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짐에 대하여
박인애
노인의 집 앞에 웃돈을 얹어주어야 치워 갈 듯한 대용량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구형 모니터와 무거워 보이는 데스크톱 전선으로 목이 칭칭 감긴 키보드 유선 마우스와 스피커까지 일가족이 거리로 나앉았다
그 집에서 버려지는 물건은 낡았거나 어둡거나 슬프다 오물로 얼룩진 매트리스 니스가 벗겨진 나무 의자 누렇게 색이 변한 책과 이 빠진 접시 한때 노인이 아꼈을 애장품이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버려지고 또 버려진다
그의 창은 닫혀있다 소리도 냄새도 담을 넘지 않는다 간병인과 배달 차량 정원사 이따금 자손들이 드나들며 제 몫을 하고 갈 뿐이다 바깥세상을 연결해주던 통로는 뽑힌 플러그처럼 차단되었다
내 의지가 있을 때까지만 살다가 너라는 폴더 하나 가슴에 저장하고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버려지는 게 아닌 또 다른 이름으로 저장되는 거니까
버려진다는 것은 지독히 슬픈 일이다
▶옆집 잔디밭에 구형 컴퓨터 세트가 버려졌다. 집주인인 노인 것이다. 주말이면 오는 자손들은 아직 살아 있는 노인의 애장품을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버린다. 버려진다는 건 슬픈 일이다. 하지만 너(사람, 사물…)를 가슴 속에 저장하면 버려지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이름으로 저장되는 것이니 조금은 덜 슬프지 않을까. 내 의지가 남아있을 때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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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문예사조》 시 부문 신인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달라스한인문학회 회장
정지용해외문학상 수상.
시집 『바람을 물들이다』 『말은 말을 삼키고 말은 말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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