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수도원
류인서
침묵은 귀 밝은 늙은 동물, 놀랍게도 그 굽은 등을 지반 삼아 집 짓는 사람들을 보았다 선잠 든 침묵의 귓불을 건들지 않으려 가만가만 시간을 벽돌 쌓으며 걷는 젊은 수도사의
조심성 많은 뒷모습을 보았다 가을겨울가을겨울 더 깊어지는 회랑이 침묵의 방벽이 되어주는 말없음의 시간을 보았다
삼엄한 침묵의 경계警戒를 피해 수도원 담장을 혼자 넘어나가는 벙어리 신이 떠올랐다 황무지 눈밭을 발자국 없이 뛰놀고 있었다 봄잠 든 침묵의 콧등을 밟고 골짜기 숲으로 산책 나선 천진한 밝은 얼굴의 노수도사들도
있었다
소리, 소리들을 보았다 수도원 뒤쪽 산맥 넘어 흰 눈이 걸어 내려오는 소리 마당을 지나는 바람의 나무구두 소리 저녁 종을 당겨 새의 길을 봉쇄하는 소리 한 자루 촛불로 천년의 침묵과 어둠을 봉쇄하는 ......그런 소리들을
▶빛, 입자, 파동까지 소리의 영역이라고 한다면 이 우주는 빅뱅의 에코로 인해 시끄럽기 그지없는, 기실 침묵이 없는 세계라지요. 생각해 보니 온전한 침묵, 온전한 고요의 상태는 빅뱅 이전(?)에나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꿈꾸는 침묵의 경지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의 어느 지점을 뜻하는 말일 테지만요. 시 『침묵 수도원』은 2000년대 초입에 개봉한 ‘필립 그로닝’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Into Great Silence)>을 보면서 접한 놀라움, 그 인상을 시로 써 본 것입니다. 침묵을 사유한 ‘막스 피카르트’는 “인간의 얼굴은 침묵과 말 사이의 마지막 경계선이다”라고 했는데요. 이번 11월 한국시협과 함께 한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원의 피정 체험에서 저는 알프스 봉쇄수도원의 신부님들 표정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수도자들이란 고요에 닿기 위해 기도라는 침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삶을 택한 이들이구나 생각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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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1년 계간 『시와시학』으로 등단. 육사시문학상-젊은시인상, 대구시협상, 지리산문학상, 김춘수시문학상 등 수상.
시집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 『여우』 『신호대기』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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