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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진의 역사산책(27회)

각처총 씨름도의 호인(胡人)처럼 생긴 사람은 고구려 주민이다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9월 11일
ⓒ GBN 경북방송

오늘은 이야기의 주제는 어떤 것인가요?
네 오늘은 중국 길림성 집안현 우산촌에 위치한 각저총(角抵塚, 5세기 초)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널방 왼쪽 벽에 두 장사가 씨름하는 모습 때문에 각저총이란 이름이 생겼다. 널리 알려진 대로 고구려인들은 많은 무덤벽화를 남겼다.

각저총 씨름도에는 씨름 말고도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이 있다. 바로 신단수와 신단수 아래에 앉아 있는 곰과 호랑이 이다. 신단수·곰·호랑이 하면 우리 머리 속에는 단군신화가 떠오른다. 이 그림은 단군신화가 5세기 초 고구려에 전달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단군신화가 그려진 장면에 씨름도가 포함되었다. 이는 씨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제의적 행사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GBN 경북방송
그런데 씨름하는 장면이 나오는 벽화를 왜 각저총이라 불렀죠?
네, 그것은 별자리와 관련 있다. 하늘의 별자리를 스물여덟 개로 나누어 28수로 나누고, 이를 다시 일곱 개씩 네 구역으로 나누어 동서남북에 배치했다. 28수 중 동쪽의 일곱 별자리에는 각 · 항 · 저 · 방 · 심· 미· 기이다. ‘각저’는 동쪽 일곱 별자리 중 으뜸별인 각수와 저수를 말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씨름 인가요?
네, 씨름에 대한 이야기와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씨름은 한국 고유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나요?
네, 씨름은 오늘날까지 널리 행하여 오고 있는 민속놀이이다. 특히 음력 5월 단오절에는 빠짐없이 씨름대회가 열리고 있으며, 7월 백중절과 8월 추석 등의 명절에도 씨름은 빠지지 않았다. 대한 씨름협회에서는 씨름이 치우천왕과 관련된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으나 그것은 확실한 근거에 기반한 이야기가 아니다.

문헌기록상으로는 어떤가요?
『후한서』를 보면 중국 한나라 왕은 부여왕이 방문했을 때 환영행사로 각저희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각저희는 오늘 날 씨름과 매우 유사한 운동이다. 또한 『조선상고사』에서 신채호는 신소도, 즉 소도에서 행하는 제사 예식으로 여러 가지 기예를 하는 데 그 중 ‘씰흠’이 있었다고 한다. 단군신화의 내용과 함께 표현한 각저총 씨름도를 보면 단군시대부터 씨름이 행해졌을 가능성도 추측해 볼 수 있다.

『고려사』에는 "충혜왕(忠惠王) 원년(1339년)에 왕이 나랏일을 총신들에게 맡기고 매일 궁중에서 잡무에 종사하는 소동들과 씨름을 하여 위와 아래가 없더라."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충혜왕은 씨름을 몹시 좋아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이 씨름을 좋아한 것으로 보아 당시 백성들도 씨름을 상당히 좋아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씨름이라는 명칭은 우리 고유의 것인가요?
씨름은 순수한 우리말이다. 한문으로는 각저 · 각희 · 각력 · 쟁교라고 한다. 씨름은 몽골에서는 ‘썬렘’이라고 한다. 씨름과 발음이 비슷하다. ‘씨’는 성의 씨(氏)를 상징하는 말로 남자의 존칭이며, 겨룸, 판가름 등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름’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씨름’이라 했다는 설이 있고, 민속학자 최상수는 영남지방에 힘을 견주어 버틴다는 사투리에 ‘씨룬다’는 말이 있음을 들어 ‘씨룬다’에서 씨름의 어원을 찾고 있다. 영남지방의 말에 서로 버티고 힘을 주고 겨루어보라는 말에 '씨루어 봐라'라는 말이 있다. 또 오랫동안 버티고 있다는 말을 '되게 씨룬다' 또는 '되게 씨루네'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 씨름이라는 말은 동사 '씨룬다'에서 씨룸→씨름으로 명사화된 것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 GBN 경북방송

씨름하는 수메르인, 기원전2,500

씨름은 우리민족만 했나요?
그렇다고 할 수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어요. 두 사람이 힘을 겨루는 투기 운동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잖아요. 무기가 없는 시대에 맹수나 다른 종족에게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자신들의 힘과 체력으로 싸워 이겨야만 했어요. 몽골이나 일본에도 씨름과 비슷한 경기가 있다.

씨름을 가장 일찍 시작한 곳은 어디죠?
수메르인들이 남긴 그림을 보면 황소와 싸우는 영웅들의 그림이 많이 있어요. 그것이 씨름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실제로 기원전 2500년경에 수메르에서 제작된 청동기는 두 사람이 씨름을 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어요. 지금 우리나라 씨름과 거의 완벽하게 똑같아요. 우리나라 씨름의 기원이 수메르 쪽과 관련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실제로 우리문화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문화가 비슷한 것들이 많이 있다.

