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의 빛과 그림자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입력 : 2010년 03월 04일
인터넷 시대의 빛과 그림자
정민호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현재와 같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활용되었더라면 손자병법에 기록된 전술과 그 병법들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8년 전 IT업계의 전문인으로서 사업을 펼치던 시절, 정보통신부 간부와 광화문 어느 식당에서 10만 양병설에 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공격적인 IT인프라 정보통신 강국인 우리가 미리 준비해야 할 과제는 해킹에 대비한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과 해킹대회를 개최해 우수한 해커들을 선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던 기억이 난다.
현재 우리는 네이버(naver), 다음(daum) 등과 같은 포탈을 이용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메일을 보내고 각종 정보를 검색한다. 하지만 최근들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외국계 기업들은 앞다투어 텍스트 기반에서 위치 공간의 기반 서비스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들이 위치 공간서비스를 하려는 의도가 무엇일까?
인터넷 공간이 기업간의 경쟁이 아닌, 국가 간의 경쟁 구도로 바뀌고 있음이다. 한 예로 미국의 포탈인 구글에 가입을 하고 무료로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약관을 읽어보면 깜짝 놀란다. 가입에 동의하는 즉시 가입자의 정보를 구글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가 아닌 제 3국으로 정보를 반출해 그들이 활용해도 된다는 동의서이다.
태평양 멀리, 지구의 반대 편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서울 도곡동 MR, Kim이 현대자동차를 타고 다니더니 포드자동차로 바꿨군. 오늘까지 몇 만 명이 우리 상품으로 바꾸었지? 더 밀어 붙여야겠어….” 등은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라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이 연결되는 유비쿼터스 시대를 얘기했지만 이젠 정보를 가진 자들에 의해 개인의 비밀마저도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웹메일 채널 활용을 통해 개인의 가치관이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까지 간섭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후일 RFID라고 하는 인식태그로 전환 될 경우 한 국가의 소비성향까지 파악하게 돼 글로벌 커머스로 활용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각 분야의 리더가 검색한 것을 역으로 추적해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이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만큼 큰 비중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사실 그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인터넷의 종주국은 미국이다. 미,소 냉전시대에 미국의 대학이나 연구소, 국무성 같은 곳에서는 핵폭탄과 같은 위험 때문에 정보를 분산했었고, 상호 학술 교류를 목적으로 사용하던 것을 1993년 12월 대통령 선거 때 클린턴과 고어가 인터넷을 상용화하겠다는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클린턴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영어로 출발한 인터넷에 의해 미국은 세계 경제를 장악했다. 우리가 쓰고 있는 인터넷 브라우져가 이용하기 쉽게 만들어진 역사 또한 짧다. 최초의 웹브라우져인 모자이크는 1993년 출시되었으며 1995년까지 알타비스타, 야후 뿐만아니라 카네기 멜론대학의 프로젝트 차원에서 만들어진 라이코스를 포함해서 몇몇 대형 인터넷 검색사이트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1996년 이전, 이메일은 유료였으며 특수한 직업군에서만 이용되고 있었다. 1997년 여름 익사이트는 포탈 가운데서 최초로 무료 이메일을 제공한다. 그러자 그 해 10월부터 경쟁사인 야후와 라이코스도 무료 이메일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다음(daum.net)이 한메일넷으로 우리나라 최초 무료이메일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접속’이란 영화가 상영되면서 인터넷 문화가 대중에 전파됐으니 그 이전에는 주로 통신네트워크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흔히 FTP, 고퍼 등을 기억하면 된다.
나의 경우를 보면, 1994년 4월 서울 서초동 법원 앞에 국내 처음으로 비즈니스 센터을 열었다. 언론에서조차 인터넷이란 단어가 생소해 ‘네트워크 모뎀센타’라고 보도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난다.
네트워크(인터넷)라고 하는 엄청난 광맥을 잡고 밤낮 없이 연구에 몰입하던 시기였다. 1994년 4월에 약 5억원을 투자해 BNC (business Network center)란 상호로 직접 구상한 새로운 인터넷 세상을 국내에 처음으로 내놓았다. 486pc에 모뎀을 이용한 네트워크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PC방의 원조이자, 세계 최초의 인터넷 카페로 기록되고 있다.
(1994년 3월 “국내 최초 모뎀카페 “스포츠조선 최초 보도, 1994년 4월 ”국내 최초 네트워크센타“ 전자신문 보도) 우리나라는 2006년에 이미 70.5%라는 전세계 인터넷 보급율 1위를 달성했고, 2007년 세계 인터넷 사용 인구는 약13억 4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인도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가 4억 6,000만으로 3억 2,100만의 유럽, 2억 3,300만의 미국, 캐나다 보다 많다. 아시아 지역 인터넷 보급률이 상당히 높은 편이긴 하나 전체 인구의 12.5%만 사용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인터넷 이용 인구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미래의 인터넷에서는 영어가 아닌 제 3의 언어도 쓰이게 될 것을 시사한다. 인터넷으로 인해 상업은 글로벌화 되어 국경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단지 우리나라는 남과 북이 휴전선으로 나뉘어져 있는 특수한 상황이다. 그 무엇보다 지휘관의 위치가 중요하며 시대를 읽을 줄 아는 지휘관이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터넷 항로를 따라 미국무성 사이트 검색도 해보고 첨단 시스템으로 컴퓨팅 전략을 세워보는 일도 바람직하리라 여겨진다. 세상은 비트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변치않는 것은 국가의 자위권을 지키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고민한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고도로 훈련된 IT지휘관의 시대가 올 것이라 예측된다. 지휘관들이여 ! 세계를 지휘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학습에 매진하길 바란다.
-약력- 1959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과정 수료 주)홈메일 대표이사 전화 070-7556-3709, 010-6270-3705 현)cocrecu전자정부 연구소 운영 팩스 02-3463-5597 계좌번호 우리은행, 정민호, 1002-232-278239 정민호 사무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553번지 |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입력 : 2010년 03월 04일
- Copyrights ⓒGBN 경북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포토뉴스
청명하던 하늘 먹구름 몰려와 빗줄기 우두둑우두둑..
|
극장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쏟아져나오고 피부에서 붉은빛이 번져
..
|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텅 빈 복도에서 잠시 마음을 내려놓는다 방으로 ..
|
최동호 교수의 정조대왕 시 읽기
정조는 1752년 임신년에 출생하여 영조 35년 1759년 기묘년 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