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시인"단풍나무 빤스"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1년 09월 30일
|  | | ↑↑ 손택수 시인 | ⓒ GBN 경북방송 | |
단풍나무 빤스
손택수
아내의 빤스를 구멍이 난 걸 알게 된 건 단풍나무 때문이다 단풍나무가 아내의 꽃무늬 빤스를 입고 볼을 붉혔기 때문이다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을 넘어 아파트 화단 아래 떨어진 아내의 속옷, 나뭇가지에 척 걸쳐져 속옷 한 벌 사준 적 없는 속없는 지아비를 빤히 올려다보는 빤스
누가 볼까 얼른 한달음에 뛰어 내려가 단풍나무를 기어올랐다 나는 첫날밤처럼 구멍 난 단풍나무 빤스를 벗기며 내내 볼이 화끈거렸다
그 이후부터다, 단풍나무만 보면 단풍보다 내 볼이 더 바알개지는 것은
손택수 시집『 목련 전차 』,《창비》에서
시 감상
이제 붉고 노랑 옷을 입은 나무들을 만나는 가을 속으로 들어가나 보다. <단풍나무 빤스>를 보고 혹시나 내 빤스가 바람에 날려가서 걸리지 않았나 하고 얼른 단풍나무를 쳐다본다. 내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단풍나무가 발갛게 웃는다. 단풍나무에 발갛게 구멍난 아내의 빤스가 걸려 있으면 민망해서 모른 척 할 수도 있는데 시인은 얼른 나무에 올라가서 그 빤스를 걷어온다. 실지로 그 빤스가 구멍이 났을까 마는 그 빤스를 보면서 한 번도 아내의 속옷을 사 준적이 없는 지아비라는 것을 숨기지 않으며 자기 허물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삶의 진실을 볼 수 있다. 첫날밤처럼 아내의 빤스를 벗기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린다는. 그 단풍나무 볼 때마다 부끄러움을 들킨 것처럼 서로 마주보며 얼굴을 붉히게 된다고.
작가 소개
손택수 시인 .1970년 전남 담양출생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 당선 시집<호랑이 발자국>2003년 창비 외 다수 2003 현대시동인상 2004 신동엽창작상 2005 제2회 육사시문학상 신인상 2007 올해의젊은예술가상 2007 제14회 이수문학상 시부문 2011 제3회 임화문학상 수상 |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1년 0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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