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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진의 역사산책(29회)

단군의 맏아들 부루가 업신(業神)이 된 이유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9월 26일
ⓒ GBN 경북방송

오늘의 주제는?
우리 민속에 업신(業神)이라는 것이 있었다. 업신의 업은 ‘구렁이’를 말한다. 조상들은 구렁이를 ‘업(業)’이라고 해서 곡식이나 재물을 관장하는 신으로 모셨다. 필자가 어릴 때만해도 집집마다 업신을 모셨다. 당시에는 대청마루 아래에 구렁이가 기어 다니기도 했고, 헛간에도 구렁이가 살았다. 어른들은 집에 사는 구렁이를 집을 지켜주는 동시에 재물을 가져다준다고 하면서 해치지 못하게 했다.

업신요? 자주 듣던 이야기는 아닌데요?
며칠 전에도 업신에 관한 생생한 일화를 들었다. 서울의 한 모임에 다녀왔는데, 그 모임에 참석한 분 중에 경주에 사시는 분이 있었다. 그분이 제 책을 읽은 소감을 이야기 하다가 구렁이 업신에 관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분의 집안은 할머니 때만 해도 천석군 집안이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집안이 망하기 시작할 때의 전조 현상, 그러니까 그 징조로 나타난 현상을 설명해 주셨다고 한다. 할머니에 따르면, ‘집안이 망하기 시작할 무렵의 어느 여름, 집안에 살던 구렁이 여러 마리가 갑자기 한꺼번에 마당으로 기어 나오더니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모두 산으로 달아나더라’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집안이 망하기 시작하여 큰 재산을 모두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렁이가 떠난 것이 집안이 망하는 전조현상이었던 것이다.


ⓒ GBN 경북방송
부루단지

네, 옛 어른들은 업신을 사실로 믿었던 모양이네요? 그렇다면 조상들은 왜 구렁이를 재물과 관련된 신으로 여겼을까요?
네, 단순히 생각하면 구렁이가 집과 들에서 곡식을 훔쳐가는 쥐를 잡아먹으니 사람에게 이롭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구렁이가 집을 지키고 재물을 가져다준다고 믿게 된 데는 좀 더 깊은 종교적 원리가 숨어 있다.

종교적인 원리가 숨어 있다고요?
네, 조상들은 업신을 신으로 모셨어요. 업신을 모시는 단지가 있었는데 그것을 ‘부루단지’라고 했다. 부루단지라고 들어 보셨나요. 19세기 문헌인 『무당내력』을 보면, ‘해마다 10월에 햇곡식을 담아 제사 드리던 돌 단지를 부루단지라고 불렀으며 단군의 아들 부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단군의 아들이 부루이고, 부루가 재물의 신이 되었고, 재물신의 상징동물이 구렁이였다는 것에서 단군시대 조상의 의식세계를 읽을 수 있겠네요?
네 맞아요. ‘부루’와 구렁이가 업신이 된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면 한민족의 연원이 오래고 먼 곳과 관련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속을 통해서 단군시대의 연 조상들의 뿌리를 알 수 있다는 말이네요?
그것은 단군의 아들 ‘부루 단군’의 이름을 어원학적으로 접근해 보면 단군시대를 연 조상, 특히 환웅할아버지가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한 번 들어볼까요?
‘부루’는 아리안족, 그러니까 천산 주변과 중앙아시아 혹은 남 시베리아에서 확산된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 중, ①‘부리Buri’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부리는 게르만족, 그러니까 현재의 독일인이나 네덜란드인, 바이킹 등과 관련 있는 말이다. 부리는 게르만족의 오딘 신화에 나오는 이름으로 ‘얼음 속의 대지에서 나온 최초의 사람 이름’이다. ② 인도-아리안 어의 어근에 ‘브르Brh-’가 있는데 이는 자라다·증가하다는 뜻이다. 우리말 ‘부풀다’를 연상하시면 된다. ‘꽃이 부풀어 오른다’고 했을 때 그것은 꽃이 자라나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③ 또 같은 인도-아리안 어의 어근에 ‘프리Phry-’가 있는데, 이 말의 뜻은 ‘최초의·처음의’ 이다.

