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배교수 음악산책(203)
가곡(歌曲)의 진실(眞實)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9월 29일
|  | | | ⓒ GBN 경북방송 | | 밥은 여럿이 모여서 먹어야 맛이 더 하고, 일은 여럿이 어울려야 피로가 덜하는 법이다. 그 마당에 노래가 곁들이면 피로는 한결 잊어지게 된다.
한 사람이 노래를 메기면 여럿이 엮음 소리로 받아넘기는 형식이 민요(民謠)의 원시형(原始型)이고, 이른바 2부형식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다. 민요가 아무리 발달하고 세련되어 혼자만이 부르는 민요가 생기고, 민요를 전문으로 부르는 직업가수가 생긴 뒤에도 그 원칙은 변함이 없었다. 즉 그들은 자기의 심정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의 대표선수로 노래하는 것이다. 민요의 한계(限界)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람은 개인생활이 있다. 여럿이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여럿이 함께 할 수가 없다. 고민도 여럿이 나누어 할 수가 없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즐거움이고, 나 혼자만의 고독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즐거움이나 고독을 누구 나가 시(詩)로 옮기거나 노래로 엮어서 부를 수 있는 재주는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천재가 필요하고 전문가가 필요하다.
중세기(中世紀)에는 트로바토레니 민네징거리고 하는 작사(作詞)와 작곡과 가수를 겸하는 특수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민요가 아닌 가곡(歌曲)의 씨를 뿌렸다.
그러나 중세의 봉건제도와 종교조직의 억압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킨 민중들이 급기야는 억압에 굳어졌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해방인 동시에 자아(自我)의 발견이었다. 말문이 터진 사람처럼 그들은 자신(自信)을 가지고 스스로의 심정이나 주장을 내세우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세상은 온통 시(詩)와 노래로 요란했다.
수신인(受信人) 없는 편지처럼 씌어지는 시(詩), 친구나 연인(戀人)을 향하여 호소(呼訴)하듯이 불리어지는 노래, 피부에 스며드는 감명(感銘)을 수신에게 줄 수 있는 연주가의 출연.
시인과 작곡가와 연주자의 삼위일체(三位一體)는 차분히 펼쳐지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가곡이 출연하였다.
그러기에 그것은 호화로운 제왕(帝王)이 수신인이 될 수도 없고, 기아(飢餓)에 허덕이는 대중이 수신인이 될 수도 없다.
어쩌면 가곡은 운명적으로 소시민(小市民)의 것인지도 모른다. 미묘한 마음의 그늘을 되씹는 것은 제왕이 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기아에 굳어버린 대중의 피부에 정교한 음의 뉘앙스가 스며들 여지가 없다.
“가난한자는 복이 있다”고 예수 님은 말씀하셨다. 가난한 마음을 채우려고 갈구(渴求)하는 사람만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비유일 것이다. 오늘날 가난한 마음을 채울 사람은 누구일까? 그것은 부드러운 피부를 가졌으면서도 인간소외(人間疎外)의 기계문명 속에서 고독을 양식으로 사는 사람들, 권력과 조직의 권외(圈外)에서 항상 마음의 가난을 느끼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 가곡(歌曲)은 이러한 소시민의 애환을 구김 없이 노래하고 있다.
안종배<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4. 9. 29. ahnjbe@hanmail.net |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  입력 : 2014년 0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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