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라라 시인의 "비를 맞는 자세"
윤승원 기자 / gbn.tv@hanmil.net입력 : 2011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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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는 자세
최 라 라
너를 위하여
푸른 세탁소가 자전거를 탄다
빗방울이 닿는 순간 푸른은 잠시 푸른을 잊는다
작정한 듯 세탁소는 흠뻑 젖는다
자전거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다 젖어주는 것이 젖지 않는 방법이라는 걸
자전거만 모를 뿐이다
소리 혹은 소음
엄마가 쪽진 머리 자르고 파마를 했다
아버지는 저녁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숟가락 끝이 부르르 떨렸다
엄마는 쩝쩝 소리 나게 밥을 먹고
오빠와 나는 씹지도 못한 밥을 삼켰다
빗방울이 저들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부딪혀 깨진 파편들이 땅바닥에 떨어져내렸다
비의 바깥에서 비를 맞는 저녁은
손톱 밑이나 발톱 밑이 먼저 젖는다
어떤 보고서
페이지를 넘기기 전 나는 생각한다
비의 직립은 겨울나무의 성립과 병행하는 걸까
나무는 비의 형태로 서 있고
비는 나무의 자세로 내린다
사람의 직립과 비할 바는 아니다
무엇이든 피하고 보는 사람과는 달리
비가 어깨 움츠리는 자세를 취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어느 날, 우연히,
진숙이 할머니는 허리 구부러진 채로
큰오빠는 똑바로 누운 채로
세탁소 김씨는 자전거 위에 앉은 채로
비를 맞는다
혹자들의 의견,
두 팔 벌리거나
고개 한껏 젖혀 하늘로 향하는 포즈는
빗속으로 들어가기에 가장 좋은 자세
우연히, 비가 당신에게 온다면
무작정 끌어안고 볼 일이다
젖은 다음의 당신과 악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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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라라 시인 본명 최영미. 1969년 경주 출생.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
윤승원 기자 / gbn.tv@hanmil.net 입력 : 2011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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