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과 노닥거리며 깊어지는 가을날
올해도 어김없이 얼굴 볼 수 있겠냐고 남한산성 검복리 마
을 공동묘지 큰 묏등의 흰꽃향유에게 안부 물으며 카톡을
보냈더니,
변경된 주소 같이 보낼 테니 단풍 낙엽 되어 떨어지기 전에
찾아오라는 답카톡이 왔습니다
그렇게 현혹스러운 단풍 도심에까지 찾아와 마음속 뒤흔
들어 놓던 시월 어느 날,
주소 들고 내비게이션에 길을 물어 찾아갔더랬습니다
해마다 찾아가 얼굴 보던 예전의 둥글고 펑퍼짐한 묫마당
앞의 집터와는 완전 다른, 멀리 뚝 떨어진 낭떠러지 비탈 한
쪽 좌우앞뒤 삐이잉 둘러 산딸기나무 가시덤불로 울타리 친
공터 한가운데에 조그맣게 둥지 틀고 앉아 있었습니다
눈맞춤 인사하고 나서, 위리안치 유배지에 귀양 온 것도 아
닌데, 왜 멀쩡히 잘 살던 정든 옛터 버리고 어찌 이 궁벽한
곳으로 이사했느냐고 물었더니,
전망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멋지게 한번 잘 살아보자는 심
산 하나로 혹해서 자리 잘못 잡은 옛터, 매년 중추절 한가위
다가올라치면 인정사정없이 빡빡 밀어버리는 벌초 때문에 늘
좌불안석으로 겨우겨우 목숨 버텨냈는데, 언제 어떻게 또 멸
문지화 당할지 몰라 더는 전전긍긍 참고 살 수 없어서 이사했
노라고 했습니다
몇몇 해 전인가 이태 동안이나 얼굴 전혀 보이지 않았던 이
유, 그 궁금증이 풀리기도 했지만, 그동안의 살아온 기구한 팔
자 풀어놓는 신세한탄, 마주앉아 한참동안 이야기 들어주는데,
어찌나 가슴 먹먹하던지요
주르르르르 그만 두 줄기 눈물 흘리고 말았습니다
작별 악수하고 일어서기 참 힘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화안히 웃는 얼굴 다시
볼 수 있겠구나 안도했습니다
이 긍정의 안부, 사랑지기에게도 기쁘게 전할 수 있다는 생
각으로 남한산성의 황홀한 단풍이 또 한 번 요동치며 출렁
거렸습니다
▶해마다 전국 들꽃 여행을 즐겨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특히 남한산성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 수시로 자주 찾아 들꽃 산행을 합니다. 남한산성은 최고봉이 해발 500m밖에 되지 않는 낮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산에서 자생하는 고산식물도 있을 뿐 아니라 중부지방에 위치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부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남방식물이 함께 발견되고 있는 들꽃의 보고(寶庫)입니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남한산성을 찾을 때마다 사라져 보이지 않는 들꽃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습니다. 이는 약초꾼들의 불법 채취도 문제이지만, 관리사무소에서 성곽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실시하는 제초작업도 문제입니다. 또한 일부 몰지각한 들꽃 사진 동호인들의 이기심에 의한 훼손도 문제입니다. 또 한편으로 남한산성의 제2남옹성 밖에 있는 검복리 마을 공동묘지에는 다양한 희귀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는데, 매년 중추절 무렵이면 벌초 때문에 들꽃들이 수난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한국특산식물인 ‘흰꽃향유’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잘 자라고 있던 이 ‘흰꽃향유’가 지난 2년 전부턴가 3년 전부턴가 갑자기 보이지 않아 사라진 것 아닌가 했는데, 이번 가을 다시 찾았을 때 전혀 다른 곳에서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여전히 건재해 있음에 안도하며 앞으로도 계속 건강하고 안녕하기를 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