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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권 시인"도축사 수첩"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5년 02월 06일
↑↑ 박형권 시인
ⓒ GBN 경북방송













도축사 수첩/  박형권
  
트럭에 실릴 때 한 번 우시고
도축장에 도착했을 때 한 번 우시고
보정틀에 섰을 때 마지막으로 우셨다
그는 모든 소와 다른 점이 없었다
그가 보정틀 안에서 모로 누웠을 때
나는 안면의 중앙을 전용 총으로 타격했다
나는 모든 인간과 다른 점이 없었다 다만
뻗어버린 그가 예기치 못한 눈물을 주르르 흘렸을 때
나는 그가 그분인 걸 칼에 베인 듯 알았다
무논의 써레질이 있게 하시고
쇠죽 끓이는 가마솥이 있게 하시고
오뉴월 땡볕 아래에서의 일을 있게 하신
그분인 걸 알았다
그분이 쏟아놓으신 눈물을 어떤 그릇에 담아야 할지 망연하였다
아주 작은 우주 하나가 소멸하셨다
저 먼 곳 더 크신 우주의 누군가가 대신 흘리는 눈물이었다
인간 세상에 내려 전생을 반추할 줄 모르는
나의 식욕을 위해
우주 밖의 더 크신 공백이 안타깝게 부어주는 숭늉 한 그릇이었다
애초에 소처럼 반추위를 가지지 못한 나는
위장을 더부룩하게 채우면 그만이고
이웃과 우주와 우주의 심오한 계획을 위해
한 번도 되새김질하지 않았다
그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은
흘려도흘려도 담을 줄 모르는 나에게
오래전부터 그분이 보낸 서신이었다
이렇게 늦게 오시다니, 아니었다
다만 좀처럼 확인하지 않는 내 우편함에 이미 도착해 있었을 뿐이었다
이 행성의 이름으로 뜨겁게 견뎌낸 그분의 여름을
나는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분은 단지 고기덩이셨지만
우물우물 여물 씹는 소리로 온 세상에 평화를 전파하셨다


작가프로필

박형권 시인
1961년 부산 출생
200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우두커니」


시감상

몇 년 전에 당숙이 하신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산비알에 가파르게 붙어있는 밭은 트랙터가 올라가서 갈 수가 없는데 소는 가능하다고. 무논이며 비알 밭을 이십년은 더 갈았다고, 무릎이 꺾어져서 수의사를 불러 봐 달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우시장 차를 부르더래요, 우시장 차에 오르는 그 소의 눈을 안 보려 했는데 고만 마주치고 말았데요, 그렁그렁 축축하게 젖은 눈으로 쳐다보는 그 눈빛을 보니 목이 콱 메어서 차마 따라 갈 수가 없더랍니다.
그렇게 보내고 빈 말뚝을 보며 소주를 병째 나발을 불고 있는데 통장에 칠십만원 넣었다고 연락이 오더랍니다. 그것도 많이 쳐 준 거라고, 다른 소는 삼, 사백만원 하는데 말입니다. 일하고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몇 천만 원도 부족한데 하시던......

도축장에 간 그 소가 도축사의 전용총의 타격에 의해 우주 밖으로 하나의 소우주가 소멸했지만 그 소는 눈물로 되새김이 되었네요. 그 눈물이 함께한 농부의 생이 하나가 되어 흐르는데 그 눈물을 어느 그릇이 다 담을 수 있을까요.
그 눈물은 흘려도 흘려도 담을 줄 모르는 나에게 오래전에 보내셔서 내 우편함에 도착해 있었던 서신이었던 것이다. 나만 이해할 수 없없을 뿐이지.
그 분은 이제 해체 되는 고기덩이에 불과하지만

박형권 시인은 농촌, 어촌, 도시의 변두리로 옮겨감에 따라 가족, 이웃, 풍경, 자연 이야기를 시의 배경으로 담아 시의 주제도 그 범위를 넓혀가며 삶을 그려내고 있다. <김광희>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5년 0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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