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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강의 주자 선생 탄생 888주년 기념대제 참가 및 관련 여행기

항주서 백낙천, 소동파, 이태백을, 소흥에선 왕희지와 루쉰을 만나다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입력 : 2018년 11월 03일
ⓒ GBN 경북방송

올해는 주자 선생 탄생 888주년이다.
주자 선생은 중국의 남송시대 성리학을 집대성한 사상가, 교육가, 유학자로써, 성리학을 주자학이라고도 한다.(1130년~1200년)
공자, 맹자와 함께 숭배의 대상이었던 주자는 복건성 우계에서 태어났으며, 성리학의 정통 후계자였던 이동에게서 수학함으로서 북송의 대학자 주돈이, 정호, 정이 등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우리나라는 고려 말 원나라로부터 성리학이 유입되었고 조선초기에는 정치적·사회적 실천의 이념적 근거로의 이해가 추구되었으며, 그 후 16세기에는 성리학이 학문의 중심 내용으로 자리 잡았다.
이언적(1491~1553)과 서경덕(1489~1546)에 의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성리학에 대한 학문적, 이론적 탐구는 이황(1501~1570), 이이(1536~1584)로 이어져 체계화되었으며 현대에까지 우리 정신문화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16일 9시에 경주를 출발한 일행은 김해공항에서 12시 35분 비행기에 올랐고 13시 15분 상해 포동(푸뚱)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경주향교 이상필 전교 및 자문교수, 경북지역의 전교 등 23명의 일행은 주자선생 888주년 기념대제 참가 및 선생의 유적을 찾아가는 여행길에 올랐다.
공항에서 상해 홍교역으로 이동하여 고속열차를 타고 3시간 20분이 지나서야 복건성(푸첸성) 무이산역에 도착했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호텔로 향하니 중국 시각으로 11시 30분, 첫날은 비행기와 버스, 기차를 번갈아 타며 보낸 하루였다.
↑↑ 주자 선생의 묘
ⓒ GBN 경북방송

둘째 날은 주자선생의 묘를 찾아 참배하고 제를 올리는 날이었다.
버스에 올라 복건성 건양시 황갱(黃坑)으로 향했다.
주자묘 초입에는 한국정주학회가 세운 주부자림비(朱夫子林碑)와 신안주씨 한국종친회가 세운 사원정(思源亭)이 있어서 반가움이 앞섰다.
묘로 향하는 길은 돌계단으로 만들어진 오솔길이었다.
길 가에 간간히 ‘주자가훈’ 내용 중의 일부가 배너로 걸려 있는데, 높지 않은 산등성이에 주자선생과 부인 유씨의 합장된 묘가 나온다.
당시도 여성의 지위가 상당했던가. 대학자의 합장묘 앞에서 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 이 자리는 주자 선생께서 생전에 정해 놓은 곳으로 전해진다.
↑↑ 향교 어른들의 참배 및 제사
ⓒ GBN 경북방송

800여년의 긴 세월을 말해주듯 묘 전체를 장식해 덮어놓은 둥근 강돌에는 이끼가 고풍스럽게 끼었다.
비가 몇 방울씩 내리는 날씨라 바닥이 미끄러웠지만 전교들께서는 도포와 유건을 갖추고서 준비해온 제물을 정성껏 차린 뒤 순서에 따라 제를 올렸다.
향교에 모시던 주자선생의 묘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 어르신들의 표정은 근엄하고 진지했으며, 대유학자이자 시인이기도 한 주자선생을 만났다는 설렘에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니, 나비 한 마리가 제관들 사이를 날고 있었고 은목서 꽃에서는 선생의 말씀 같은 꽃향기가 쏟아져 내렸다.
주자선생께서 어린 학동들을 위해 쓰셨다는 권학시를 소개한다.

