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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보리멸의 여름` / 최형심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3년 01월 10일
보리멸의 여름


최형심




 나의 노래는 은색 휘양을 두른 유월의 바다 위에서 왔다. 모래무치를 묻은 발아래는 적란운……, 외가지에 드리운 실잠자리 주검에 뒷머리를 앓는 아이가 물 위를 떠갔다.

 해루질에 지친 몽상가의 아이들과 등롱을 걸고 할미울에서 물그림자를 길어 올렸다. 도르래를 타고 곡식들이 키를 늘이면 주화 속 첨탑으로 걸어 들어가 저녁종을 칠거야.

 고래와 구름 사이로 신들이 내려와 늘 푸른 생선이 소녀들처럼 나이를 먹었다. 뭍사람들은 폐허가 벗어 놓은 햇살 쪽으로 가서 눈이 멀었다.

 가벼운 신을 신은 전령사들이 수림(樹林)에 청무를 심을 때면 쉬이 해거름 오고 일곱 국경 너머 숨비소리 들려왔다.

 농막에 어린잎들이 엎드려 잠들었다고 평발의 물고기좌에선 외뿔을 가진 점자들이 점점이 섬을 이루었다.

 푸른 촉에 물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천정(天井)에서 밤마다 별빛 이삭을 주웠다. 별을 남의 식솔들처럼 헤아리며 나그네새는 꽃밥을 비웠다.

 몽고지를 저어 닿지 못하는 나라……, 그리운 어족들과 바다풀 집을 짓고 싶었으나 부레를 잃은 애벌레로 청보리밭에서 눈을 떴다.

 심해어들과 나란히 누워 부조리극에 초대된 시인처럼 함부로 살았다. 여름이 가자 나의 빈 껍질 속으로 크고 작은 문장들이 들어와 오래 머물다 갔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마술적인 세계다. 나는 무한한 환상의 바닷속을 헤엄치며 자랐다. 은모래를 밟으며 바다로 나가 잔물결을 타고 온 어린 물고기 떼와 종일 놀았다. 뜨거운 팔월의 태양과 은모래 사이에서 온몸이 투명해질 것만 같은 나날이었다. 어린 물고기들이 먼바다로 떠나가고 어둠이 내리면, 반딧불과 하늘에 떠다니는 별들을 베고 누워 밤새도록 오래된 전설의 숲을 헤매고 다녔다. 어른이 되면 꿈속보다 더 꿈같은 나날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상상하면서. 하지만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메마르고 건조한 세상에 버려져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작은 보리멸이 되어 은빛 모래와 황금빛 윤슬을 타고 저 깊은 곳으로 회귀하는 꿈을 꾸는 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 GBN 경북방송




▶약력
   2008년 <현대시> 등단
   2014년 시인광장 시작품상
   2019년 심훈문학상
   2021년 이병주 스마트소설상
   2022년 한유성문학상
   시집 『나비는, 날개로 잠을 잤다』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3년 0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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