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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낡은 것은 우리의 어머니` / 이성임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2년 03월 22일
낡은 것은 우리의 어머니



이성임





   잎사귀들이 억세지는 여름, 진초록에 자꾸 어깨가 짓눌린다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구름 통장을 순한 입들이 베어 먹는 동안 놀이동산 같은 꽃노을이 자꾸 등에 달라붙는다 어깨가 무거운 건 진초록이 아니라 저 노을 때문이라고 말하자 몇 수레의 폭풍을 홀로 품은 노모가 꽃노을처럼 웃으신다

서른일곱 그해 봄, 남편을 잃은 세상은 암전되고 분질러진 봄 속으로 유난히도 진한 향기를 흩날렸던 연분홍 찔레꽃, 버짐 꽃 핀 순한 눈동자들만 등에 매달려 반짝거렸다 넘겨받은 짓눌린 무게가 메아리를 치고 돌아와 돌덩이처럼 바닥에 쿵- 떨어지면 내뱉은 어머니의 외마디 탄식, 봄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가난한 고갯길은 왜 자꾸 각도를 높이는지

   엄마를 따라나선 열세 살 어린 맏아들은 닥치는 대로 어슬렁대는 골목의 새벽어둠을 수레에 싣고 돈으로 환불해야 했다 골목은 밤새, 쥐도 새도 모르게 그만큼의 어둠을 또 채워 두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옥수수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새벽을 깨우는 발걸음, 빗물처럼 스며드는 가난을 퍼내려 애써 보지만 돌아오는 길, 엄마의 광주리에는 찔레꽃 가시에 박힌 달빛만 무성했다

   지친 모자母子를 가누지 못하고 골목은 자꾸 휘청거렸다

   누런 신문지로 덧바른 판잣집에서 새어 나오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쬐며 대문에 들어서면, 엄마의 모든 시름은 낡은 외등이 외투를 건네받듯 받아들었다 유난히도 진한 연분홍 찔레꽃이 흩날렸던 어머니의 봄은 분질러진 채 그렇게 낡아가고, 아주 오랜 뒤에야 어머니의 여름이 평면적으로 도착했다

   우릴 키운 건 어둡고 가파르며 낡은 것 그러니, 낡은 것은 우리의 어머니, 초록이 억세어가는 밤 홀로 키를 낮추며 깊어가는, 낡은 것들에 대하여




▶낡지 않은 상상 속에서 나는 영생한다. 어둑한 현실 공간에서 집어온 씨앗 한 알에 상상의 온기가 더해지며 나는 휘어지고 튀어 오르며 울고 웃는다. 상상력은 나의 날개이자 비밀기지, 이 별의 중심에서 시의 공간을 통해 마법 같은 시간 위를 맘껏 날아다니는 나의 이중생활은 아직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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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9년 《시안》 으로 등단
   시집 『나무가 몸을 열다』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2년 0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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