소년은 늙기는 쉬우나 학문은 이루기가 어렵나니,
짧은 시간이라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연못의 봄풀이 깨어나기도 전에,
섬돌 앞에 오동나무는 이미 가을 소리를 낸다.
少年易路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 已秋聲

일행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무이산으로 향했다.
지나치는 차창너머로 곳곳에 차밭이 보인다. 무이산은 세계적으로 무이암차, 홍차가 유명하다.
무이산에는 그 유명한 무이구곡이 있고 주자 선생은 1곡에서 9곡가지 거슬러 오르며 풍광에 취해 ‘무이구곡가’를 지었다고 한다.
↑↑ 무이산 입구
ⓒ GBN 경북방송

현재는 대나무로 엮은 뗏목을 타고 무이구곡의 9곡에서 1곡까지 물 흐르는 대로 내려가는 형태로 구곡을 감상하는데, 우리는 1시간 50분 동안 기암괴석 사이를 유유히 흘러내렸다.
9곡, 8곡....계곡을 지날 때마다 바위에 붉은 글씨로 새겨진 주자선생의 ‘무이구곡가’가 나타났다가 밀려가고, 유장한 물소리와 수천 년 내려다보고 있었을 절벽을 마주하며 자연에 대한 경외와 가없는 인간의 삶을 번갈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중국에서는 ‘산을 보려면 황산을 보고, 산봉우리를 보려면 장가계를 보고, 물을 보려면 계림을 보고, 물과 산을 보려면 무이산을 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이산의 경치는 빼어났다.
언제 다시 와 볼 수 있겠는가.
↑↑ 무이구곡
ⓒ GBN 경북방송

한나절을 무이산과 더불어 선비처럼 신선처럼 여유를 부렸다.
무이산을 뒤로하고 어스럼이 내렸다.
저녁에는 귀한 술과 음식이 준비된 호텔에서 환영 연회가 열려서 중국의 문화를 더불어 느끼는 시간이었다.

주자 선생의 묘 앞에서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마음으로 뒷자리에 서 있다 보니 한 편의 졸시를 쓰게 되었다.
문학적 측면에서도 무이구곡가를 비롯해 수많은 시를 남긴 대시인 선생께는 부끄럽지만 이곳에서 선생의 자취를 느낀 감동을 적은 것이다.


황갱, 주자선생을 만나다

황명강

빗방울 밀어내며 촛불이 타오른다.
공손히 사룬 향이
무덤가 돌틈 이끼사이 서린다

흰 도포자락 위로
하늘이 열리는 시간,
여기선
먼 길 건너온 나그네도 주인이 된다

그리움이 그리움에게
손을 흔들 듯
은목서 몇 잎 핑그르
그윽한 축문 위로 내려앉을 때

학문의 우물이다가
무성한 숲이었다가
수천의 길이 되신
주자 선생님,
돌멩이보다 무거운 어리석음 두드려보라는 걸까
손 모은 가슴마다 돌 하나씩 안겨주신다

무심한척 난 음복 대추를 깨물며
돌과 대추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는데,
888년 전
선생이 열어젖힌 하늘을 만나고보니
낯선 땅도 물 한 방울의 물음도 낯설지 않네
(2018.10. 17.경주향교 주자능참배 제의례에서 )

18일, 셋째 날은 주자선생 탄생 888주년 기념대제에 참가하기 위해 일찍 호텔을 나섰다.
복건성 난핑시 오부진에는 세계 각국에서 주자선생을 기리는 이들과 중국 주요간부들, 일반국민 등의 참가자들이 행렬을 이루는 가운데 우리 일행도 버스에서 내려 군중 속으로 합류했다.
유학의 본고장인 이곳 사람들은 거의가 양복차림이었다.
도포와 두건을 갖춘 전교님들에게 현지인들과 참가자들이 곁에 와서 사진을 찍기도 하는데, 전통을 지켜온 모습이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주자선생 동상이 있는 무대 앞에는 각국의 주요 인사는 물론이고 세계주씨연합회 등 수천 명이 넘는 인원이 운집했다.
↑↑ 주자선생 탄생 888주년 제축대전을 마치고
ⓒ GBN 경북방송

