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의 방
채종국
비스듬히 누운 천장이 불알처럼 형광등을 매달고 있다
방 안에 퍼지는 형광등 불빛의 말 입자로 구석구석에 저녁을 쓰고 이따금 파동을 그려 환한 아침을 불러온다
독자 잃은 책들이 각자의 체온으로 어둠을 가린 틈새를 읽는다
주름 잡힌 암막 커튼이 환한 방 안에 지층을 쌓는 동안 벽걸이 달력 속의 숫자는 평행 우주처럼 같지만 다른 세상 다른 공간을 맴돈다
지금 여기 혼자만 있을 거라는 착각 미물의 순환이 빛을 덮는다
창백한 벽의 호흡을 외풍이라 부르는 밤 방안의 모든 것들이 외풍과 함께 흔들리고 창밖 또 다른 불빛의 신음이 벽을 뚫고 들어온다
입을 닫고 눈을 여는 순간 눈으로 들을 수 있는 말들이 허공을 떠다닌다
방 안의 비의秘義에 눈을 기울이며 떠다니는 숨은 말들은 채집한다
번역과 통역이 필요 없는 바벨탑을 쌓는 방 태초에 말들이 하나였음을 증명하는 형광등 밑 궁리에 모두가 눈을 뜬다
벽이 귀를 열고 나의 숨소리를 듣는다
▶창세기에는 높고 거만한 탑을 쌓는 인간의 오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늘날 우리는 같은 생활권 안에서도 바벨탑을 쌓고 사는 건 아닌지. 혼자 있는 저녁, 방 안은 나만의 공간이 아니라 책과 의자, 달력, 그리고 몇 개의 인형들까지, 같은 곳에서 호흡하는 정령들이 눈을 뜨며 말을 건넨다. 방 안의 숨은 비의秘義에 눈을 기울이면, 번역과 통역이 필요 없는 바벨 이전의 방, 태초의 말이 하나였음을 오랜 궁리 끝에 깨닫는다. 여기 형광등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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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19년 《시와경계》 등단 문학동인 Volume 회원 웹진시인광장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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