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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김준연
컵은 쉽게 동의한다
묻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인다
너의 동의를 마시고
너를 내려놓기도 전에
너는 또다시 동의한다
너는 계단에 동의하고
계단의 꺾어짐에 동의하고
벽지에 핀 곰팡이에 동의하고
어항과 어항 속 물고기들에 동의한다
바닥에 동의하고
바닥의 기울어짐에 동의한다
문에 동의하고
문의 열림과 닫힘에 동의한다
너를 놓쳐 산산조각 난다
너는 동의한다
파편 하나하나 모두 동의한다
너를 놓친 건
실수가 아니었다
너는 역시 동의한다
▶비 내린다 후두둑 기억의 지붕을 두드리고 가는 빗방울들 잠 깬 기억들이 마당 가득 꽃처럼 피어난다 아쉬운 기억처럼 잠깐 피었다 지는 꽃 그리운 얼굴들이 오래 내 눈을 잡는다
낙숫물에 발 씻는다 발가락 사이사이 빠져 나가는 목소리들이 간지럽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마음을 받쳐 줄 우산도 비옷도 없는 나는 기꺼이 빗속에 갇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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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96년《시와 반시》 등단
시집 『고양이를 입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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