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시대의 주역으로
젊은이들에게 본내는 메시지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입력 : 2010년 03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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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영 애
(경희대학교 교수/사단법인 한중여성교류협회 회장)
<못다핀 군인의 꿈>
나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좀 특별한 삶을 살아왔고 살고 있다. 학창시절 내 꿈은 군인이었다. 실제로 여군 장교로 임관하여 대위 계급장까지 달았는데 군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교육부 계통의 장학사가 학교 시찰을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담임선생님이 환경정리를 시켰는데 게시판에 여군관련 소식만 잔뜩 실었다가 나중에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당시 나는 최초의 여군 장군은 내 몫이라고 호언장담하며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혼 후 선택의 갈림길에서 아이를 낳는 대신에(당시에 여군 장교는 결혼은 하되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음)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대만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이 결정될 무렵 건국대학교 박사과정 시험에 합격했지만 나는 우물 밖에 세상 공부를 하고 싶었다. 당시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계셨던 고 박순천여사님의 도움으로 육영수 여사 추모사업회의 동아시아 지역 첫 장학금을 받아 대만행을 결행한 것이다.
첫돌이 채 되지 않은 아들을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맡긴 채 홀로 대만대학교에서 8년간의 박사과정을 마치고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 대만대학교는 세계100대 대학교에 속한다는 화려한 명성답게 박사과정 학생들을 맹훈련시켰다.
예를 들면 ‘근대사 전체 연구’라는 과목은 세 교수가 동시에 수업 시간에 들어와 강의하는 과목이었는데, 중국 외교사 교수, 중국제도사 교수, 중국 사상사 교수 세 분은 권위 있고 무섭기로 소문난 분들이어서 우리는 그분들을 삼공(三公)이라 부렀다. 중국학생들도 한번에 이수하지 못하고 두 번씩 수강해야 하는 이 과목은 필히 이수해야 되기 때문에 한여름 모기떼와 전쟁을 치르면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됐다.
수업 방식은 큰 주제를 하나 주고 이와 관련된 자료들이 어디에 소장되어 있는지, 개략적인 내용은 무엇인지를 준비해 와서 매주 발표하도록 하는 것인데 중국 근대사와 관련된 고서적은 책 하나만도 그 분량이 방대하기 짝이 없는 양이라 입이 깔깔하여 음식을 먹을 수도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수업에 임해야했다.
혹독한 고통과 인내에도 불구하고 중국 학생들뿐만 아니라 나 역시 1차 수강에서 69점을 받고 낙제를 면치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1년에 1번만 개설하는 과목이라 다시 1년을 기다렸다가 재수강하여 가까스로 이수할 수 있었다.
국내도 아니고 이국땅에서 갓난아이를 떼어두고 온 엄마로서 그 일 년의 시간은 경제적, 시간적, 심리적으로 가혹한 극기 훈련의 과정이기도 했다. 그 힘들었던 수업 방식은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학문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다.
<한중여성교류협회의 창립과 민간외교활동>
1989년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면서 주위의 많은 분들의 권유와 도움으로 한중여성교류협회를 창립했다. 지금은 사단법인으로 문화관광부에 등록되어있는 본협회는 2007년 창립 13주년이 되었다.
