- 문경현 박사편
이미륵 박사 및 하양, 경주 등을 찾아서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 입력 : 2014년 08월 29일
그의 압록강은 영원히 흐른다 [이미륵 박사와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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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숙 시인
1.천년의 시간을 찾아가는 길
2009년 1월 5일 사학자 문경현 박사님과 신라사 연구와 금석비문의 대가인 경북대 이영호 교수님과 시인 이상번님과 대구대 한문학자인 이정화교수님 이 네 분과 합석하여 경주로 떠나는 날입니다. 일부러 고속도로 아닌 국도를 달립니다. 경산을 지나고 필자의 친정이 있는 자인 쪽을 지나 하양으로 들어서면서 문박사님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하양은 하양 허씨가 유명하지요. 세종 때 허주 대감의 본거지기도 하고” “저기 은혜사는 이지현이라고도 했는데 옛날 銀鑛은광으로 유명합니다. 소설가 현진건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어쩌다 野菜 야채라는 말이 나오자 “야채는 일본어입니다. 한글로는 채소가 맞지요.” 말 한마디라도 아주 엄격해서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선덕여왕의 초상이라 하니 “임금의 초상화는 御眞어진이지요. ” 무지가 폭로될 때마다 부끄러운데 이미 습관이 되어 어쩔 수 없으니 죄송합니다. 다 늙은 남편을 신랑이라 한다고 또 몇 번을 면박 주신다. “에고 이래저래 시집살이는 팔자로다”
그럭저럭 영천으로 들어서면서 “옛날엔 영천을 골벌국이라 했는데 이곳은 인재가 많지요.” 필자의 조상 포은 정몽주의 임고서원이 있고 선조 때 박인로선생, 소설가 백신해 , 지금 복지부 장관 전재희, 경기지사 김문수, 서강대 박홍총장, 문경현박사님 본인, 김법린 옛 문교부장관, 이호[전 내무 법무부 장관], 조선역사를 쓴 김성칠[역사 앞에서] 이 중 김성칠, 이호, 김법린, 문경현박사 네 분을 영천 4재라고 한다며 짓궂게 씨익 웃으십니다.
영천은 임문석 황보집등의 [민성일보]라는 신문발행으로 좌익이 강했다고 그래서 철저한 좌익이고 반일이었던 백신해 소설가가 존재했나 봅니다. 지금 영천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중기 시인과 모윤숙 보다 훨씬 미인이었다던 이하석 시인의 말을 떠올리는데 이영호 박사 묵묵히 운전하다가 한 말씀 보탭니다. 길목에 파장이 되어 검게 너불대는 겨울연밭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정화교수 “저 연잎에도 농약을 뿌린다는군요.” 혀를 차다보니 경주로 들어선다. 무열왕[김춘추]릉에 내리면서 왕릉 건너편 김유신 묘를 김인문[무열왕의 2째 아들]의 묘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무열왕릉 들어가서 입구엔 거대한 거북이 발 없는 용 여섯 마리를 업고 있습니다. 그 비가 그 당시 당나라 형이지만 거북 발가락이 다섯인데 뒷발가락은 넷이라며 그것은 걸어갈 때 발가락 하나는 힘을 주느라 접혀져 보이지 않는다고 그 만큼 생동하는 거북으로 최고의 걸작이라 칭찬하십니다.
이 상번“ 무열왕의 첫째 아들이 문무왕이지요?” 이 영호“ 그렇지요. 그 둘째가 김인문입니다.” 문경현“ 김인문은 대학자요 명필입니다. 저 비문을 쓴 분이지요.” 이 정화“ 박사님 옛날 이태백이나 두목[목지] 같은 시인들은 인기가 대단했다는데 어느 정도였나요?” 문경현“ 아 대단했지요. 두목은 두잠이라고 했고 이태백은 이백이라고도 불렀는데 두목이 타고 가는 수레에 여자들이 귤을 던져 수레가 가득차기도 했답니다. 허난설헌이 그 두목을 그리워하는 시를 짓기도 했지요.”
정 숙 “ 그 당시 명문가의 맏며느리로 남편 김성집을 두고 누군가 그리워하는 시를 쓰고 그 생활을 견디지 못한 걸 보면 허난설헌의 성격이 자유로웠기 때문 아닐까요?” 문경현“ 맞습니다. 허균의 반골사상은 어느 서자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었고 서자를 자녀의 스승으로 모신다는 건 그 당시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개방적인 환경에서 자란 탓이기도 합니다.” 정 숙“이상번 시인님 첫 시집[스탑 더 워]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등단 연도는 아주 빠른데 시집을 함부로 내지 않으시려는 그 정신 높이 사야겠지요.”
