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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시인"가을"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1년 10월 13일
 
↑↑ 송찬호 시인
ⓒ GBN 경북방송 

가을

송찬호


딱! 콩꼬투리에서 뛰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뛰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
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
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맷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이 따닥따
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멀리 쏘아 보내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한 가슴만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시 감상

햇살이 마지막 빛을 더하는 저녁나절처럼 한해의 빛깔이 더욱 선명한 가을. 콩알의 종족번식력이랄까 자생력이 얼마나 강한지 콩꼬투리에서 뛰어나가 장끼 가슴을 스쳐 놀란 장기까 건너편 숲으로 꺼껑꺼겅 날아가는, 이우는 계절이 서러운 가을입니다.

작가의 상상력은 여기서 한 술 더 떠 콩알이 노루 엉덩짝을 때려서 초경비친 계집애처럼 놀라 피 한 방울 흘리며 맞은 편 골짜기로 달아나는 기발하고 발랄한 가을이 아니겠습니까.

맷돼지도 거들떠보지 않는 콩밭도 허리 구부정한 노인에게는 마지막 농사인 듯합니다.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고 황두 두말 소출에도 빙그레 웃습니다.

그 마지막 황두 두말 소출도 나누려고 콩새에게 어서 주워가라고 하는 군요. 작은 것이 만족하고 모자라는 대로 나누어 사는 삶이 엿보이는 따듯하고 정겨운 가을 풍경이 그려진 시입니다.

햇살 한 필 뚝 끊어서 접어 두었다가 맨발로 겨울 나는 이에게 따뜻한 버선 한 켤레 지어 주고 싶은 가을입니다.



작가 약력


송찬호 시인
1959년 충북보은 출생.
1987년 <우리시대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10년 동안의 빈 의자』, 『붉은 눈, 동백』,『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1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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