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배교수 음악산책(201)
아일랜드 민요 스코트랜드 민요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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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민요
아 목동아 아일랜드를 영국의 한 부분으로 알아서는 잘 못이다. 이 섬은 완전히 독립된 공화국이다. 아일랜드는 7백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오히려 프랑스인과 가까운 켈트족(族)인 만큼, 민족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영국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항을 해왔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 때, 독립운동을 일으켜서 자유국가가 되었으며, 제2차 대전 때는 중립을 지켜서 마침내 완전 독립의 공화국이 된 것이다. 위치는 북위 52도 선상에 있어나 기후는 비교적 따뜻하고 비가 많기 때문에 산야는 항상 초록빛에 싸여있다. 우체함 까지 초록빛인 이 나라는 국화(國花)조차 푸른 잎의 클로버이다.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러 나오고/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너도 가고 또 나도 가야지/ 저 목장에는 여름철이 오고/ 산꼴짝마다 눈이 덮여도/ 나 항상 오래 여기 살리라/ 아! 목동아, 아! 목동아, 내 사랑아/
멀리 떠난 목동의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노래라는 이 노래의 가사는 그러나 이 멜로디에 붙여진 여러 편중의 하나이다. 「유토피어」를 쓴 토마스 무어도 센치멘탈한 연애시(戀愛詩)를 이 곡에 붙였는데, 본래는 ‘프레드 그레이브스’의 가사로 「런던데리」의 노래이다.
「런던데리」는 아일랜드 서북쪽에 있는 고요한 강을 낀 주(州)의 이름이다. 그 곳 사람들은 「런던데리」라기 보다는 그냥 ‘데리’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사실 300년 전까지는 ‘데리’라고 하던 것을 잉글랜드와 스코트랜드가 세력을 펴면서부터 1618년에 영국왕 제임즈 Ⅰ세가 런던이라는 이름을 덧붙여서 「런던데리」라고 부르도록 강요를 한 것이다.
스코트랜드 민요
작별 18세기의 일이었다. 어느 날 런던의 대영발물관에 스코트랜드의 시인 「로버트 번즈」로부터 노래 한 곡이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 곡조(曲調)에는 다음과 같은 편지가 동봉되어 있었다.
- 이 곡은 오랜 옛날의 고요(古謠)로서, 지금까지 인쇄된 일도 없고, 악보로 기록된 일도 없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노인이 부르는 걸 듣고 처음으로 곡조를 기록한 것이며, 이 곡은 어떤 의미의 가사에도 잘 맞는 멜로디입니다 -
그리하여 해여질 때 소리를 모아 부르는 이 스코트랜드의 민요는 전 세계에 널리 퍼졌는데, 번즈의 말대로 어떤 의미의 가사에도 잘 맞는 멜로디이며, 8․15 해방 초까지 우리의 애국가로 만주와 상해 등지의 독립투사들이 애창했던 것이다.
이 노래는 서양음악에 별로 소양이 없는 동양사람도 쉽게 불려질 수 있고, 또 친밀감을 느끼는 까닭은 이른바 동양음계인 5음계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향토를 사랑하는 스코트랜드인들은 런던에 살면서도 고향을 잊지 못했다. 그들은 여가만 있으면 고향사람을 찾아가서 스카치를 마시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지방색이 강한 그들에게 섣달 그믐날이면 제야(除夜)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이런 풍경은 20세기 초엽까지 런던에서 볼 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오랫동안 사귀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어디 간들 잊으리요 두터운 우리 정/ 다시 만날 그날 위해 축배를 올리자/
안종배<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4. 9. 15. ahnjbe@hanmail.net |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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