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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진의 역사산책(28회)
동부여 금와전설이 영취산 자장암에 숨어들었다.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9월 19일
|  | | | ⓒ GBN 경북방송 | | 오늘의 주제는? 오늘은 동부여의 왕 금와 왕 탄생전설과 통도사 자장암 금와보살을 연결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이능화의『조선불교통사』<변화금와(變化金蛙)>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축서산 통도사의 자장암 곁의 커다란 암벽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는데 그 속에 작은 개구리가 있다. 몸은 청색이고 입은 금색인데 어떤 때는 벌이되기도 하여 그 변화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중략)…세상에 전하기를 그 개구리는 자장율사의 신통으로 자라게 한 것이다.”
통도사 자장암을 가본신 분은 알겠지만 자장암은 뒤에 있는 커다란 바위신단을 의지하고 있다. 그곳을 바위 신단이라고 하는 것은 그곳에 불교 이전의 신앙유적인 용알터, 그러니까 커다란 바위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원래 자장스님이 들어오기 이전부터 고유 신앙의 공간이었다. 오래된 전통 사찰에 가보면 그 주변에 불교 이전의 신앙 공간이 있는 경우가 많다. 자장암도 그러한 곳 중 하나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고유 신앙을 누르고 뿌리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부여의 금와왕 전설? 학교 다닐 때 배우기는 했는데, 아련한데요? 어떤 내용이었죠? -예, 동부여의 왕 부루는 천제(天帝) 해모수의 아들이죠. 그의 아들 부루는 신하 아란불의 꿈에 나타난 천제의 권유로 동부여로 옮겨가 그곳의 왕이 되었다. 그러데 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산천에 제사를 지내 대를 이을 아들을 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왕이 탄 말이 곤연이란 연못에 이르자 커다란 돌을 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멈춰 섰다. 이를 본 왕은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옮기게 했다. 그랬더니 그곳에는 개구리처럼 생긴 황금빛 사내아이가 있는게 아닌가! 왕은 기뻐하며 하늘이 내려주신 아들이라 기뻐하며 말했다. “하늘이 내려주신 아들이로구나. 그 모습이 금개구리와 같으니 금와라 하면 어떻겠느냐.” 그리하여 그날부터 금와를 곁에 두고 길러 금와가 청년이 되자 해부루는 그를 태자로 삼아 자신의 뒤를 잇게 하였다. 부루가 죽자 금와가 왕이 되었고, 금와왕 이후 태자 대소가 나라를 이었다.
큰 바위, 즉 대석에서 태어난 금개리를 닮은 왕이 바로 금와왕이네요? -네, 아버지 없는 아들이 탄생했던 것이죠? 한 가지 질문을 해 볼까요? 고대사회의 영웅이나 나라를 세운 인물들 중에는 ‘아버지 없는 자식’인 경우가 많죠. 가령 동명, 박혁거세, 김알지, 신라 6촌의 조상 등. 왜 그런 신화가 만들어졌을까요? 차원이 다르지만 예수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죠.
글쎄요? -아버지 없는 자식, ①그들의 탄생을 신성화함으로써 권위를 높이려는 의도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②‘애비 없는 자식’이 신성한 인물이 되었다는 고사는 과거 모계사회 시대의 전통과 관련 있다. 모계사회에서는 아버지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한 여성이 여러 남성과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군혼잡거시대의 문화가 반영된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주나라 조상인 후직도 ‘애비없는 자식’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강원이 ‘들로 나가 거인이 남긴 자취를 보자,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밟았는데 몸이 임신한 사람같이 움직였고 시간이 지나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후직이다. 또한 중국 신화시대의 맨 앞에 등장하는 복희의 어머니 화서도 들에 나가 ‘신룡의 발자국’을 밟고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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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화상전-삼림하의 야합도
이러한 기록은 모계시대의 축제일에 야합을 해서 태어난 아이를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태평환우기』라는 책에는 “매월 중순이 되면 젊은 남녀는 생황을 불어 가면서 달빛 아래서 서로를 찾고, 상대방을 물색한 후에는 밤새도록 환락을 즐긴다. 이경이 넘어 서면서 서로를 따라가서 어머니와 함께 하다가 날이 밝으면 헤어진다.”라는 기록이 있다. 결혼 전에 야합(野合)을 하는 풍습을 기록한 것이다. 공자도 그의 아버지가 야합을 해서 얻은 아들이다.
