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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비인칭` / 최규리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2년 02월 17일
비인칭


최규리




   비가 쏟아진다. 이름들이 쏟아진다. 밟혀진다. 얼굴 없는 사람들. 사라지는 사람들. 우연히 사람이 된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살아가려고. 그것의 뒷모습에 직면했을 때, 그것은 사라지고 만다. 사라지는 것 사이 사라질 슬픔은 비구름이 되어 걸어가네. 그것은 원래부터 없었는데 있다고 믿는 감각으로 내내 피로하다. 관념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의 차이는 만져지지 않는 구름과 보이는 구름의 차이. 관념적이지 않는 것이 뭐가 있다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도 얼마나 관념적인가. 무한히 빼앗기고 좌절당하는 이름들. 하늘에서 이름들이 떨어진다. 지붕 위에. 손바닥 위로. 의연하게. 땅바닥으로 무난히 착지한다. 침입자로부터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되었으나 언제나 있는 것처럼 마구 짓밟혔고. 그것은 그것이라고 명명되지 못하고 그것이 되어야 하는 운명. 재앙의 껍질처럼 뒹굴지. 탄생의 비밀은 빗방울의 단면처럼 은밀하게 산발적으로. 약속되었던 질서 앞에서 간곡히 엎드려야 돼. 유령처럼 가만히 있어야지. 비가 쏟아지는 날은 유령들도 자유롭지 않지. 비 맞은 유령은 폼 나지 않으니까 거주지를 소유하려는 세상이니까. 밟히지 않으려고. 흙탕물이 되지 않으려고. 투명한 표정으로 강물이 되기까지. 필요하지 않아도 바람이 분다. 우연히 그것이 되어 필연적으로 없음을 유지해야 돼. 아무 뜻 없는 것들이 뜻이 되는 순간을 위해. 이름을 찾아서. 최초의 지시어를 찾아서. 꽃이 되려고. 우연히 꽃잎이 되어 빗방울을 삼키려고. 여백을 기다리네. 빗방울은 너무 많아서. 아주 많아서. 아주 많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어서.




▶비가 내리면 투명 우산을 쓴다. 빗줄기를 받아내고 있는 비닐우산. 얼굴을 들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마주한다. 공중에서 낙하하는 빗살무늬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들의 움직임. 작고 힘없는 물방울의 소리를 듣는다. 땅에 떨어져 고였다가 이내 밟히고 만다. 사라지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하나의 물방울로 세상과 만나 짓밟히는 사람들. 꽃이 되고 싶었던 이름들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존재가 되어. 하수구로 흘러가 버리는 무수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 GBN 경북방송




▶약력
   2016년 《시와세계》 등단
   시와세계 편집장
   시인광장 편집장
   시집 『질문은 나를 위반 한다』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2년 0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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