특히 투자유치 건으로 중국을 방문한 주낙영 경주시장께서 행사에 참석하여 꽃을 올리고 경건하게 제를 올렸다. 기념대제에 참석한 주낙영 경주시장이 난칭시와 우호 결연을 맺은 점, 천년 고도 경주의 입지여건과 중국 투자유치 관련 활동이 두드러진 것은 매우 반갑고 고무적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오찬을 마친 일행은 오부리로 향했다.
오부리의 행정구역은 복건성 무이산시 오부진이다. 오부리는 주자선생이 부친의 유언에 따라 14세에 들어가 거처한 후 만년에 건양고정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50여년을 거주했던 곳이다.
자양루를 향해 걸어가는 좌우측 논에는 오리들이 유유히 걸어 다니며 노는 것이 눈에 띈다.
자양루 입구, 주자선생이 심었다는 800여년 된 고목들이 위세를 자랑하듯 당당하게 서 있고, 주자고거라는 현판이 걸린 집의 곳곳에 주자선생의 뜻 깊은 어록이 걸려있다. 또 2층 한쪽에는 단아한 자녀들의 방도 보인다.
이곳은 원래 유씨들의 집성촌이었으나 현재는 80%가 주(朱)씨라고 한다.
주자선생은 이곳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며 연구하고 저술하며 제자를 양성하는 시간을 보냈다. 벼슬하지 않을 때에는 늘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이어서 흥현서원과 주자항으로 향한다.
이곳 마을을 따라 흐르는 물에 아낙은 빨래를 하고 나그네는 조심스레 내려가 발을 담갔다.
마을이 옛길을 간직한 채 고풍스럽게 펼쳐지는데, 사람들은 말린 연밥을 팔거나 특산품 몇 가지로 좌판을 열고 있다.
주자선생이 800여 년 전에 자양루에서 흥현서원을 오고가며 걸었던 길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주자항이라고 한다.
마을 안에는 고풍스런 흥현서원이 있다.
주자선생이 적계 호원중선생에게 수학을 했고 주자 선생 역시도 제자들에게 강학한 곳이다. 옛 성현의 자취라도 더듬듯 오래된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학당 위쪽 중앙에는 주자선생의 낙관이 찍혀있는 계왕개래(繼往開來)‘옛것을 이어 미래를 열자’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곳을 나와서 마을 안쪽을 걸어가면 주자선생의 처가 인 유씨종가를 비롯해 선생과 관련된 유적들이 나온다.
하루가 참 빨리도 지나갔다.
우리가 탔던 버스가 펑크 나는 바람에 마을 빨래터에 발을 담그고 버드나무를 올려다보는 막간의 정취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저녁엔 명성이 높은 무이산 대홍포차를 소제로 한 ‘인상대홍포’를 관람했다.
유명한 장예모 감독 작품 중의 하나인 인상대홍포는 스토리가 탄탄하면서 웅장하고 특이하여, 공연이 이루어지는 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객석이 360도 회전하는가 하면 빛의 조화가 천지를 수놓고 출연자들의 연기도 뛰어났다.
무이산은 세계자연유산인데, 세계유산이 된 배경에는 빼어난 경관도 있지만 주자선생의 성리학과 차문화가 크게 기여했다는 설도 있다.
공연의 마무리엔 출연자들이 맛있게 달인 차를 들고 객석으로 올라와 한잔씩의 차를 대접하는 것이었는데, 차 맛이 포근하고 온화했다.

매일 2만보 가량의 강행군이 이어지는데 피로가 쌓이기는커녕 너무도 즐겁고 설레는 것은 왜일까.
육신의 피로보다는 정신의 충만함이 걸음을 가볍게 함이리라. 염려와는 달리 전교님들께서 매우 건강하게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서 감사하다.
무이산을 떠나기 전에 경주에 돌아가 지인들과 나눌 차를 사두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할 숙제였다.

중국 4일차, 19일 - 일정을 소화하다보니 중국에 온지 며칠이 지났다.
이른 조식을 한 뒤 무이산역에서 항주행 고속열차를 탔더니 11시 항주에 도착했다.
항주(항저우)는 중국 절강성의 성도이자 그 옛날 남송의 수도였던 곳이다.
중국에 ‘하늘에는 천당이 있으며 땅에는 항저우(항주)와 쑤저우(소주)가 있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명성이 높은 곳이다.
시간이 이른데 일정상 점심을 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인해 많은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는 호수, 서호로 향했다.
↑↑ 항주의 서호
ⓒ GBN 경북방송

