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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진의 역사산책(37회)

경주의 진산인 내림산은 왜 낭산(狼山)으로 불렸을까?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12월 26일
ⓒ GBN 경북방송
오늘의 주제는?
네, 오늘은 황남대총에서 나온 늑대 관식과 낭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경주 분지의 중앙에 있는 낭산으로 가 볼까요? 낭산은 삼국시대 신라에서 가장 신성한 3산 중 하나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산 이지요. 낭산하면 생각나는 것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선 선덕여왕을 떠올리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경주국립박물관을 지나 불국사역으로 가다 보면 왼편으로 나지막한 산이 하나 있어요. 낭산이죠. 낭산의 정상 바로 아래에 선덕여왕릉이 있어요. 선덕여왕이 그 산을 자신의 무덤 터로 생각한 배경이 『삼국유사』 선덕여왕조에 나오죠. 흔히 ‘지기삼사’라고 하죠. 여왕의 예지력으로 미리 안 세 가지 일이란 뜻이죠.

‘향기 없는 모란’ 이야기, 영묘사 옥문지 개구리울음(성난병사)과 여근곡에 숨은 백제병사‘ 이야기, ’여왕이 자신의 죽을 날을 예언‘가 그것이다. 낭산과 관련된 세 번째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여왕은 신하들에게 "내가 아무해 아무달 아무날에 죽을 것이니 도리천에 장사하라."고 이른다.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딘지 몰라 물으니 낭산의 남쪽이라고 했다. 여왕의 말처럼 그달 그날에 세상을 떠나자 신하들은 낭산의 남쪽 양지쪽에 장례했다. 그 후 10여년 뒤에 문무왕이 선덕여왕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웠다. 불경에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했으니, 선덕여왕은 자신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라는 절이 창건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선덕여왕이 묻힌 낭산이 도리천이라면 자신이 도리천으로 올라간 셈이네요?
-네 맞아요. 그 산은 신라에 불교가 들어와 공인되기 전부터 성스러운 신이었어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삼국사기』에 전하는 김유신 관련 이야기에서 낭산의 본래 이름을 알 수 있어요. 그 이름에 그 산의 성격이 잘 나타나 있어요. 『삼국사기』 제사조에 보면, ‘낭산은 신라인들이 가장 중시하던 3 산 중의 하나였어요. 김유신이 국선이 되었을 때, 고구려에서 파견된 백석이란 사람이 김유신을 꾀어 고구려로 데려가려는 음모를 꾸몄다. 김유신이 백석을 믿고 따라가는데, 낭자 3 명이 나타나 신으로 변하여 유신에게 은밀히 말하기를 “우리들은 내림(奈林), 골화, 혈례 등 세 곳의 호국신입니다”하면서 백석의 음모를 김유신에게 알려 주었어요. 그 내림산이 바로 현재의 낭산인데, 삼국사기에는 이 산을 내력(奈歷)으로 부르고 있어요.

내림, 나림산이란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내림, 나림산은 우리말 ‘내리다’와 관련 있지요. 쉽게 말하면 ‘무당에게 신이 내리다.’할 때의 내리다와 같은 의미를 가진 이름이었어요. 그러니까 내림산은 천상의 신들이 하강하여 노닐 던 산이었던 셈이지요. 신들이 노니는 이 산 아래의 숲을 신유림(神遊林)으로 불렀어요. 그 내력 또한 『삼국사기』 실성이사금(5세기 초)조에 나오죠.
“12년 8월에 낭산에서 구름이 떠올라, 바라보니 마치 누각과 같고 향기가 욱연(郁然)히 퍼지며 오랫동안 없어지지 아니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선령(仙靈)이 하늘에서 내려와 놂이니 아마 이 땅이 복지(福地)일 것이라 하여 이로부터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였다.”

