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호 시인"줄"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3년 05월 22일
| | | ↑↑ 김일호 시인 | ⓒ GBN 경북방송 | |
줄
김일호
아버지는 늘 줄을 잡고 싶어 하셨다.
줄이 없어 너희들 좋은데 취직 못시킨다고 .그 노무 줄이 있어야 하는데. 고래 힘줄 같이 튼튼한 줄 하나가 온 집안 식구를 먹여 살린데이.
그러시던 아버지 동산병원 중환자실에서 알부민, 혈소판, 제비티, 스모프리피드, 등 스무 개도 넘는 줄을 달고 가쁜 숨 쉬신다.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듯 줄 속에 난 길로 간신히 이승과 저승으로 다니시는 아버지. 저 노무 줄만 아니면 좀 살만 할텐데. 반딧불 같은 눈으로 바라보신다.
다 필요 없데이. 하느님이 놓을까? 말까? 잡고 계시는 생명줄 하나만 꼭 잡고 있으래이. 말씀 하시는 것 같다.
작가 약력
경주출생 2005년 근로자문학상 수상, 2008년 경남신문 신춘 시 당선, 경주문협회원, 시in동인.
시 감상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능력도 없는 아버님은 천행이라도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어디든 의지하고 싶어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든든한 줄이라도 어디 닿을 만한 데가 있었으면 하셨지만 그 줄도 가지지 못하셨다. 간단한 볼일을 보더라도 은행이나 병원, 경찰서에는 거미줄 같은 보잘 것 없는 줄 하나만 있어도 동아줄 같이 든든한 연결이 될 수 있다는데 하물며 자식의 일에는 오죽하셨을까. 이루지 못할 일은 바람만 커서 자식들이 좋은 직장과 연결 될 수 있는 든든한 줄만 있으면 어떻게든 잡아주려 하셨지만 썩은 새끼줄도 잡히는 줄은 없으셨다. 그런 아버님이 중환자실에 누워서 알부민 혈소판 등 20여개의 줄에 생명을 의지하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고 계신다. 하느님이 잡고 당겼다 놓았다 하는 줄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아슬아슬한 벼랑끝에 매달려 계신다. 그 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계신다. 어떻게 잡으신 줄인가. 목숨 걸고 가까스로 잡은 그 줄 제발 놓지 마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자식으로서 어떠한 새줄도 잡아드리지 못하고 짧은 면회시간이 아쉬울 뿐인데 오히려 아버님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우리들에게 단 하나라도 잡은 줄은 절대로 놓치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것 같다. |
김광희 기자 / 입력 : 2013년 0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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