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늪의 시간
노강
대학병원 뒷마당 한쪽 빈 약병들 금방 발사된 총알의 탄피처럼 쌓여 있다 칼이 베어낸 살점을 전리품으로 피에 절은 거즈들이 쌓여 가면 하루의 치열한 전투가 끝나고 영웅이 된 용사는 가운을 벗고 개선하고 누구도 저 약병들의 이름과 그의 주인을 기억할 수 없다
생과 사의 전투가 끝나면 부상병은 전투진지의 미로를 따라 지하 벙커로 기어서 가면 꺼져가는 목숨을 살리려는 자 삶의 진지를 지키려는 자 그들의 몸부림이 저리 쌓여 있다
오늘도 뜨거운 탄피가 몇 자루 실려 가고 그럴 때마다 비명이 멈추고 중환자실에서 진통제에 취한 생들 하얀 시트 아래로 가라앉는다 저 시트는 하얀 늪이다
참호 안에 숨어 다시 조준하는 심장 총이 총에게 발사하는 포탄 소리 들려오고 칼이 칼에게 휘두르는 선홍빛 피 젖으면
또다시, 꿈을 장전한다 그 누구도 어떤 전투에 투입되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하얀 늪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고향에서 간호대학을 나오고 첫 직장으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의 일을 시작했다. 나이트로 하얗게 밤을 새우고 숙소로 돌아오면 뉴스나 신문에서는 청소년들의 자살과 어쩔 수 없이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생과 사의 틈새에서 오랜 시간 나의 기억으로 그려진 시가 “하얀 늪의 시간”이다 지금도 생을 마감하려는 이들이 한번만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앞두고 처절하게 생을 이어가고자 투병중인 우리의 이웃들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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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2021년 《문학나무》 신인상
가톨릭문인회 회원
시집 『나뭇잎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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