이윽고 신라문화유산조사단에서 손오익 단장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이 문경현 박사님 [사학자, 문화재 위원] 을 환대하며 궁중요리 수준의 점심을 대접 받았습니다. 다과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이미륵에 대한 얘기 주머닐 풀기 시작합니다.
2.독일 교과서에 실린 한국인의 소설(이미륵)
“1930년 독일 뮌헨 체류 시절의 이미륵 박사 자전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1946)로 전후 독일 문단을 뒤흔들었던 재독 교포 작가 이미륵(李彌勒·1899~1950) 박사의 독립운동 활동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며 이 선생의 종손(從孫)으로 유족 대표인 이영래(李榮來·삼화제작소 대표이사)씨는 최근 국가보훈처에 이 박사에 대한 독립유공자 추서 신청을 했다고 합니다.
새로 드러난 행적은 1920년 상하이 임시정부 산하 대한적십자회에서 활동한 사실로, 최근 김종욱 세종대 교수가 논문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을 통해 밝힌 것입니다. 임정 기관지였던 독립신문의 1919년 11월 27일자와 일본 경찰이 작성한 ‘고등경찰요사’ 등은 이의경(李儀景·이미륵의 본명)이 ‘대한적십자회 십자대(十字隊) 회원’ ‘청년단 편집원’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대한적십자회는 1919년 7월 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립한 보건후생단체였습니다.
3·1운동에 참가한 이미륵 박사가 일본 경찰에 쫓겨 압록강을 건넌 뒤 상하이를 거쳐 유럽으로 간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상하이에서의 활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지요. 이 박사는 유럽으로 간 뒤에도 일본측이 작성한 ‘요시찰 조선인 학생 33명 명단’에 올라 있었으며, 1927년 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피압박민족회의’에 김법린·이극로·허헌 등과 함께 참가해 일제의 식민 정책으로 신음하는 조선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려 했습니다.
본명은 이의경 황해도 이감찰 댁 외동아들로 아버지가 한학자였고 서울 의학 전문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11살에 6살 연상의 여인과 결혼해서 딸이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처음 동물학을 하다가 동양학을 강의하였습니다. 거의 매일 고향으로 편지를 부쳤는데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날 누님 어진이가 보낸 편지를 읽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내용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미륵 박사가 일본 경찰에 쫓겨 압록강을 건넌 뒤 중국으로 가면서 마지막 본 압록강을 회상하면서 쓴 독일어로 쓰여진 소설로 독일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였다니 대단한 일 아닙니까? 3부까지 구성이 되었는데 2, 3부는 공습으로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1부는 자전적인 내용으로 고국 특히 고향 해주에 대한 향수가 가슴 쓰리게 했었다고 2부와 3부는 주로 독일 생활과 느낌을 쓴 글인데 소실되었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전시된 사진을 봤는데 이 미륵씨 참 잘났어요. 독일 여성들한테도 그렇게 인기가 있었고 존경을 받았답니다. 51세의 위암으로 타계하기 까지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임종엔 게일러 교수 부인 지그문트와 이미륵의 지도로 동양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에파양 무릎을 베고 러브송을 부르며 돌아가셨어요. 러브송이란 바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를 말하지요. 특히 그의 불멸의 연인 애파양은 미쓰 민셴으로 뽑힐 정도로 예뻤답니다. 사진으로도 봤어요. 이미륵 박사가 타계하자 에파양은 그 당시 연합군에 의해 봉쇄된 베를린 수녀원으로 지그문트는 지방 교육감으로 숨어버려 그 당시 순애보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 만큼 훌륭한 신사였고 천재였다는 거지요. 나중 지그문트가 “나는 그렇게 돌봐 드리지 못했어요. 애바양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간호했는지요”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가 세계 여러 나라 어로 번역될 만큼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그것을 독일에서 공부한 전혜린이 번역을 했지요. 미숙한 부분도 많지만 그 당시 추억의 인물이 또 그녀이지요. 다음엔 전혜린에 대한 얘길 나눠보도록 합시다.”
어느새 짓궂게 웃으시며 작자미상의 시조 한 수 풀어냅니다. 兩脚[양각] 새에 牧丹[모란]이 半開[반개]하여 내 힘줄방망이로 進進[진진]코 退退[퇴퇴]하니 其味[기미]가 如嬨[여자]라 嬨[자]는 사탕이라는 뜻으로 그 맛이 사탕처럼 맛있더라는 뜻이라며 아주 노골적으로 性적인 표현을 하다가도 금세 옷깃을 여밉니다. 시인은 언제라도 그 시대의 선봉이었다며
“하이네는 감성적인 공산주의자였고 피카소도 철저한 공산주의여서 혁명가 프랑코를 지지했지요. 피카소의 ‘게르니카’란 그림은 스페인 국민학살 내용이고 한국전쟁을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바이런은 영국백작이면서 그리스 독립운동을 했던 시인이었습니다. 4,5십년 대는 하이네와 바이런시집을 60년대는 햇세의 데미안과 전혜린 이어령의 수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읽어야 만 지성인라고 할 정도였지요. 이어령의 수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문일평의 글과 일본 야나기 무네요시의 글 많은 부분이 짜깁기한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민셴은 뮌헨을 말하는데 그것이 바른 표기지요. 언제 서울 이미륵 기념관에 한번 들러보세요.”
