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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녘의 갑옷을 입고
엄세원
바다가 해 질 녘을 입었다
변산반도 적벽강 쇠 징처럼 조밀하게 박힌 포말들 결연하다 더 이상 밀리지 않겠다는 듯 물금을 여민 채 어스름과 대치중
어둠이 수평선으로 진격해올 때 갑옷 입은 여자가 앞장서 있다 고분 속에서 발굴된 신라의 귀족 같은 놀빛
형체 없이 몸은 다 흘러내렸는데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장신구들 그대로다 저 단단한 이음매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을 천여 년의 시간
이제 해 질 녘이 나를 껴입을 차례 잘게 부서뜨린 금가루 같은 모래가 묻어온다
금동관에 갇힌 것처럼 중얼거린다 누구인가, 누가 나를 착용하고 있나
자르고 잘라도 물금은 날[刀]만 무뎌질 뿐 파도의 가슴팍에 고개를 묻고 흰빛으로 빠져나가는 영혼 한 줄기
숨, 들고나는 내력 내게서 먼 미래가 출토되고 있다
▶변산반도 적벽강에 도착했을 때 해는 온전하게 산 위에 걸쳐져 있고 한 척의 배가 물 위에 떠 있었다 그 주위로 갈매기들이 호위하듯 날았다 산이 해를 데려간다고 해가 산의 품으로 안긴다고 그 너머를 궁금해하지 말자고 중얼거렸다 한 곳을 응시하는 눈이 따가웠고 숨 멎는 듯 호흡이 버거웠다 그때 공무도하가 노랫말이 너울 따라 절렁대며 다가왔다 미늘 입은 파도의 숨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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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14년 강원문학 시부문 신인상 202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 『숨, 들고나는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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