서호는 전체 면적 6.5㎢, 남북 길이 3.2km, 동서 너비 2.8km이며 평균 수심이 2.27m로 깊지는 않으며 총 둘레의 길이가 약 15km에 달하는 거대한 인공 호수다.
중국에서도 아름다운 도시 항주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호수 ‘서호’는 시인 백거이. 소동파, 이백의 발길이 닿아있어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출렁인다.
특히 북송의 시인이자 항저우의 태수였으며 적벽가로 유명한 소동파(소식)가 쌓은 제방 ‘소제’가 운치를 더하고 있는데, 소동파는 서호를 소재로 많은 시를 남긴바 있다.
그는 청렴하고 항주인을 사랑하였으므로 항주 사람들은 그의 초상화를 집에 걸어두고 음식을 먹을 때는 소동파 선생을 위해 기도하였다고 전해진다.
또 당나라의 대표 시인 백거이(백낙천)가 항저우에서 관리로 재직할 때 쌓은 제방 ‘백제’도 서호의 풍광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백거이 선생은 생활과 연관된 시를 많이 지은 시인으로 거문고 연주를 잘했고 차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또 한사람 당나라를 대표하는 시인 이백이 서호를 저으며 시를 읊었으니 서호의 매력은 내외적으로 강하게 다가온다.
호수 가운데의 작은 인공섬, 호수 삼면을 에워싼 야산, 산 위에 세운 사찰과 탑, 벤치와 버드나무, 노천카페, 숲 사이 오솔길 등 며칠은 머물러도 좋을 듯 했다.
우리는 넓은 호수를 가로지르는 뱃놀이를 하기 위해 유람선에 올랐다.
유림의 어른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서, 서호를 저어가며 시 한편씩 주고받는 멋도 있으려니 했으나 현지인들과 동승한 유람선이라서 그 생각은 접어야 했다. 아쉬운 마음에 서호를 두고 쓴 소동파, 이태백, 백거이의 시편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며 그 옛날 그들의 남기고간 자취를 마음껏 누렸다.

서호에서의 뱃놀이를 마치고 일행은 항주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오래된 거리 ‘청하방’을 찾았다.
전통소품과 잡화를 파는 가게가 양옆으로 늘어서있는데 찻집, 먹거리, 실크가게 등 그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항주에서 유명한 용정차를 파는 곳이 많이 눈에 띄었다.
차를 파는 가게 앞에는 종업원들이 차를 달여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차 맛을 보이며 홍보하는 모습이 매우 적극적으로 보였다.
양쪽건물사이 거리 가운데에는 전통공예품, 실크 제품, 신발, 가면, 초상화, 장난감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길게 늘어져 있어서 거리의 분위기를 잘 이끄는 듯 했으며, 우리 경주의 관광지에도 이런 형태의 거리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항주에는 녹차가 유명하다.
詩仙 이태백도 어머니에게 항주의 용정차를 선물하고 싶어 했다고 할 정도로 좋은 녹차가 생산된다고 한다. 거리를 걸으면서 몇 잔의 녹차를 시음하고, 녹차를 구입하기도 했다.
거리의 좌우측은 재래시장이 잘 형성돼 다양한 종류의 상점들이 호황을 누리는 듯 보였는데, 우리는 제법 큰 식당을 찾아 만찬을 했다.

어스름이 내리자 항주의 날씨는 매우 쌀쌀해졌다.
항주에서도 장예모 감동의 작품 ‘인상서호’를 관람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공연장인 공원을 찾았다.
아무것도 없었던 빈터에 의자가 놓여있고 객석엔 빈자리 없이 관객들로 가득 했다.
물속에서 나무가 솟아오르고 달이 떠올랐다가 지기도 하고, 수많은 무희들이 호수의 물 위를 걸어 다니며 춤을 추고, 빛의 조화로 다리를 만들고, 무용수들을 합성해냈다.
무이산에서 ‘인상대홍포’를 관람할 때도 그랬는데, ‘인상서호’를 보는 동안 마음 한쪽엔 감동보다 안타까움이 더 컸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최첨단의 대규모 종합예술작품 앞에서, 무엇을 인정하고 부정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다.

