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배교수 음악산책(200)
독일 민요(Ⅱ) 영국민요(Ⅰ)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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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민요(Ⅱ)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독일의 겨울은 눈이 쌓인다. 그래서 눈에 덮여 지루한 겨울을 보내야 하는 독일의 어린이들은 한결 같이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진다. 침울한 겨울, 눈 속에서 맞이하는 가장 즐거운 명절이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이다.
1818년의 일이었다. 눈이 많아서 스키장으로 알려진 알베르크에서 가까운 오베른돌프의 성(聖)니코라이 교회에서도 크리스마스 준비에 모두가 바빴다. 성가단원들은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프란츠 그류버의 지도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부를 합창을 연습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르간 소리가 나지 안았다. 고장이 난 것이다. 당황한 것은 누구 보다 이 교회의 목사인 요셉 모올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크리스카스 이브를 무사히 넘기 위해서 가사(歌詞)를 지어 지휘자 그류버에게 작곡을 시켰다.
교요한 밤, 그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이날 밤, 고장 난 오르간 대신 기타 반주로 불러진 이 선가(聖歌)는 조그만 한 산 속 교회에서부터 설산(雪山)에 메아리치면서 멀리 멀리 퍼져 나갔다. 단순하고도 차분하며 음역(音域)이 넓지 않아서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이 노래는 이 날밤 교회당에서 나오는 신자들의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로부터 13년 뒤, 라이프치히에서 박람회가 열렸다. 이 때 슈타랏사라는 장갑공장의 직원으로 근무하던 4남매가 중창단을 조직해서 출연하여 이 노래를 불러서 박람회의 명물이 되었다.
더구나 그들이 부르는 「고요한 거룩한 밤」은 굉장한 갈채를 받았으며 모였던 사람들은 누구나가 곧 따라 부르면서 즐거워했다. 200년 전 레코드가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영국민요(Ⅰ)
즐거운 나의 집 때는 1840년의 전후, 그때만 해도 뉴욕은 오늘날처럼 하늘을 치솟는 마천루(摩天樓)의 거리는 아니었다. 번화가를 좀 벗어나면 거기에는 서민들의 단란한 생활이 있었다. 초생달이 지고 별빛만 총총한 밤, 뉴욕의 뒷골목의 아담한 벽돌집에서는 한 가족이 부르는 「즐거운 나의 집」이 흘러나왔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이 쉴 곳도/ 꽃 피고 새우는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즐거운 나의 집/ 나의 집뿐이리/
40세를 넘어 보이는 헙수룩한 차림의 한 사나이가 발을 멈추고 집안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에 귀를 기울이더니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아! 내가 지은 이 노래를 저기서도 부르고 있구나, 온 세계의 가정에서 내가 지은 가사로 즐거운 가정을 찬미하고 있지만, 나는 이렇게 몸 둘 곳도 없이 부평초처럼 떠나야 한단 말이야, 나는 차라리 저 노래를 지은 것이 저주스럽구나”
이 불우한 방랑자는 바로 1791년 보스턴에서 태어나, 20세 때 배우가 되어 영국에 건너가서 활약하다가 오페라「크래이리」의 대본을 쓰고 이 오페라에서 불려진「즐거운 나의 집」을 후세에 남긴 작사자(作詞者)죤 페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50세가 넘어서 비로소 생활의 안정을 얻었고, 지중해 연안의 튜니스에서 영사관에 근무하다가 61세가 되던 해에 외롭게 세상을 하직하였다. 작곡은 19세기 영국의 오페라 작곡가 헨리 비숍(Henry Bishop,1786~1855)이다.
안종배<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4. 9. 8. ahnjbe@hanmail.net |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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