한중여성교류협회는 학자, 사업가, 주부를 비롯하여 중국문제에 관심 있는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달 한 번씩 정기 월례회의를 개최하고 1년에 3~4회 한중 여성들의 국제행사를 갖는 명실공히 대 중국 관련 건실한 여성단체로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2005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에는 중국대사관 이빈 대사부인인 진일빙 여사(대사관 부녀회장)의 공식 초청을 받고 협회 회원들과 중국 여성 외교관 및 가족들이 중국문화 이해하기의 일환으로 중국음식 만들기, 영화 관람하기 등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평가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란 것이다. 정말 그랬다. 2002년 한중수교10주년을 바라보면서 1년 전부터 중국여성과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당시 중국 인민공화국 상무위원 부위원장(부총리급)이며 전국 부녀연합회 주석인 펑 패인 윈 여사에게 5장에 달하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펑 패이 윈 여사는 훌륭한 계획이 실천될 수 있도록 관련 부서와 검토했고 곧 시행하겠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2002년에 나는 본 협회ㅇ의 중앙회, 광주전남지회, 경북포항지회 회원과 스위트 펄 소년소녀 합창단 등 105명을 인솔하고 중국 무대에 가서 중국정부의 펑 패이 윈 주석 등 고위 관리와 김하중 주중 한국대사, 기업인 등 300여 명이 함께 수교 10주년 행사와 ‘한중여성 경제세미나 및 청소년 문화예술교류’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그 이후 매년 ‘한중여성 양국언어 이야기대회’, ‘외국인 서울 문화체험 주부도우미 육성 프로그램’운영을 통한 중국어 회화, 외국인홈스테이, 외국인 가이드 등 무료교육 및 체험학습을 통한 한국문화를 외국인에게 알리고 있다. 그 결과 2006년에는 우수단체로 선정되어 서울시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너무 열정적으로 일한 탓인지 나는 과로로 졸도하여 병원에 실려간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을 통해 나는 보람을 느끼고 협회와 더불어 나 개인은 더욱 성숙해 왔다고 생각한다.
2007년은 참으로 바쁘다. 금년은 한중수교 15주년을 맞는 해이다. 지난 한중수교10주년에 중국에서 행사를 하였듯이, 문화관광부 후원으로 5월 14일 한중수교15주년기념 ‘제3회 한중여성 양국언어 경진대회’를 북경대학에서 북경대학 및 칭하대학, 한국 유학생간에 중국인은 한국어로, 한국인은 중국어로 언어경진대회를 실시하였고,
10월 25일부터 2박3일간 포럼 및 문화예술교류로 한중일 여성교류대회(동북아의 으뜸이 되는 여성이 되자!)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중국인 60여명, 일본인 45명, 한국인 150여명이 모여 각국의 여성의 현안문제와 문화를 이해하는 교류의 장을 갖는다.
<‘국민포장’이란 커다란 수상의 영광>
개인적으로 45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사단법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제관계 위원장으로 이연숙 당시 장관, 최영희 국회의원, 숙대 박영혜 교수 등과 미국 유앤총회의 여성지위 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는 등 한국 여성 NGO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때 느낀 것이지만 중국어는 유엔총회에서 사용하는 세계5개 언어 중 하나이다. 동북아 시대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꼭 필요한 언어인 것이다. 흔히들 나를 중문학과 교수로 생각하지만 나의 전공은 정치학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중국어 공부를 참으로 열심히 한 것 같다.
건국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때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선택했던 나는 ‘동양은 동양인이 발전시켜야한다’는 은사 조재관 박사님의 권유로 대만 유학을 결행, 아줌마학생으로 부엌에서 밥을 하면서도, 배속에 있는 아이하고 함께 이어폰을 꼽고 중국어를 들으면서 배웠던 기억이 난다.
아침부터 학원에 갔다가 학원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교 수업시간에 맞춰 택시를 타고 가서 강의를 들었고 다시 학원으로 갔다. 그리고 외국학생들과도 중국어로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그 덕에 나의 중국어는 꽤 유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에 동아시아 여성포럼이 대만에서 개최되었을 때 나의 활달한 성격과 대만대학교 동문의 힘으로 각국 여성 NGO대표들과 천수이벤 총통과 뤼슈렌 여성 부총통을 공식방문 했으며 1995년 세계 제4차 여성대회가 북경에서 열렸을 때 ‘한국 신라시대 세여완의 통치술과 여성문화’라는 주제 발표를 중국어로 유창하게 해냈다.