20일 5일차,
우리 일행은 아침, 항주를 뒤로하고 소흥으로 향하기 위해 서둘러 길을 나섰다. 소흥은 춘추전국시대에 월나라의 도읍지로 역사가 깊은 도시이다.
여러 문필가와 정치가들을 배출하였는데, 특히 「난정집서」로 유명한 왕희지가 오래 살았던 곳이고 중국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루쉰(노신)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버스로 1시간30분을 달려서 도착한 소흥에서는 가장 먼저 왕희지의 난정을 찾았다.
초입에서부터 오솔길 사이 정원이 꾸며지고 나무가 우거졌으며 예사롭지 않은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일행 중의 전교님들은 이곳을 관광하는 것에 매우 큰 의미를 두시는 듯했다.
↑↑ 소흥 -왕희지의 난정
ⓒ GBN 경북방송

난정 대문을 들어서면 '아지 비정'이 보인다. 이어서 좀 더 가면 난정(蘭亭)이새겨진 비석이 나타난다.
그 오른쪽에는 우리 경주의 포석정이 떠오르는 ‘곡수유상’이 나온다.
왕희지가 당시의 인사들과 난정계회를 열었던 곳으로, 지금도 흐르는 물가에 자연석 네모난 돌들이 의자를 대신하듯 옹기종기 놓여있다.
일행은 난정에서 작은 다리를 건넌 맞은편에 '난정서법박물관'에 들러 왕희지를 비롯한 유명한 이들의 필법을 살피는데 꽤나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어서 찾게 된 곳은 ‘동호’
漢나라때 석산인 이곳 산에서 바위를 잘라내 석재로 쓰기도 했다고 하는데, 아무튼 인공으로 잘라낸 흔적이 더러 보이는 이곳의 절벽은 경치가 대단하다.
사공 외에 3명이 승선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배를 타고 우리는 수백 미터 연결된 호수와 우람하고 기묘한 절경을 감상했다.
중국인들이 자연의 가치를 알고 잘 활용하는 것에 감탄을 금할 길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무이구곡, 서호, 동호 등 세 번에 걸쳐 뱃놀이를 했다.
↑↑ 동호
ⓒ GBN 경북방송

동호유람을 마치고 나서 노신고가로 이동했다.
노신(루쉰)은 혁명가이자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어릴 적에는 서당을 다니며 공부했지만, 학당에서 신학문을 공부하면서 일본으로 유학을 하게 되었고, 신체보다는 정신이 중요하다는 지점에 이르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노신의 단편소설 ‘광인일기’는 중국 근대문학의 효시로 평가되며, 중국 사회의 모순을 폭로한 ‘아Q정전’이 그의 대표작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신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은 매우 호의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노신기념관, 노신의 삼미서옥은 잘 보존되어 있고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데, 특이할 일은 입장료가 없다는 것이다.

벌써 집을 나선지 5일째, 내일은 입국하는 날이다.
내일의 출발을 위해 소흥에서 상해로 향한다.
소흥에서 상해까지는 전용버스로 3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피로가 쌓일 시점인데 일행 중 단 한명도 흐트러짐 없이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칠순, 팔순의 연세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움직이시는 전교님들을 보면서 역시 정신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6일차, 10월 21일
이른 출발을 위해 간단한 조식을 했다.
상해 공항에서 9시 10분 비행기에 탑승하니 기내식을 준다.
그리고 11시 30분에 드디어 부산 공항에 도착, 역시 나를 태어나게 한 이 땅의 향기는 너무도 익숙하고 가로수 단풍마저 반가운 것을.

뜻밖에 동참하게 된 여정이었다.
꼭 한번은 가보고 싶었던 복건성, 절강성이었는데 ‘주자선생 탄생 888주년 제축대전’에까지 참여하였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우러르던 주자 선생님과 꼭 그 자취를 느껴보고 싶던 유명한 시인 백거이, 이백, 소동파 선생들이 걸었을 서호를 유람했을 때의 감동은 이번 여행에서 지워지지 않을 부분이다.
주관하신 경주향교 이상필전교님, 행사 전반을 아우르신 강태호 교수님, 그리고 함께 하신 일행 분들에게 귀한 인연맺음에 감사함을 전한다.

2018년 10월 28일 心經 황명강 쓰다.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입력 : 2018년 11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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