인도-아리아인들의 그와 같은 말과 단군의 아들이자 2대 단군인 부루가 연결된다는 말인가요?
간단하게 말하면 부루는 곡령신(穀靈神)을 이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부리Buri’/브르Brh-/‘프리Phry-’는 인도-아리안들이 대지에서 처음으로 솟아나는 생명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말에는 첫 혹은 맏이라는 의미가 있다. 단군의 첫째 아들 이름이 부루인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렇다면 단군신화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기록된 환웅’은 천산 혹은 그 너머의 세계와 관련 있을 가능성이 높겠네요?
-네, 저는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일빛,2006)이란 책에서 환웅이 천산 너머에서 황하 중류 지역으로 이동했다가 북경 지역을 거쳐 동북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밝혔어요.

그들이 천산 주변 혹은 그 너머에 살 때 인도-아리안 언어를 쓰는 종족과 어떤 형태로든 관련을 맺고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로서는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지만 환웅세력은 인도-아리안의 일부 언어를 사용했던 것 같다.

그런 예를 찾아볼 수 있나요?
네, 브라흐마와 바람 앞에서 설명했던, 인도-아리안 어의 어근에 브르Brh-(자라다, 증가하다)와 우리말 ‘부풀다’가 같은 어원일 가능성이 있다.

언어학자 이병선은 『삼국지』변진전이나 『후한서』진한조에 보이는 거수(渠帥)는 산스크리트어 käsi(太陽)를 음사한 것이라고 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지적이다. 당시의 수장(首長)이었던 거수는 ‘태양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진한 사로국의 시조로 출발해서 신라의 시조된 인물이 누구죠? 박혁-거세 아닙니까?
그 박혁거세 탄강신화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알천에 6부촌장이 모여 우리도 왕을 옹립하자고 결의하고 남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양산 기슭의 나정 우물가에 번개와 같은 이상한 기운이 드리워지고, 흰말이 엎드려 절하고 있었다. 찾아가서 살펴보았더니 자줏빛 알이 있었고 말은 사람들을 보자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그 알을 깨뜨리자 사내아이가 나오매, 경이롭게 여기면서 동천 샘에 목욕시키니 온몸에서 빛살을 뿜는 것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박혁거세왕이라 이름 짓고 위호는 거슬한이라고 하였다. ......61세 붕어했다....나라 사람들이 합쳐서 묻고자 하였으나 큰 뱀이 나타나 사람들을 쫓으며 방해하였다. 따라서 5체(五體)를 다섯 능에 묻고 사릉이라고 하였다.


ⓒ GBN 경북방송
공공족 족휘

이때 자줏빛 알은 태양을 상징한다. 박혁거세는 태양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왕호에 들어 있는 ‘-거세’ 또한 태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박혁거세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과 뱀은 바로 중국 신화시대의 주인공 중 한 세력이었단 공공족이 가지고 있던 우주생명관의 핵심이다[그림을 보면 공자형 신목 양쪽에 태양과 구렁이가 표현되어 있다]. 박혁거세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과 구렁이, 이는 자장스님이 문수보살에게서 얻은 정보인 ‘진한인은 동이공공족의 후예’라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이제 어느 정도 정보가 쌓였으니, 부루가 재물을 관장하는 신이 되고 그 상징동물이 구렁이인 것을 밝혀볼까요?

태양과 뱀은 공공족의 족휘에도 나타난다. 공공족의 족휘를 보면 그들이 뱀으로 상징되는 생명력을 숭배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뱀이 물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뱀은 물의 정(精)인 동시에 빛의 정(精)이다. 물과 빛은 우주에 충만한 음양에너지의 정수이다. 이 두 기운이 작용할 때 생명이 탄생한다. 복희 ․ 여왜도에서 해와 달을 함께 그리는 것도 그것이 불과 물을 대표하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공공족은 뱀을 숭배했지만 단순히 뱀만을 숭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태양의 정기(精氣) ․ 달의 정기를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공공족의 의식이 반영되어 구렁이가 부루단지와 관련된 업신이 되었다. 그 전통이 진한 사로국을 세운 박혁거세에게도 전달되고 있었던 것이다.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0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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