20세기인 지금도 중국 남방의 소수민족 중에는 모계사회의 전통을 이어오는 곳이 있다. 그곳에는 아직도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성관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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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성 주작산에 있는 금개구리가 송화호를 내려다보고 있다
금아왕은 실제로 어머니가 없었을까요?
-이 금와 출생신화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해하면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도 있다. 금와 신화에 나오는 큰 돌은 여신전이고, 금와는 그 신전의 여사제가 낳은 아들일 수 있다. 물론 그 때 그 아버지는 부루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금와는 부루왕과 신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일 가능성이 있다.
금와왕 전설이 바위 신앙과 관련 있다는 말이군요? 네, 제가 부여가 있던 길림성을 방문했을 때 발견한 금와가 있어요. 뜻밖의 발견이었다. 길림시 남쪽에 있는 주작산을 등산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사진].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금개구리 형상을 한 바위가 주작산 8부능선에 있었다. 인공을 가한 흔적이 여실히 보인다. 이 금와바위느 이들 지역에서 금개구리에 대한 신앙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주작산은 길림성 남쪽에 있는 산으로, 길림의 사신산 중 남쪽 주작산이다. 동쪽은 용담산인데 현지에 가보면 아직도 고구려 산성이 남아 있다. 이 바위는 송화호를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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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금관 부속구.(호암미술관 소장)
하지만 만주에 있었던 동부여 왕 금와전설과 통도사 자장암 금와보살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지요?
여러 정황 증거로 보아 그렇게 보아도 무방하다고 본다. ①우선 통도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마을 이름으로 대석리와 소석리가 있는데, 이 지명은 바위신앙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마을 뒷산인 천성산에 바위신앙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②부여전란과 멸망 : 서기 285년에 부여가 모용선비족의 지도자인 모용외의 습격을 받아 패하여 부여왕 의려가 자살하고 그의 자제들이 옥저로 달아났는데, 이듬해인 서기 286년에 다시 녹산(부여의 왕성)으로 돌아간다. 이 사건에서 옥저로 달아났던, 혹은 494년 고구려에 흡수되면서, 혹은 346년 전연의 침공으로 멸망했다는 설이 있는데, 이들 전란 혹은 멸망했을 때 동으로 이동한 부여족이 동해안을 타고 김해 양산 지역까지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김해 지역에 이 시기에 갑자기 등장하는 북방계 유물은 이들의 남하와 관련 있다고 보는 학설이 있다. ③금개구리에 관한 고고학적 자료가 보인다. 동부여인들이 남하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유물이 또 하나 있다. 동부여 금와 왕 출생 이야기에 나오는 금개구리가 [사진]에도 보인다. 이 유물은 금으로 만든 개구리 장식인데 고령에 있는 가야시대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이 유물에 대해서 『고분미술』에서는 “금관 부속 장식으로 믿어지는 것으로…(중략)…전체적으로 금판 장식은 소머리 형으로 보이는데, 곡옥이 소뿔의 모습을 하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고 하였으나 사진의 제일 오른쪽의 것에서 보듯이 금개구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와 같은 정황만으로 금와 전설을 가진 부여인들이 남하했다고 할 수 있을 까요? 일부 고고학자나 역사학자 중에는 ‘김해 지역에 나타나는 유물 중에 부여계통의 문화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부여인의 남하를 기정 사실고 보기도 한다.’
저도 금와(金蛙)왕의 탄생이야기가 동부여인의 이동과 함께 남쪽으로 전달되어 경남 양산 통도사의 자장암에 금와보살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졌을 수 있다고 본다. 저는 이곳의 금와보살 전설은 자장율사가 부여계의 이동과 관련된 흔적을 불교와 습합시켜 남긴 것으로 이해한다. |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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