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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해 질 녘의 갑옷을 입고` / 엄세원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3년 11월 09일
해 질 녘의 갑옷을 입고


엄세원




바다가 해 질 녘을 입었다

변산반도 적벽강
쇠 징처럼 조밀하게 박힌 포말들 결연하다
더 이상 밀리지 않겠다는 듯
물금을 여민 채 어스름과 대치중

어둠이 수평선으로 진격해올 때
갑옷 입은 여자가 앞장서 있다
고분 속에서 발굴된 신라의 귀족 같은 놀빛

형체 없이 몸은 다 흘러내렸는데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장신구들 그대로다
저 단단한 이음매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을 천여 년의 시간

이제 해 질 녘이 나를 껴입을 차례
잘게 부서뜨린 금가루 같은 모래가 묻어온다

금동관에 갇힌 것처럼 중얼거린다
누구인가, 누가 나를 착용하고 있나

자르고 잘라도 물금은 날[刀]만 무뎌질 뿐
파도의 가슴팍에 고개를 묻고
흰빛으로 빠져나가는 영혼 한 줄기

숨, 들고나는 내력
내게서 먼 미래가 출토되고 있다




▶변산반도 적벽강에 도착했을 때
해는 온전하게 산 위에 걸쳐져 있고
한 척의 배가 물 위에 떠 있었다
그 주위로 갈매기들이 호위하듯 날았다
산이 해를 데려간다고 해가 산의 품으로 안긴다고
그 너머를 궁금해하지 말자고 중얼거렸다
한 곳을 응시하는 눈이 따가웠고
숨 멎는 듯 호흡이 버거웠다
그때 공무도하가 노랫말이
너울 따라 절렁대며 다가왔다
미늘 입은 파도의 숨이라고 생각했다






ⓒ GBN 경북방송




▶약력
   2014년 강원문학 시부문 신인상
   202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 『숨, 들고나는 내력』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3년 11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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