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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창제와 신미대사

정 호 완(대구대 명예교수)
진용숙 기자 / ysjin130@korea.com입력 : 2014년 10월 13일
↑↑ 정 호 완(대구대 명예교수)
ⓒ GBN 경북방송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온 세상에 반포된 지 올해로 568돌이 된다.

국보 70호이며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 세종임금 상을 제정하여 문맹자 퇴치에 공로가 있는 이들에게 큰 상을 주고 있다.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최근 들어 <훈민정음>의 기원이 범어임을 깊이 있게 살피려는 담론들이 있어 우리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세종 20년(1438) 신미대사가 지은 것으로 보이는 <원각선종석보(圓覺禪宗釋譜)> 1권이 세상에 알려지면서부터 부쩍 <훈민정음>의 범어기원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원각선종석보>는 석가모니의 생애를 다룬 바, 전 5권으로 <훈민정음>이 완성된 세종 25년(1443)보다 5년이나 앞선다. 이 간본은 해인사에 주석하셨던 일타(日陀) 선사가 중국에서 발견, 손에 넣어 이를 여증동 교수(경상대)에게 알려 자료의 검증을 의뢰하였다.

이에 대하여 세종의 따님이었던 정의공주와 그의 사위였던 안맹담이 주축에 서서 <원각선종석보>를 간행하였음을 밝힌 논의도 있다(노태조(2003) <원각선종석보>의 찬성 경위).

그러나 신미대사가 <원각선종석보>를 지었음을 방증하는 자료가 있다.

이르자면, <복천암사적기>와 신미대사의 사적을 실은 <선교종도총섭수암당신미혜각존자실기>와 신미대사의 가보인 <영산김씨세보>를 보면 신미대사가 집현전의 학사, 혹은 정음청의 도학사로 나온다.

<원각선종석보>의 내용으로 보아 매장마다 40포인트 정도의 큰 글씨로 범자인 옴마니반메훔의 “옴(그림)”이 들어 가 있다.

그뿐이 아니다. <훈민정음>도 전체가 108자이며 전책의 장수가 33자이며 글자도 28자인 바, 이는 모두가 불교적 상징수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세종에서 세조에 이르는 시기의 간행물 가운데 약 90%가 불교적인 자료의 언해였음을 미루어 보면, 외견상으로 배불정책을 썼지만 왕실의 종교적인 정서는 불교신앙에 반한 것이었다.

특히 문종과 수양, 안평대군과는 사제관계로 기록하고 있다. 한마디로 <원각선종석보>의 표기와 <훈민정음>과 <능엄경언해>의 표기체계가 일관한다는 것이다.

세종이 신미대사에게 내린 사호(賜號) “선교종도총섭밀전정법비지쌍운우국이세원융무애혜각존자(禪敎宗都摠攝悲智雙運祐國利世圓融無碍慧覺尊者)”를 두고 온갖 상소가 난무하였다. 사헌부 장령이던 하위지며 박팽년, 그리고 홍일동 같은 집현전 학자들이 앞을 다투어 반대하였다.

세종의 신병이 있어 문종에게 유교로 내린 바, 문종 원년 7월 한 달 동안 약 20여회 이상의 반대 상소가 비발 치듯 하였다.

이는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 최만리가 앞장서 반대하던 때보다도 더욱 심한 것이었다.

특히 우국이세(祐國利世)와 존자(尊者)가 그 과녁이었으니 목숨을 내건 반대였다.
마침내 절충하여 우국이세를 도생이물(度生利物)로, 존자를 종사(宗師)로 바꾸어 일단락되었다.

미루어 보건대,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 범어를 잘 아는 신미의 결정적인 도움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어서 <훈민정음> 창제를 주도한 대사에게 국사에 값하는 존자라는 사호를 내렸고 대사가 머물던 복천암에 아미타삼조불상을 만들어 선물로 내릴 정도였다.

<훈민정음>과 범자의 음운과 글자의 운용을 비교분석해 본 결과는 매우 긍정적인 유사성을 갖고 있다(김봉태(2002) 훈민정음의 음운체계와 글자 모양), <훈민정음> 초성의 경우, 아설순치후 5음체계와 중성 기본자인 /ㆍ ㅡ ㅣ/의 천지인 체계가 범어의 음운체계와 다르지 않음을 논증하였다.

글자의 운용에서 합용병서(合用竝書) 각자병서(各字竝書), 그리고 가획(加劃)의 원리라든가 연서(連書)와 부서(附書) 같은 글자의 운용이 거의 범어와 흡사하다. 문법에서도 교착어미의 발달, 어순도 거의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범자(梵字)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자료는 <삼국유사>이며, <훈민정음>이 반포되는 어름에 지은 성현의 <용재총화>, 그 뒤로 이수광의 <지봉유설>, 황윤석의 <운학본원>,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 언더우드의 <와서 우리를 도우라>, 김봉태의 <훈민정음의 음운체계와 글자모양> 등이 줄기차게 <훈민정음>의 범어기원을 들고 있다.

문화적으로 보아도 범어를 쓰던 인도 북부 히말라야 지역의 사람들과 상통함을 기초어휘라든가, 민속이나 인류형질학적인 관점에서도 우연이 아닌 필연에 가까운 개연성을 상정할 수 있다. 어휘의 경우, 아리랑에서 범어로 ‘아리(ARI)-’는 군주 혹은 애인을 이르고 ‘-랑(lang)'은 떠났다는 뜻이니 이는 “임(군주)께서 가버렸다’는 뜻이다.

한국의 한(韓)은 <동국정운>에서 ‘(khan)’이니 이는 징기스칸의 ‘-칸(khan)’임을 알 수 있다. 사투리는 어떤가. 지도자이며 왕족을 뜻하던 크샤트리아(ksiatria)>샤투리아>사투리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한국은 왕국이묘, 사투리란 왕족들이 쓰던 말이다. 동이족의 ‘동이(東夷)’도 범어로 보면 ‘뛰어난 겨레’란 말이 된다. 영어에서도 머리의 케이(k)가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knife, knuckle, know 등). 지금도 인도의 구자라트 주에는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1천 명 정도가 살고 있다.

문화적 양상으로 볼 때, 솟대신앙, 탄생설화, 탈춤, 지석묘, 김치 젓갈, 자치기 등이 범어를 쓰던 민족들과 거의 같다는 것이다. 인류형질학적으로 보아도 중국의 북경 지역, 인도 서남부, 동남아, 일본 일부와 한국의 남자 와이 염색체 특히 엠(M)-175와 여성의 미토콘드리아 염색체가 거의 같음으로 조사보고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동아리 하건대, <훈민정음> 창제를 신미대사가 대자암 등에서 주도하였을 개연성이 높다.

범어의 병서와 같은 초성의 결합이나 가획의 원리로서 배우기 쉬운 소리글자를 만들고 여기에 성리학적인 성운학(聲韻學)의 질서를 부여한 것이다. <훈민정음>의 기원뿐만 아니라 우리말의 계통도 알타이어와 함께 범어를 복수기원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진용숙 기자 / ysjin130@korea.com입력 : 2014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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