3.불국사에서
하루 동안 일정이 바빠 모두 서둘러 일어납니다. 신라문화유산 연구원인 조수진 박사의 안내로 불국사로 향합니다. 문박사님의 불편한 다리 때문에 전 전국 불교 청년회 회장이었던 이상번 시인이 주지스님과 통화하시더니 경내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불국사 주지 스님은 성타 스님으로 ‘마음 멈춘 곳에 행복이라’ 생활 명상집을 낸 스님입니다. 최인호 소설 ‘길 없는 길’에 나오는 만공스님 다음 그 다음 제자라고 합니다. 환경운동가이며 ‘금오집’ 등 여러 저서가 있습니다. 다과를 대접해주시며 극락전 복돼지 얘길 해주십니다. 조선 영조 26년[1750]에 조성된 극락전인데 극락전 현판 바로 위에 다산과 민족번영을 기원하여 멧돼지 한 마리 조각해 올려둔 것을 이제까지 몰랐다고 합니다. 황금돼지 해인 2007년에 겨우 알았다는 얘기며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스님 중 한 분인 [신라 어느 왕의 아들] 김교각 스님이 중국 구화산에서 앉아서 등신불이 된 얘기에 귀를 기울이느라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1300년 뒤 신라로 돌아가겠다는 말씀에 따라 지난 1997년 중국인들이 그 분의 동상을 보내주어 무설전에 모셨다고 합니다. 돌아가실 때도 신라를 향해 앉아 고국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4. 석굴암에서
해질 무렵 산골짜기 잔설을 지나 석굴암으로 향합니다. 원래 목적지는 석굴암이었기에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얼음 산길로 들어섭니다. 특별한 배려로 석실 안까지 들어가 부처님을 뵙습니다. 실내는 푸근했고 입구 금강역사님 두 분이 자성의 시간을 갖도록 강요합니다. 참! 감탄사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석가모니불과 제자들 그리고 십 일면 관음보살님의 그 관능적인 몸매가 살아 움직입니다. 아니 서로 움직이다가 사람 소리에 멈춰 선 느낌입니다. 체온이 따뜻하게 느껴져 특히 입술이 불그레하게 칠해져 있어 뜨거운 피 흐르는 소리 들리는 듯합니다. 제자들 중 원숭이 같은 분이 있어 물으니 젊고 예쁜 조수진 박사가 유마힐 거사님이라고 대답합니다.
5. 빈바구니
‘삶은 고독과 갈등의 경전이다’ 라고 누가 말했던가요. 우리는 이 세상의 몸을 받을 때부터 첫 울음 울 때부터 고독을 입고 태어났습니다. 고독이 있어 진정으로 참회와 기도를 하게하고 그 과정에서 모든 예술품이 태어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린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어 모든 것을 버리기도 합니다. 돌아오는 길엔 모두 침묵에 잠겨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지 운전하는 이영호 박사님 만 눈빛 초롱합니다. 하루 동안 천년의 역사를 밟았기에 순식간에 한 줌의 재로 남지나 않을까 은근히 두렵습니다. 참 긴 하루입니다. 자기 성찰의 시간에 시 한편 적어 봅니다.
빈 바구니
정숙
아침 산책길에서 높은 벚나무 가지에 앉아 활짝 웃고 계신다 꽃부처님을 뵙느라 엉거주춤 서 있는데 왠지 발밑이 소란스러워 내려다보니 고 작은 냉이꽃들이 소복이 모여 주먹질을 하다가 흐느끼다가 그 힘의 열기가 내 등산화 밑바닥을 울렸던 모양이다
살아오면서 저도 모르게 이름 없이 숨 쉬는 풀꽃들을 얼마나 많이 밟았을까? 짓밟히는 자신을 늘 애달아하면서... 경주 남산 마애불들을 왜 바위가 바짝 붙잡고 있는지 왜 땅을 밟지 못하게 엉거주춤 서 있거나 앉아있는지 오늘에사 짐작이 간다
발밑에 밟히는 풀과 개미들의 신음소리가 차마 산을 밟지 못하게 했던 것이지 겨우 눈뜨는 노랑제비꽃잎을 거침없이 짓밟으며 저만의 발복을 비는 모습 돌아본다 소복소복 채워보겠다고 나선 내 욕망의 빈 바구니 내려놓는다 |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  입력 : 2014년 0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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