또한 최초로 한국을 공식 방문한 중국 최고위층 여성 천무화 부총리 일행이 김장숙 장관의 초청으로 왔을 때 공식 통역을 담당했다. 비단 중국어뿐만 아니라 어학 공부는 많은 시간 투자를 요한다 그러나 ‘늦은 것을 두려워 말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라’라는 중국 격언과 같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큰 전환점 중의 하나는 조영식 박사님을 가까이서 모시고 밝은 사회 운동과 활동을 했던 것을 꼽을 수 있다. 경희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설립자 조영식 박사께서 제창하신 유엔 경제사회 이사회 특별자문 민간단체 밝은사회 국제클럽 한국 본부의 여성부장의 소임을 맡아 다산 여성클럽과 서울 여성클럽을 창립했으며
‘밝은 사회 전국 여성클럽 연합회’를 창립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연합회 회원들, 경희의료원과 동서한방병원의 의료진들과 ‘밝은 사회 무료 의료행사’를 서울, 경기지역 외에도 강원도 강릉, 삼척, 경주 등지에서 실시하여 3,000여명의 지역주민과 독거노인들을 진료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활동과 여성당선 할당제도 도입 등의 학문 연구, 여성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7월 제8회 여성주간에 ‘국민포장’이라는 커다란 훈장 상을 수상했다. 올해10월에는 한중일여성대회가 한중여성교류협회 주최로 서울에서 행사를 갖는다.
지난 2005년에 중국 산동성에서 1회 대회를, 2006년에 일본 시모노세끼에서 2회 대회를, 3회 한중일 여성교류대회는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리며 슬로간은 ‘동북아에서 으뜸이 되는 여성이 되자!’로 여성들의 현안인 경제, 참정, 교육 등을 주제로 포럼 및 3국 문화예술공연을 통한 교류를 갖는다. 또한 우리협회 회원들에게는 매월 정기 모임일에 생활 중국어를 30분씩 가르치는데 회화 중심의 실습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는 나는 참으로 감사드려야 할 분들이 많다. 학문적으로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에 있어서 많은 격려와 조언을 해주시는 조영식 박사님을 비롯하여 공영일 전 총장님, 손재식 전 장관님, 조인원 원장님, 신상협 교수님, 여성 선배들 중에는 김현자 전 국회의원님, 이연숙 전 장관님, 김경오 한공회 총재님, 유석연 여군단장님, 김정숙 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 이사장님, 임진출 전국회의원께도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여성의 능력을 사장시키지 말고 남성과 함께 양성평등하게 성장해 나가도록 해야 국가도 발전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과거 직장에서 임원으로 있을 때 여성을 차별화하지 않고 진급이나 해외파견에 앞장서온 남편은 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아내를 유학보내고 아이를 키웠으며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일을 도와주고 있다. 친구 같은 멋진 남성인 남편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사랑을 표하고 싶다.
며느리 뒷바라지에 애쓰시고 손주를 키워주신 시어머니, 5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주신 친정어머니, 나의 든든한 큰아들 성우, 경희대학을 다니는 나의 예쁜 딸 진아 잘 커주어 감사하고 사랑한다.
<동북아 시대 여성이 앞장서자>
평화 복지대학원에서 봉선사의 암침 산책길에서 나는 또 가슴 뛰는 무언가를 준비하고 설렌다. 동북아시대에 우리 여성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세계 여러나라에서 여성이 최고지도자로 나서고 있다 한국정치사에서도 일찍이 박순천여사가 정당의 당수를 지냈으며 최근에는 박근혜씨가 한나라당의 당수를 지냈다. 그보다 훨씬 이전인 신라시대에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 세 여왕은 통치술과 리더십을 유감없이 발휘하지 않았던가?
신라의 후예들이여! 이 땅의 여성들이여! 이제 우리의 무한한 잠재 능력을 더 이상 묵히지 말고 과감히 길어올려 새로운 21세기를 열어가자. 그리고 한중일 삼국의 단합과 교류 활성화를 위해 앞장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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