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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빙하가 흐르는 깻잎` / 염형기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3년 07월 25일
빙하가 흐르는 깻잎

염형기




   빙붕에 금이 간 3월 어느 날, 창밖에는 유령처럼 눈이 내리네, 쌓여가는 술병만큼 그리움도 쌓이네, 어렸을 땐 신부가 꿈이었지, 잠시 화가를 꿈꾸기도 했어, 대학 가서는 꽁지머릴 묶고 검정 물들인 스모루 바지에 흰 고무신을 신고 다녔지, 세상은 그렇게 사는 줄 알았어, 그야말로 허접한 시 나부랭이를 쓰며

   C-28로 명명된 빙산의 뿔이 산뿌라처럼 반짝거리네, 빙하는 무슨 생각으로 흐르는지, 눈부시게 녹아내려도 미동조차 없는, 이제는 사도신경 첫 구절도 생각나지 않아, 미술실 벽에 그렸던 데보라 카의 금발은 어떤 색이 되었을까, 스프링노트에 흥얼거렸던 글자는 시가 되지 못한 채 우울하게 번져갔을 테지, 길 잃은 나침반처럼, 빙빙 도는 고래처럼, 뿔을 쓰다듬으면 흐물흐물 녹아내릴 듯, 이젠 시인이 되는 꿈은 필요 없을지도 몰라

   술 한 잔에 깻잎 한 장, 락앤락에 담긴 깻잎은 늘 어림보다 많아, 바늘귀에 실 꿰듯 취한 젓가락질은 이유 없는 분노, 눈을 곧추뜨고 지워지지 않으려는 기억을 떼어내면, 흔들거리는 창밖에선 눈이 비가 되었네, 사도들의 고백이 시가 된 것처럼 어쩌면 시였을지도 몰라, 이제 어두워졌으니 커튼을 펼쳐야겠네, 얼음 대륙이 쩡 하고 울었을 것 같은 날, 그리움이 차오르면 깻잎에서도 빙하가 흐르겠지


* 산플라티나




▶ 3월, 눈 내리는 날, 창밖에 천사가 쓰러져 있네. 시간과 술이 만났지. 그리움과 분노가 만났지. 뜻대로 살지 못했듯 먹구름 같은 세상, 나는 자꾸 흐릿해지려고 하네. 누군가 천사를 깨웠으면 좋겠는데, 시간에 술을 따르면 그리움이 소환되고 나는 잘게 해체되네. 냉장고엔 화석 같은 것들이 많아 입맛을 다시지만 불투명한 미래 같아. 그래도 살얼음 낀 깻잎 너머 천사가 날아가는 게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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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2021년 계간 시와소금 신인상 수상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3년 0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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