이집트에도 씨름이 유행했어요. 나일강 상류지역에서 기원전 2200년경의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에는 200건의 씨름모습이 새겨져 있어요. 그리고 불경인 법화경에도 씨름이 나오고, 부처님이 씨름하는 모습을 그린 인도의 암벽화도 있어요. 유라시아 전역의 고대인들이 씨름을 즐겼다고 보면 된다.

씨름도가 단군신화와 함께 그려졌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네, 기원전 2500년 전의 수메르에서 제작된 청동 씨름상을 보면 신단수 옆에서 왜 씨름을 하는지 추측해 볼 수 있다. 청동 씨름상을 보면 두 사람은 머리에 청동 향로를 이고 있다. 그것은 씨름이 제의적으로 행해지던 운동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씨름은 초기 단계부터 축제나 제사 의식을 거행할 때 하던 운동이다.

처음 가는, 혼자 가는 저승길에 나타날 수 있는 장애를 물리치라는 염원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하늘과 지하세계로 연결된 신단수 옆에서 씨름을 한다는 것은 아마도 미지의 세계 혹은 보이지 않는 두려움과의 투쟁과 관련 있을 듯하다. 수메르의 신화전설을 보면 영웅들이 자연과 투쟁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들이 자연의 폭력을 극복하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황소의 모습을 한 수메르 영웅이 야생의 황소나 사자와 대결하는 인장을 보면 씨름의 기원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씨름은 인간이 초자연적인 힘과의 대결에서 이기고자 하는 열망을 담고 하는 경기이다. 따라서 각저총에 그려진 씨름은 무덤 주인공이 신단수를 통해서 저승으로 아무 탈 없이 가기를 염원하는 제의적 행사였을 것이다.


씨름은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네요. 이제 씨름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예 우리는 학교다닐 때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서 배운적이 있다. 그것은 각저총 씨름도에 등장하는 한 인물이 서역인이라는 설인데요. 최근(2005)에 출판된 ‘고분미술’에 관한 책에도 보면, “널방 벽에는 커다란 나무 옆에서 노인을 심판으로 삼아 메부리코를 가진 중앙아시아계 인물과 고구려인이 엎치락뒤치락 겨루고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어요. 다른 책에도 ‘벽화에 나타나는 이색적인 서역인상은 당시 서역과의 인적 교류를 말해준다’고 적고 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메부리코를 가지고 눈이 깊은 서양인을 닮은 사람이 과연 서역인이냐, 고구려인이냐 하는 문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가 서역인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요?

분명한 메부리코에 눈이 깊은 그 인물이 서역인이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네, 이제 다른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 과거 문헌만을 참고해서 역사를 해석할 때는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고고학적인 새로운 발견이 많이 되고, 특히 고인골, 그러니까 오래된 인골을 유전학적으로 조사해서 민족의 계통을 추적하는 시대다. 일예로 몇 년 전 강원도 정선 지방에서 3000년 전의 고인돌에서 인골을 발견했고, ①그것을 서울대의과대학에서 DNA를 조사했더니 놀랍게도 지금의 영국사람과 가장 가까웠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②또한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아시아 각 지역의 인골 2000여점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신라왕족의 부계는 스키타이와 가장 가깝고 모계는 스키타이 혹은 서흉노와 가장 가까웠다. ③그리고 현재의 몽골 전역을 삼등 분 하였을 때 서쪽 지역에서는 유럽인종이, 중앙에는 몽골인종이 그리고 그 동쪽에는 유럽인종의 특색을 보였다고 한다.

대단히 놀라운 결과네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사실 이러한 사실에 놀랄 필요는 없다. 수천 년 전부터 서쪽 사람들이 동으로 이동했는데, 역사연구에서 그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지요. 문헌에 이미 그 답이 나와 있었어요.

문헌에 그러한 내용이 있었다고요?
문헌에 보면 중국 동북 지역에는 전국시대 이후 동호(東胡)라는 세력이 광범위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활동한다. 심지어는 고조선을 동호로 인식하기까지 했어요. 일반적으로 흉노는 호(胡)라 하고 그 동쪽에 있는 사람들을 동호라 한다. 그런데 흉노의 주도 세력은 투르크계였다. 이들도 천산의 서쪽에서 이주한 서역인과 몽골인의 혼혈이다. 그런데 2세기 말의 한나라 학자 응소는 고구려를 ‘구려호(句麗胡)’라고 칭하고 있다. 고구려 주민에 호인들이 포함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럼 각저총의 호인, 즉 서역인은 고구려인이었다는 결론이네요?
맞습니다. 각저총에 나오는 호인, 즉 서역인처럼 보이는 인물은 당시 고구려 주민에 포함되었던 동호계 고구려 주민이었던 것입니다.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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