내림산을 신성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셈이네요.
네, 신라 국가 제사 중 대사(大祀)를 모시는 산에 속했으니까요. 3산 중에서도 내림산은 경주 왕경의 중심에 있던 산으로 가장 중요한 산이었던 셈이죠. 낭산은 불교로 말하자면 경주분지의 수미산이었던 셈이지요. 때문에 선덕여왕은 이 산의 정상에 도리천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곳에 묻힌다는 것은 도리천으로 올라가는 것이기도 하죠, 그것은 신령이 내려온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기도 하지요. 선덕여왕이 수미산 정상에 무덤을 만든 것은 고구려 장군총에 묻힌 왕이 7층피라미드, 즉 7층 수미산에 묻힌 것과 같아요. 모두 영혼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반영되었어요.

그렇다면 왜 지금은 그 산을 낭산(狼山)이라고 부를까요?
그렇죠. 이상하죠. 신들이 노닐던 내림산을 왜 낭산으로 불렀을까요. 낭산이라는 것은 ‘늑대산’이란 의미인데요. 신라인들이 신들이 내려오고 올라가는 통로로 생각했던 내림산을 낭산으로 부른 것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비밀이 있지 않았을까요.

ⓒ GBN 경북방송

1 황남 대총 북분 은제관식

어떤 비밀이 있었을까요?
신라 김씨왕족들의 의식에 늑대가 신성한 동물로 자리 잡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것은 황남대총에 묻힌 늑대관식으로 추정해 볼 수 있지요(사진1).

우리는 흔히 신라왕족들이 머리에 새 날개 모양의 관식을 쓰고 묻혔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출토 유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늑대관식이 여러 점 있어요. 사진에 보이는 관식이 새로 보입니까, 아니면 늑대로 보입니까?

이들 늑대 관식은 고분유물 소개에 잘 등장하지 않아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이 유물을 왜 소개하고 설명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이 유물의 특이한 모습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식으로는 늑대 얼굴을 한 이 유물이 황남대총 등 고총고분에 묻힌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요.

ⓒ GBN 경북방송

2 창녕 교동,6세기

이 유물은 경주의 진산인 낭산(狼山)과 함께 신라 고분문화의 주인공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어요.

늑대? 늑대와 관련된 문화가 어떻게 신라로 들어왔을까요?
늑대를 조상으로 생각하면서 신성시했던 사람들은 유라시아 스템초원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죠. 그들의 문화가 신라까지 유입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최근 들어 신라 김씨 왕족의 조상이 흉노족이라는 설이 힘을 얻고 있잖아요. 문무왕비문에 조상으로 기록된 김일제는 흉노의 후예지요. 김일제계통이 신라왕족이라는 기록은 여러 곳에 보여요. 최근에는 당나라에가 살던 신라여인의 비문에서도 확인되었죠. 물론 김일제가 신라왕실의 직접적인 조상인지는 앞으로 연구가 더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신라왕실이 흉노 혹은 천산지역의 주민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렇다면, 늑대를 조상 혹은 저승길의 안내자로 생각한 문화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볼까요?
네 우선 늑대이야기 하면 가정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로 로마의 창시자인 로물루스 이야기가 떠오를 것입니다. 로마인들은 트로이전쟁 때 패한 트로이 귀족들의 후손들이예요. 전설상의 최초의 왕은 로물루스인데 그 왕의 출생과 성장과정에 암늑대가 등장하죠. 로물루스는 전쟁의 신 마르스가 처녀를 강제로 범해서 임신하여 태어난 쌍둥이 중 한 사람이지요. 사생아로 태어난 쌍둥이들은 홍수로 불어난 테베레 강에 버려져요. 그러나 그 배는 물결에 의해 강둑으로 밀려 올라갔고, 암늑대에 의해 구조되어 늑대 젖을 먹고 자랐죠. 왕가의 양치기에 의해 발견되어 양자가 되었다가 성장하여 로마를 창설했어요. 그런 이유로 암늑대는 기원전 510년 로마 공화국 성립 이래로 로마인의 상징이 되었다.

