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군, 여중군자 장계향 표준영정봉안식 및 음식디미방 문화관광자원화사업 기공식 개최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 입력 : 2014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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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사랑으로 세상을 치유하고자 했던 장계향의 사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경상북도(도지사 김관용)와 영양군(군수 권영택)의 노력으로 “여중군자 장계향 표준영정 봉안고유제 및 음식디미방 문화관광자원화사업 기공식”을 2014년 10월 19일(일요일)15:00시에 재령이씨의 종택이 있는 석보면 두들마을에서 성대하게 개최하였다.
오늘 진행된 고유제는 국가적․ 민족적으로 어려운 시대에 지혜롭게 살다간 위대한 어머니 여중군자 장계향이 한 가정의 평범한 주부이면서, 그 평범함으로 당시 사회공동체의 기둥이 되는 명문가문으로 일으켜 세우고, 열 자녀까지 훌륭하게 키울 수 있었던 중심사상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매우 뜻 깊은 봉안고유제였다.
이번 행사에는 김관용 경상북도지사 및 권영택 영양군수를 비롯한 재령이씨 문중과 각 시․군 장계향선양회, 그리고 경북도내 유관기관단체장과 주민등 600여명이 여중군자 장계향 표준영정 봉안고유제를 기념하고 음식디미방 문화관광자원화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기원하기 위해 참석하였다.
여중군자 장계향 표준영정은 경북도에서 지난 2010년부터 2년간에 걸친 고증과 수정작업 끝에 문화부 표준영정심의위원회에서 정부표준영정으로 지정을 받았다(국가표준영정 제91호 2013. 3. 7). 이에 따라 이번에 여중군자 장계향 표준영정 봉안고유제를 거행하게 되었다.
음식디미방 문화관광자원화사업은 지난 2011년 3대문화권 문화․생태관광기반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으며 2009년 부지매입을 시작하여 현재는 33,719㎡의 부지위에 연면적 3,927㎡으로 국비 175억원과 지방비등이 93억원, 총 268억원으로 2017년 준공목표로 추진할 계획이다.
주요사업 내용으로는 음식디미방 교육동을 비롯한 요리실습동 그리고 시식체험동이 들어설 예정인 전통음식체험공간과, 전통한옥 체험동이 있는 전통휴양공간으로 배치할 예정이며, 추모공간으로 기 완공된 장계향의 영당(존안각)을 비롯한 관리사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특히 이 자리에서 권영택 영양군수는 “음식디미방을 통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음식디미방의 산업화등을 지속적으로 노력할 방침이며 대학교 학과 개설은 물론 대학원의 설치에도 최선을 다하는 등 세계음식의 중심에 우리지역 음식디미방의 진정한 맛을 세상에 알리고 다양한 체험을 위하여 다각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그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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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향(張桂香 1598년~1680년) 1598년 11월 18일 임진왜란이 끝난 6일뒤 안동시 금계리에서 태어난 장계향(張桂香)은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행이 뛰어났다고 한다. 무남독녀로서 퇴계이황의 학통을 이으며, 학봉 김성일 선생의 적통을 이으신 부친 경당 장흥효를 모시고 살았으며 어려서 부터도 총명함이 보통사람을 넘어서고 효도와 우애가 출중하였으며 19세에 당시 부친의 제자인 석계 이시명(石溪 李時明)과 혼인하여 영해 인량리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였고, 이시명의 첫째부인의 1남 1녀를 포함하여 6남 2녀의 자녀를 낳아 잘 길렀다. 특히 셋째 갈암 이현일(葛庵 李玄逸)이 대학자이자 국가적 지도자에게만 부여하는 산림(山林)으로 불림을 받아 정부인(貞夫人)의 품계가 내려졌다. 영해 인량리의 충효당에서 당파싸움과 전쟁으로 인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열과성을 쏟았으며, 어려운 시간이 계속되자 도토리 열매로 죽을 쑤어 끼니를 떼우게 한 것은 현대를 사는 오늘날의 지식인들이 도덕적.사회적 책임의식을 배울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특히 말년(73세 1670년)에 저술을 마친 『음식디미방』은 한글로 된 최초의 조리서로 한글에 깃든 절제된 아름다움과 도덕적 용기가 내포된 조선문화의 정체성이 음식으로 만들어져, 정치의 이상세계와 음식이 지닌 인류학적 의미가 절묘하게 조화될 수 있었다
강인함과 온유함을 겸비한 생활인으로의 면모와 자녀 교육에 노력함으로써 두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등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서 ‘이것은 분명히 있다.’는 새로운 창조적 역량을 보여줌으로써 다음시대 사람들로부터 찬탄을 받기에 충분하신 분이었다. 조선의 큰 어머니로 신사임당에 비견될 정도의 위대한 여성상이자 어머니상으로 후세에 널리 알려야 할 분임에는 틀림없다. |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  입력 : 2014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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