ⓒ GBN 경북방송

투르크왕의 모습을 그림 삽화

투르크인의 조상도 늑대라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네 투르크인의 조상도 늑대와 관련 있어요. 그들은 아예 늑대의 후손이기도 해요. 전하는 전설에 의하면 그들의 조상은 이웃한 종족의 공격으로 전멸했고 어린 아이 하나만 남았는데 손발을 다 자른 체 초원에 버려졌다고 해요. 버려진 아이를 암늑대가 기르고 있는데, 그 아이마져 죽이려 하자 늑대는 아이를 데리고 동쪽으로 이동하여 고창국, 그러니까 천산 동쪽에 있는 굴로 도망쳤고, 굴속에서 자란 어린아이와 암늑대 사이에 아이 열명이 태어났고, 그 중 아사나씨가 가장 현명하여 왕이 되었다고 해요. 이런 연유로 아사나 씨는 늑대 머리를 대문에 걸어 놓았는데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네요.

『신당서』 등 역사기록에도 투르크인들이 늑대를 섬기는 이야기가 전해요. 왕이나 지도자가 머무는 천막의 깃발에는 어김없이 ‘황금으로 된 암컷 머리모양의 장식’을 했어요. 또한 투르크왕은 황금 암늑대의 자손으로 수컷 늑대들의 호위를 받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왕을 호위하는 호위무사는 늑대들이었던 셈입니다.

늑대후손이라는 문화가 발생한 지역은 초원지대이겠네요?
네 자신들이 늑대의 후예라는 생각은 남러시아 초원에서 발생한 것 같아요? 이 문화가 서쪽으로도 동쪽으로도 전파되었고요. 천산주변에서 활동하던 오손 왕도 어린 시절 늑대가 젖을 먹여 키웠다고 하고, 몽골인들도 자신들의 조상이 늑대라고 해요. 징기스칸의 조상은 푸른 이리와 암사슴이예요.

왜 늑대를 조상으로 생각했을까요?
우선 늑대의 습성과 관련 있어요. 늑대는 엄격한 서열사회예요. 초원에서 사냥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죠. 또한 어미 늑대는 먹이를 먹을 후 그것을 토해서 새끼들을 길러요. 늑대의 이런 습성에서 강한 모성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신라인들이 늑대관식을 사용하고 신성한 산을 늑대산(낭산)이라고 부른 이유를 한 번 들어볼까요.
늑대가 저승길의 안내자라는 생각은 기원전 3000년 전 상․하 이집트를 통일한 나르메르 왕의 기념물인 나르메르 팔레트에서도 볼 수 있어요. 나르메르 팔레트에서 늑대는 선도자 역할을 한다. 이는 돌궐인(투르크인)이 왕을 호위하는 사람을 늑대라고 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사진). 고대 이집트에서 늑대는 왕이 죽어서 저승길을 갈 때 길 안내자 겸 왕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생각은 남러시아에서 출발한 투르크[돌궐]인들의 조상들이 가지고 있었던 관념과 동일하다. 그들은 남러시아에서 동쪽으로 이주하여 알타이의 파지리크 문화를 일구었다.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인 흉노나 돌궐은 다 같이 자신들이 늑대의 자손이라 믿었다. 그리고 알타이 지역의 고대인들은 지하세계의 상징동물로 물고기․뱀․늑대를 숭배했다. 이러한 늑대에 대한 관념이 신라로도 유입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 간접적인 근거를 들면, ①알타이지역의 파지리크문화와 신라문화가 친연성이 있으며, ②후기 신라의 지배층 언어에 투르크어가 스며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③그리고 문무왕비문에 자신들의 조상이 흉노 우현왕의 아들인 김일제라고 기록되어 있고, ④경주 분지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경주의 진산(鎭山) 이름이 낭산(狼山) 즉 늑대산인 것도 관련이 있다. ⑤또한 천전리 암각화에는 고대 알타이 지역에서 지하세계의 동물이라고 한 물고기 ․ 뱀 ․ 늑대가 모두 그려져 있다.

이러한 정황들을 모두 고려하고 보면,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늑대 모습을 한 은제 관식은 흉노나 투르크인의 문화가 유입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잠시나마 신라의 왕족들이 늑대를 저승길의 안내자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말한다. 신라의 왕족들이 늑대관식을 머리에 쓰고 저승에 갔다는 것은 그들의 뿌리와 관련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즉 그들이 어떤 형태로든 북방문화 특히 천산이나 알타이 지역 사람들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4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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